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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일의 코리언 레전드]<4> '씨름의 전설' 이만기 "강호동과 제대로 한판 더"…①편

1980년대 씨름은 인기 스포츠였다. 쿠데타로 집권한 제5공화국이 스포츠 장려 정책의 일환으로 몇몇 종목의 프로화를 추진한 가운데 씨름도 포함됐다. 프로화한 씨름은 아마추어와 구분하기 위해 민속씨름으로 이름 붙였다.

'만 가지 기술'로 유명했던 이만기, '인간 기중기' 이봉걸,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등 숱한 민속씨름 스타들이 이 무렵 모래판의 인기를 이끌었다. 요즘 스포츠 팬들이 박지성 김연아 박태환 같은 신세대 스포츠 스타들의 플레이를 보며 웃고 산다면 희망이 억압을 받던 그 시절에는 씨름판의 사나이들이 스포츠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 1980년대 씨름은 이만기와 함께했다
▲ 1980년대 씨름은 이만기와 함께했다

'코리언 레전드'의 세 번째 주인공인 이만기(48) 인제대 사회체육학과 교수는 민속씨름의 전설이요 산 증인이다. 1983년 제1회 천하장사대회에서 스무살의 대학생이던 그가 씨름계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던 이준희와 홍현욱을 꺾더니 '모래판의 여우' 최욱진을 호미걸이로 메다꽂으며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알렸다.

이후 천하장사 통산 10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으며 모래 위 황제로 군림했던 그가 이제 세상을 씨름판 삼아 빛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학교에서는 후학을 가르치고 방송에서는 지난날의 경험을 얘기하며 여전히 스포츠 팬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최근 근황을 알리는 이만기 교수 / ⓒ 문병희 기자
▲ 최근 근황을 알리는 이만기 교수 / ⓒ 문병희 기자

지난 6일 여의도 KBS 별관.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매주 금요일 상경하는 이만기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현역 시절 못지않은 우람한 체구와 호쾌한 웃음으로 필자를 맞이한 그는 새로운 샅바를 단단히 쥐고 인생의 모래판 위에 서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줬다.

"코리언 레전드로 선정해 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훌륭한 씨름 선수들이 많은데 초대 천하장사를 지낸 것을 좋게 봐 주신 것 같아요. 앞으로도 씨름에 애착을 더 갖고 노력해야 하기에 어깨가 무겁습니다."





▲ 1980년대 씨름 열기를 설명하는 이만기 교수 / ⓒ 문병희 기자
▲ 1980년대 씨름 열기를 설명하는 이만기 교수 / ⓒ 문병희 기자

◆ 1980년대 씨름? "월드컵, 서울광장 열기 못지 않았죠"

1983년 4월 1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에는 당시 아마추어 씨름계를 주름잡던 홍현욱 이준희 이봉걸은 물론이고 대학생 신예 황영호 장지영 등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320명의 장사가 모였다.

씨름계 별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첫날에만 1만5000명의 관중이 들어찼고 대회가 열린 나흘 동안 2만7000여명의 관중이 모래판을 주시했다. TV 시청률은 무려 61%를 기록했다.

"그때의 씨름은 뭐랄까,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월드컵 축구가 있을 때 서울광장이나 길거리에 모이는 것처럼 뜨거운 열정의 팬들이 있었죠. 매체도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으니까 TV 시청률도 매우 높았고요. 결승전을 하면 거리에 택시가 다니지 않았어요.(웃음)"





▲ 현역 시절 이만기의 포효는  씨름의 상징이었다.
▲ 현역 시절 이만기의 포효는 씨름의 상징이었다.

첫 대회 우승자는 경남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스무 살의 무명 이만기였다.최욱진과 겨룬 결승전에서 호미걸이로 승리를 거두는 순간 장충체육관에 모인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환호했다. 체육관 안에 울려 퍼진 민요와 농악대의 흥겨운 우리 가락이 초대 천하장사의 탄생을 축하했다.

"그야말로 함성이 동시 다발적으로 '와~'하고 일어났죠. 씨름이 더욱 즐거웠던 것은 선수들의 승부도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관중들도 선수들이 힘을 쓸 때 함께 정신적인 힘을 쏟는다는 것이에요. 그런 것이 승리했을 때 희열을 더 느끼죠."





▲ 꽃가마에 앉은 이만기, 그는 모두 10의 천하장사에 올랐다
▲ 꽃가마에 앉은 이만기, 그는 모두 10의 천하장사에 올랐다

◆ 천하장사 우승 상금? "아파트 3채 살 수 있었죠"

천하장사가 되면 이만기는 명예는 물론 적지 않은 상금까지 거머쥐며 대중적인 스타로 급부상했다. 경기력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만기의 등장은 힘의 씨름에서 기술의 씨름으로 진화하는 분수령이 됐다.

"(우승을 예감했는지) 꿈도 못 꿨죠. 한라장사는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천하장사는 감히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실 제가 학창 시절 대회에서 1등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렇기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고요."

이만기는 천하장사 결승전에서 바로 전날 한라장사 결승전에서 우승을 내준 최욱진과 대결했다. "전날 졌기 때문에 잠이 안 왔어요. 긴장되더라고요.(웃음) 결승전에서 2-2 상황까지 갔는데 보통 마지막 판에는 자기가 가장 자신 있는 기술을 사용하거든요. 하지만 저는 평상시에 잘 쓰지 않던 호미걸이로 승부했어요. 허를 찔렀죠. 그래서 이겼어요.(웃음)"





▲ 1980년대 이만기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 1980년대 이만기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동안 겪은 남모를 고통이 자신만의 필모그래피에 가득차며 안개꽃이 드리워졌다. 1등을 했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갔다. 이만기는 천하장사 상금 1500만원과 한라 장사 2위 상금 200만원을 포함해 1700만원의 상금을 거머쥐었다.

"당시 26평 아파트 한 채가 350만원 가량 했어요.(웃음) 천하장사 상금으로 아파트 3채를 살 수 있었으니까 큰 금액이었죠. 그런데 고향인 마산으로 내려갔을 때 모교 후배들이 어렵게 운동을 하고 있었어요. 거기에 500만원을 기부했죠. 그리고 천하장사 됐으니까 잔치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상금 일부를 내니까 별로 안 남더라고요.(웃음)."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었겠는가. 1대 천하장사 등극은 그에게 상금 그 이상의 수많은 가치를 안겼다. 그리고 2대 천하장사에 오르며 마지막으로 꽃가마를 탄 16대까지 통산 10회 천하장사 우승의 대기록을 세웠다. 그 밖에 백두장사 18번, 한라장사 7번, 지역장사 14번 등 49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민속씨름의 1인자로 군림했다.





▲ 대학 교수이자 방송인 그리고 여러 단체의 대표 및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만기
▲ 대학 교수이자 방송인 그리고 여러 단체의 대표 및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만기

◆ 특별한 인연…"강호동, 이번엔 제대로 맞붙고 싶다?"

지난 1월에 방영된 MBC-TV '무릎팍 도사'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1980년대 씨름판을 풍미했던 이만기와 1990년대 천하장사로 이름을 알린 '후배' 강호동이 한자리에서 지난 세월을 회고했다. 이만기는 천하장사 우승 10회의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전설이고, 강호동은 그런 대선배를 상대로 겁 없는 돌풍을 일으키며 바통을 이어 받은 주인공이다.

"(강)호동 씨와 같은 길을 걸어 왔고, 나도 그랬지만 호동 씨도 한 시대를 풍미했잖아요. 지금은 예능계 최고의 스타가 됐고요.(웃음) 자주 견주곤 하는데 기분 좋은 일이죠, 후배가 안 된 모습보다 성공한 모습을 보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이죠."





▲'1박2일'에서 선보인 이만기와 강호동의 대결은 크나큰 감동과 재미를 안겼다.
▲'1박2일'에서 선보인 이만기와 강호동의 대결은 크나큰 감동과 재미를 안겼다.

지난해 11월에도 온 국민은 이만기와 강호동을 주목했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KBS-2TV '1박2일'에서 20년 만에 맞대결을 펼치는 이색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둘 다 현역 때보다 약해진 상태에서 샅바를 잡았죠. 오히려 더 강하게 느껴지더라고요.(웃음) 아직 호동 씨는 풍채도 좋고 힘도 있으니까요."

당시 이만기는 강호동에게 2-1로 이겼다. 그러나 두 번째 판에서 강호동에게 일부러 져 줬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날 강호동은 선배에 대한 존경심에 눈물을 훔치는 등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기도 했다.

"이게 무슨 챔피언십도 아니고 상금이 걸린 것도 아니지요. 선후배의 정을 나눌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씨름의 재미를 다시금 느끼게 해 주는 것인데…. 누가 이기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이만기는 강호동과 함께 비쳐지는 모습에 재미만을 바라지 않는다. 씨름계의 활력소가 되기를 바란다.

"1박2일과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젊은 친구들한테 씨름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는 것이 좋았어요. 그 일을 계기로 국민들이 씨름을 더 알아 줬으면 좋겠고요. 지난 설날씨름대회 때 장충체육관에 관중들이 가득 들어찼어요. 그런 면에서 큰 계기가 된 것 같아요."





▲ 이만기, 그는 진정한 씨름인이었다
▲ 이만기, 그는 진정한 씨름인이었다

"호동 씨한테 다시 한 판 붙자고 했습니다.(웃음) 그 당시에 누가 이겼느니, 졌느니 워낙 설왕설래가 많아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고요.(웃음) 그런데 본인이 안 하려고 할 것 같아요."

<①편 끝>…다음 주 ②편에서는 이만기의 씨름 사랑이야기, 교수·방송 생활 일담 등이 이어집니다.

<글 = 김용일 기자, 사진 = 문병희 기자>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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