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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일의 코리언 레전드]<3> '여자농구의 전설' 전주원 "40살까지 버틴 이유?"…②편

▶ <1> [김용일의 코리언 레전드]<3> '여자농구의 전설' 전주원, 사주는 판, 검사?…①편

창 밖에 그림처럼 펼쳐진 한강변을 바라보는 전주원의 눈빛에서 지난 28년의 희로애락이 스쳐갔다. 시련이 닥쳐도 '할 수 있다!'를 외칠 수 있게 이끄는 힘은 그만의 놀라운 재능이었다. 고난은 용기 있는 사람에게 일시적인 통증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 줬다.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전주원에게 역경은 '매력적인 산' 쯤으로 여길 만했다. 고난과 성공을 늘 함께했기 때문이다.





▲ 28년 선수 생활의 끝자락에 찾아온 '세렌티피티'
▲ 28년 선수 생활의 끝자락에 찾아온 '세렌티피티'

전주원은 2004년 자녀 출산으로 은퇴해야 했다. 수많은 업적을 이룬 그였지만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해 6월 현대산업개발이 신한은행으로 인수됐다. 선수들의 진심이 통한 것이다. "신한은행 자체가 탄탄하기도 했지만 여자 농구의 전체적인 그림으로 봐서도 은행 팀 간의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잖아요? 더 흥미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주부 선수' 전주원…황혼의 6년과 '세렌티피티'

전주원이 떠난 신한은행은 2005년 시즌 겨울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좋은 내용의 경기를 하고도 고비를 넘지 못했다. 해결사 부재를 실감했다. 당시 전주원은 코치였다. 신한은행의 침체는 전주원의 복귀를 재촉했다.

"코치를 하다 보면 선수들과 함께 움직이잖아요? 감독님께서 제 몸 상태를 보시고 '복귀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셨어요. 제가 산후 조리를 상당히 잘했거든요. 몸이 나쁘지 않았죠. 하지만 1년 6개월을 쉬었기 때문에 부담이 컸죠."





▲ 여자 농구의 '전주원 신화'는 그의 끈끈한 의리 또한 밑바탕이 됐다 / ⓒ 배정한 기자
▲ 여자 농구의 '전주원 신화'는 그의 끈끈한 의리 또한 밑바탕이 됐다 / ⓒ 배정한 기자

시간이 흐를수록 전주원의 필요성이 커져만 갔다. 해결사 구실을 할 선수로 적격이란 판단이었다. 그러나 장기간의 공백과 다른 생활 리듬으로 살아가다 어린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자칫 큰 부상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신인 현대산업개발 시절을 거쳐 어렵게 재정비된 팀 상황에 등을 돌릴 수만은 없었다. 고심 끝에 현역 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로 결심했다.

"모험을 했어요. 많은 리스크를 안고 뛰었고요. 결과적으로 잘됐죠. 결혼하면서 아이도 생겼고, 가정이라는 테두리가 있으니까 마음 놓고 운동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윈-윈(WIN-WIN)'이었다. '최하위' 꼬리표가 붙었던 신한은행은 그해 여름리그에서 3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전주원은 어시스트상을 받았다. 예열 과정을 거쳐 전주원을 꼭짓점으로 하는 팀으로 자리 잡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 전주원의 컴백은 곧 새로운 역사로 이어졌다
▲ 전주원의 컴백은 곧 새로운 역사로 이어졌다

2006년 시즌부터 하은주, 최윤아 등의 새로운 얼굴이 제 몫을 했다.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조직적인 농구가 틀을 갖췄다. 그리고 그해 챔피언에 오르며 신화 만들기에 나섰고 올 시즌 우승까지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리그 5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전주원은 7회 연속 어시스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7년에는 생애 첫 정규 시즌 MVP, 2010년에는 챔피언결정전 MVP로 뽑혔다. '인간만사새옹지마'였다. 1990년대 실업 무대에서 우승은커녕 개인상과도 인연이 없었던 그에게 신한은행과 함께한 마지막 6년은 화려했다.

"6년의 시간은 덤이었어요. 그런데 선수 생활을 하는 가운데 가장 행복했죠. 모든 것을 누렸어요. 우승도 했고 어시스트상도 계속 받았죠. 실업 무대에서는 우승을 못해서 속이 상했는데 선수 생활 말미에 좋은 후배들을 만나서 행복하게 농구 했어요. 그래서 40살까지 버텼어요."

진심은 통한다고 했다. 전주원의 이러한 '진심'은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팀 내에서 서로가 튀고 싶은 마음이 아닌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팀워크에 크게 기여했다. 2010년 시즌 전주원이 챔피언결정전 MVP가 된 뒤 후배들에게 올린 큰절은 그렇기에 더욱 큰 감동이었다.





▲ '좋은 후배를 만난 것'에 감사하는 전주원, 그가 있었기에 '좋은 후배도 탄생'했다
▲ '좋은 후배를 만난 것'에 감사하는 전주원, 그가 있었기에 '좋은 후배도 탄생'했다

◆ 영욕의 태극마크…여자 농구의 전성기 이끌다

전주원은 1990년 실업 무대 데뷔한 뒤 17년 간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두 차례 아시아선수권대회(1992년, 1999년)대회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특히 1999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생애 처음으로 MVP로 선정돼 오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메이저 대회는 경기 분위기가 다르죠. 세계적인 선수들을 선수촌에서 마주치면 저도 모르게 애국자가 돼요.(웃음) 선수들이 큰 대회에서 경기를 해보는 것은 엄청난 자산이 되죠. 살면서 잊지 못할 추억이고요."





▲ 자택 거실에 앉아 있는 전주원 / ⓒ 배정한 기자
▲ 자택 거실에 앉아 있는 전주원 / ⓒ 배정한 기자





▲ 전주원은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남녀를 통틀어 처음으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다.
▲ 전주원은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남녀를 통틀어 처음으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다.

한국 여자 농구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1984년 LA 올림픽 은메달 이후 16년 만에 4강에 진출했다. 전주원을 비롯해 유영주, 정은순 등 이 주축이 된 한국은 3위 결정전에서 브라질에 연장전 끝에 73-84로 져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오랜 어둠의 터널을 지나 한국 여자 농구의 부활을 알렸다.

"(시드니 올림픽 때) 8강만 들어도 기적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매 게임 승리를 하면서 선수들끼리 '우리는 지금 기적을 만들고 있다'고 서로를 격려했어요. 비록 4강전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메달보다 값진 경험이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쳐 주셨고요."

전주원은 쿠바와 치른 조별리그 경기에서 10득점 10리바운드 11어시스트를 기록해 남녀 선수를 통틀어 올림픽 농구 역사상 첫 트리플더블을 기록 했다. 자연스레 대회 직후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에서 영입 제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는 현대와 재계약을 마친 상황이었다.





▲ 전주원은 한국 농구의 국제화를 이끈 주역이다
▲ 전주원은 한국 농구의 국제화를 이끈 주역이다

이렇듯 부활한 한국 여자농구는 2002년 세계선수권대회(중국) 4강으로 이어지며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세계선수권대회 4강은 1983년 브라질 대회 이후 19년 만이었다. 하지만 이후 세대교체에 실패하며 예전의 위용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장 선수들이 일부 남아서 어린 선수들을 끌고 갔어야 했는데 자연스럽지 못했죠. 하지만 지금 올라온 선수들이 모두 잘하고 있어요. 내년 런던 올림픽은 기대할 만해요."

인터뷰 도중 거실 앞에 놓여 있는 세 개의 농구공을 응시한 전주원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 사인이 새겨진 공을 보며 무릎을 쳤다. 당시 여자 농구는 홈에서 중국에 76-80으로 져 아쉽게 은메달에 그쳤다. "아, 저 공을 보면 아쉬움이 묻어나요. 다 잡았던 승리였는데…."

남자 농구가 중국을 102-100으로 꺾고 20년 만에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기에 생애 처음으로 안방에서 아시안게임을 치른 전주원으로서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 안산 신한은행의 코치로 새 출발하는 전주원 / ⓒ 배정한 기자
▲ 안산 신한은행의 코치로 새 출발하는 전주원 / ⓒ 배정한 기자

◆ '천재가드' 코치는 초보? "경험으로 얻은 바 전해 주고파"

이제 그는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아직 낯선 '지도자'라는 꼬리표지만 황무지에서 또 다른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임달식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가 워낙 잘하셔서 5년 연속 우승을 할 수 있었고요. 저는 코치로서 아직 초보예요. 경력을 쌓는 과정이죠. 다만 여자로서 팀을 이끄는 데 섬세하고 작은 내용은 챙길 수 있으니까요. 위에서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재빨리 찾아서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전주원은 올해 우송대학교 스포츠 건강관리학부에 편입했다. 2002년 오른쪽 십자인대, 2007년 왼쪽 십자인대 수술을 했던 그는 지난해 두 번의 무릎 반월판 제거 수술까지 받아 현재는 연골이 아예 없는 사실상의 장애 수준이다. 7년 넘도록 해 온 재활도 이제 도가 텄다. 코치로서 재활 분야에서도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대전에 학교가 있어요. 지금은 비시즌이기에 학교를 다니고 있죠. 시즌 중에는 리포트나 다른 과제들로 대체하기도 하는데 잘 봐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다른 무엇보다 제가 큰 부상을 이겨 내고 힘겨운 재활도 겪었으니까요, 이론도 중요하지만 경험적인 면에서 후배들에게 전해 주고 싶어요."





▲ 자신이 쌓은 경험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전주원
▲ 자신이 쌓은 경험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전주원

<더팩트>은 이밖에도 ‘전설’ 전주원에게 여러 질문을 했다. 인터뷰 말미가 되자 마음이 바빠졌다.

- 2007년 김은경(춘천 우리은행) 선수가 안면을 가격해 논란이 있었는데.
농구라는 종목은 몸싸움이 불가피해요. 그리고 상대 선수가 저한테 몸싸움을 심하게 하는 경우는 다른 의도가 아닌, 저를 흥분하게 해서 정상적인 플레이를 못하게 하려는 거예요. 당시 김은경 선수를 고의적으로 보실 수 있는데요. 화면상으로 오해가 있던 것이에요. 절대 김은경 선수는 저를 때린 것이 아닙니다. 미워하지 마세요.(웃음)
그리고 저는 상대 선수가 거칠게 나올 때면 오히려 즐기려고 해요. 저는 포지션이 가드이기 때문에 흥분을 하면 팀 경기력에 지장이 있어요. 그저 ‘네가 오죽하면 나한테 이렇게 하냐’며 여유롭게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하더라고요.

- 현역 시절 남자 농구의 이상민과 비교되곤 했다. 그가 감독이 된다면?
(이)상민이요? 워낙 똑똑한 친구이기 때문에 감독을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아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임기응변이 뛰어나고 동료 선수들과 관계도 좋고요. 개인적으로 상민이가 코치를 경험해도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상민이 정도 수준이면 바로 감독을 해도 좋을 것 같아요.

- 은퇴한 우지원과 유영주가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우)지원이가 아주 잘하더라고요. 달변가예요.(웃음) (본인이 해설을 해볼 생각은?) 저는 지금 일이 있기 때문에 해설은 외도라고 생각해요. (유)영주 언니는 방송이 자신의 일이 됐고요. 물론 제가 일 욕심이 많아요. 코치가 아니라면 방송을 할 수도 있겠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해설을 했어요. 좋은 경기를 보면서 많은 공부가 됐고요. 그런데 너무 흥분했는지 목소리가….(웃음)

- 1990년대 선수들과 현재 어린 선수들의 정신력의 차이를 언급하곤 하는데.

정신적인 면은 운동 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곤란해요. 옛날은 그야말로 ‘헝그리 시대’죠. 당연히 정신력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지금은 부모들이 자기는 굶어도 아이한테는 모두 해 주려고 하잖아요? 세대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과거에 해 왔던 행동을 지금 선수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어요. 단, 방식을 찾아 주는 것이 필요하죠. 동기부여를 통해 선수들이 따라올 수 있게 하는 것이 과제라고 생각해요.





▲ 또 한번의 매력적인 산이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다
▲ 또 한번의 매력적인 산이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에서 노마드의 세계를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묘사하곤 했다. 노마드란 '유목민', '유랑자'를 뜻하지만 공간적인 이동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꿔 가는 것, 곧 한 자리에 앉아서도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뜻한다.

전주원은 어찌 보면 한 팀에서 그리고 대표팀에서 레전드급 활약을 펼쳐 왔지만 노마드 같은 삶을 살았다. 불모지를 개척하는 선구자 구실을 했다. 이는 경기력 뿐 아니라 자기 관리와 성품에서 비롯됐다. 글쓴이는 그를 보며 ‘전설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진리를 다시금 깨달았다.

전주원은 또 다시 뛰고 있다. 연거푸 넘어온 지금까지의 영광의 순간을 담아 또 한번의 매력적인 산을 넘고자 한다. 이제 그는 여자 농구의 ‘영원한 전설’에서 ‘영원한 정답’으로 가기 위한 예열을 하고 있다.

"코리언 레전드로 선정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지나온 시간 농구에 진심을 다했던 전주원을 기억해 주셨으면 감사하겠고요. 앞으로도 여자 농구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저의 모든 것을 쏟겠습니다. 더팩트 독자 여러분들도 건강하세요."

<글 = 김용일 기자, 사진 = 배정한 기자>

※ [김용일의 코리언 레전드] 네 번째 주인공은 '한국씨름의 전설' 이만기 인제대 교수입니다.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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