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요? 저보다 대단한 선배 언니들도 많이 계신데…. 영광스럽네요. 지금까지의 농구 인생을 되짚어 보게 됩니다."

한국 여자 농구 르네상스를 얘기할 때 그를 빼놓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 여자 농구의 찬란한 역사를 살펴보면 전주원이란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989년 선일여고가 이룩한 27연승, 2000년 시드니 올림픽 4강, 2011년 신한은행의 여자 프로농구 사상 첫 5연패 위업 달성의 순간에 그가 있었다.
전주원은 여자 농구의 꿈을 하나씩 현실로 만들었다. 시드니 올림픽 4강을 이룩했고 이 대회에서 쿠바와 치른 조별리그 경기에서는 한국 농구 올림픽 출전 사상 첫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다. 여자 선수로서 결혼 후 임신 그리고 1년 6개월의 공백 기간에도 불구하고 복귀해 소속팀 신한은행을 리그 5연속 우승으로 이끌었다. 또 7년 연속 어시스트상도 거머쥐었다. 어느새 리그 ‘최고령 선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지만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주부선수' 전주원은 세월을 거슬러 '슈퍼우먼'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지난달 20일 신한은행은 한국여자농구연맹에 전주원의 은퇴 공시를 요청했다. 선수 생활 28년 만이다. '영원한 현역'일 것만 같았던 그는 은퇴와 동시에 신한은행의 코치로 새로운 인생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지난달 26일 오전 9시. 서울 한강변에 있는 전주원 코치의 집. 한국 여자 농구의 살아 있는 역사인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현관 벨을 누르자 '영원한 현역'의 냄새가 여전한 전주원, 그가 '코리언 레전드'의 세 번째 주인공으로 <더팩트>에 모습을 비쳤다.

"제가 어렸을 때 여자 선수들이 결혼을 하고 농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슈였어요. 그것도 출산을 하고 1년 6개월을 쉬고 다시 코트로 돌아왔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제가 선구자이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싶었어요. 전투력이 더 생겼던 것 같아요. 팬들은 코트 위에 전주원을 보시는 것이지, 출산하고 나이 들어가는 전주원을 평가하시는 것은 아니잖아요?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실패에 대한 걱정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딸 수빈이의 엄마로서 뜨거운 '전투력'이 그를 이끌었다. 놀랍게도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신한은행은 '맏언니' 전주원을 믿고 따랐다. 그리고 영광의 순간을 함께하며 전주원 농구 인생 황혼의 6년을 뜨겁게 장식했다.


◆ 어린 시절 사주는 판, 검사와 의사? "남편이 '장금이 버전'이래요"
전주원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공을 잡았다. 아버지와 함께 농구 보고 있는데 키가 큰 전주원을 눈여겨본 감독이 입단 테스트를 제의한다. 복싱 선수 출신으로 평소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말도 하지 않고 딸을 데려가 테스트에 응했다.
"어머니는 딸을 운동시키려고 하시지 않았어요. 당시 재미로 사주를 보셨는데 거기서도 '왜 운동시키느냐. 판, 검사나 의사를 시켜도 잘할 수 있다'고 하셨데요.(웃음) 어머니는 조금 시켜 보고 아닌 것 같으면 그만두게 하려고 하셨죠.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승을 계속 했거든요. 그러자 허락해 주셨죠."


그는 사주보다는 운이 타고난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의 남편도 아내를 두고 '장금이 버전'이라고 한다. 노력한 것 이상으로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성공적인 행보를 했기 때문이다. "제가 생각해도 운이 참 좋았어요. 그래서 더욱 감사한 삶이고요. 제가 갚아 나가야 할 부분이기도 해요."
삼남매 가운데 둘째인 전주원은 어린 시절 유독 '철든 딸'이었다. 운동 중 꾸중을 들어도 부모 앞에서 절대로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용돈이 필요해도 부모가 부담스러워 할까 봐 손을 벌리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기특한 딸 손에 용돈을 더 얹어주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실업팀에 입단할 때 어머니가 가방을 싸 주시면서 우셨어요. '내가 딸을 고생시켜서 무슨 호사를 누리려고 하느냐'고요.(웃음) 사실 최근까지도 (딸) 수빈이가 있는데 운동을 계속하니까 어머니께서는 '올해는 그만두라'며 노래를 부르셨어요. 그런데 정말 은퇴하니까 다행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남편과 아버지는 섭섭해 하시는데…."

◆ '천재가드' 전주원의 등장…"고3, 아시아 선수권 우승 기억 남아"
전주원의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빛이 났다. 명일초등학교 시절부터 '천재가드'라는 수식어와 함께 팀을 전국 최강으로 이끌었다. 선일여고 시절에는 27연승 신화를 이끌며 주전 선수 노릇을 톡톡히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지금의 청소년 국가대표 상비군에 해당되는 '88꿈나무'로 선발돼 태극 마크와 인연을 시작했다.
"중3 때 키가 171cm정도 됐어요. 가드로서는 큰 키였죠. 그 시절에는 태극 마크를 다는 것이 엄청 치열했어요. 전국에 워낙 많은 선수들이 있었고요. 그런 가운데 제가 12명에 들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죠."

어린 시절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터라 주변에서는 엄마의 치맛바람이 작용했다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저희 어머니를 보시면 그런 얘기가 쏙 들어 가실걸요? 평범한 시골 아주머니처럼 푸근한 인상이에요.(웃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머니는 '야야, 내가 그 돈 있으면 네 떡이나 하나 더 해 주지'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웃음)"
어린 시절부터 은퇴하기 까지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감사하고 은퇴를 하는 데도 행복하단다. '전주원'이라는 이름 석 자가 그리 잘나지 않았다고 느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부담으로 돌아왔다. 항상 잘해야 하고, 이름 석 자를 지켜 내야만 했다.
학창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선일여고 3학년 때 출전한 나고야 아시아주니어선수권대회다. 당시 아시아 최강을 자랑하던 홈팀 일본을 상대로 역대 최약체로 평가받던 한국은 전주원 활약으로 10년 만에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후반 종료 직전 2점을 뒤지고 있을 때 제가 자유투를 모두 넣어서 연장전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연장 종료 5초를 남기고 또다시 자유투를 얻었는데 그것도 모두 성공시켜서 우승했어요. 그때는 겁 없이 경기를 했던 것 같아요. 지금 그런 상황을 맞이하면 팔다리가 떨릴 것 같은데.(웃음)"


◆ '누나부대' 원조스타…"故 정주영 회장께서 어느 날 문득"
선일여고를 졸업하고 1990년 당시 역대 최고 계약금(1억5천만원)을 받고 현대산업개발에 입단한 그는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플레이를 선보이며 코트에서 펄펄 날았다.
"(故 정주영 회장께서 직접 스카우트 했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어요. 회장님께서 여자 농구를 정말 좋아하셨어요. 어느 날 훈련장에 오셨는데 저한테 '전주원 선수 맞죠? 경기를 지켜봤는데 악착같이 플레이 하던데요'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정말 기분 좋더라고요. 회장님이 관심을 가져 주시니까요. 돌아가셨지만 정말 힘이 됐어요. 감사하고요."

전주원은 데뷔 첫해인 1991년, 당당히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생애 단 한번 뿐인 신인왕 타이틀은 그의 빼어난 기량을 증명해 준 보증 수표이기도 했다. "그 당시 어린 마음에 불같이 뛰었죠. 주변에서 잘 평가해 주셔서 감사드렸고요. 당시 현대산업개발이 유명 선수들은 없었지만 패기가 넘치는 팀이었죠.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즐겁게 농구를 한 것 같아요."
뛰어난 기량과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전주원은 여자 농구사에 길이 남을 '누나부대'를 이끈 원조 스타다. "당시에는 인터넷이나 케이블 방송도 적었잖아요? 하지만 스포츠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특히 현대산업개발에 어여쁜 선수들도 많이 있었어요.(웃음) 그런데 지금은 워낙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스포츠가 전체적으로 침체인 것 같아요."

그의 농구 인생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1999년 프로화 된 이후 모기업이 2001년 경영난을 겪으면서 사실상 구단 운영을 포기했다. 이후 현대 계열인 KCC의 지원 아래 3년 간 남자 농구팀에서 '더부살이'도 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2002년 여름리그에서 창단 17년만의 첫 우승을 차지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하지만 결국 지원이 끊어지며 전주원을 포함한 선수들은 체육관과 숙소에서 쫓겨났다.
"당시 안산시에서 체육관을 무상으로 대여해 주셨어요. 그렇지만 남의 집 살림도 해야 하고 여관방 생활을 했죠. 저는 그때 수빈이를 임신하고 있었어요. 주변에서는 집에 들어가서 쉬라고 하셨죠. 그런데 그 시기 후배들에게 희망을 줘야 했어요. 등을 돌릴 수가 없더라고요. 후배들한테 '괜찮아, 우리는 운동만 열심히 하면 누군가 우리를 데려갈 것이다'라고 말했죠."
<①편 끝>…②편에서는 전주원의 신한은행 시절, 국가대표 이야기, 코치로서 포부가 이어집니다.
<글 = 김용일 기자, 사진 = 배정한 기자>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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