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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in정치]빌려 사는 사람? ‘아리에티’는 ‘식모 세경’이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신작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가 추석 대목을 노린 대작들 틈바구니에서 소리 소문 없이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그동안 미야자키 하야오가 보여준 애니메이션 세계는 ‘진보적 관점 + 소녀적 취향’으로 집약된다. “마루 밑 아리에티”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양극화가 펼쳐놓은 ‘21세기판 신분제 사회’를 감수성 다분한 소녀의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다.

‘빌려 사는 사람’ 혹은 ‘작은 도둑’

맑고 씩씩한 소녀 아리에티. 그녀는 ‘소인’이다. 요정도 난장이도 아닌, 인간세계의 어느 귀퉁이에 숨어사는 작은 종족. 아리에티의 부모는 스스로를 ‘빌려 사는 사람’이라 일컫는다. 소인들은 인간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휴지나 각설탕 따위를 ‘몰래 빌려야’ 살아갈 수 있다. 이 생필품들을 구하는 일은 그들에게 목숨 건 곡예이자 엄숙한 의식이다. 소인들은 그렇게 인간과 ‘공생’한다. 물론 인간의 생각은 다르지만….

심장병 때문에 시골 별장으로 요양을 나온 쇼우. 소년은 그 오래된 집 정원에서 우연히 스치듯 아리에티를 목격한다. 세상에 소인이라니…. 긴가민가하는 소년에게 할머니는 정교하고 아기자기한 ‘인형의 집’을 보여준다. 그 로맨틱한 미니어처 집은 증조할아버지가 소인들을 위해 주문 제작해 놓은 것. 증조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소인은 인형의 집에나 어울릴 ‘판타지의 일부분’이다. 거기 생활인으로서 소인은 없다.

별장의 일을 봐주는 가정부의 경우 한 술 더 뜬다. 판타지를 꿈꿀 여유조차 없는 아주머니에게 소인은 ‘작은 도둑’일 뿐. 고로 소인들의 존재를 눈치 챈 후 쥐 잡는 회사를 알아본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양식을 축내고 병을 옮기는 쥐떼처럼 소인들 역시 반드시 찾아내 없애야 할 화근이다. 이는 별장의 가정부로서 느끼는 책임감인 동시에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악당’보다 더 소름끼치는 건 ‘정체불명’이니….

아리에티의 부모는 그래서 늘 인간들에게 들킬까봐 노심초사한다. 인간의 왜곡된 관심은 소인의 삶에 치명적이다. 심지어 쇼우의 순진한 성의조차 소인들에겐 적색경보다. 쇼우는 인형의 집에서 떼어낸 ‘환상적인’ 주방을 소인들의 보금자리에 선사하지만 기실 그것은 아리에티의 생활공간과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 그 균열을 비집고 가정부 아주머니의 우악스런 손길이 미치자 마침내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가 닥쳐오는데….


양극화로 왜소해진 서민의 삶… ‘공정사회’ 콘텐츠는?

영화와 드라마는 때때로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에 등장하는 소인들은 양극화의 현실에 치여 나날이 왜소해지는 서민의 삶을 은유한다. 주위를 돌아보자. IMF 이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 속에 서민들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살아간다. 만성화된 고용불안에 떨며, 고리의 대출에 갇힌 채로…. 빌려 사는 사람? 맞다.

시트콤 ‘하이킥’ 시리즈에서는 이를 ‘객식구’로 묘사한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세경에게 죄가 있다면 사채 빚에 쫓기는 아버지를 둔 것. 결국 그녀는 순재의 집에 식모로 들어간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긴 하지만 사실상 빌려 사는 삶. ‘21세기판 신분제 사회’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셈이다. 그래서일까? 지훈을 향한 짝사랑도, 준혁에게 받는 외사랑도 세경에겐 버겁기만 하다. 그 사랑이 자신과 동생의 막다른 삶마저 흔들 수 있기 때문.

그렇다면 양극화가 낳은 이 부조리한 신분질서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쇼우네 가족처럼 시혜의 차원에서 굽어보는 것도, 별장 가정부처럼 두려운 마음에 적대하는 것도 답과는 거리가 멀다. 중요한 건 덩치가 큰 인간 역시 소인과 마찬가지로 ‘빌려 사는 사람’임을 자각하는 것 아닐까? 자연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빌려 사는 존재가 인간이다. 언젠가는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다.

현 정부의 ‘공정한 사회’ 기조도 여기서 출발한다. 양극화로 고통 받는 서민의 박탈감을 달랠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요즘 세간에 유행하는 ‘공정사회’는 어쩐지 ‘앙꼬 없는 찐빵’ 같다. 콘텐츠는 간 데 없고 도처에 깃발만 나부낀다. 오는 10월 4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 철저하게 검증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혹시라도 정부의 양극화 극복노력에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공정사회’ 구호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지도 모를 일.

<사진출처= 아리에티 공식 사이트,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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