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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의 시대③] '정체성 희석'과 'IP 주도권'…글로벌 공동 제작의 과제
해외 자본·현지화 사이 K-드라마 고유 색깔 지키기
제작 주도권도 변수
"배우 진출 풀 넓어졌지만"…기대치와 국가별 이슈 부담


CJ ENM 홍콩 법인은 인도 OTT 플랫폼에 한국 작품을 원작으로 한 태국 합작 드라마 6편을 공개했다. /CJ ENM
CJ ENM 홍콩 법인은 인도 OTT 플랫폼에 한국 작품을 원작으로 한 태국 합작 드라마 6편을 공개했다. /CJ ENM

K-드라마 제작비가 상승하고 글로벌 OTT의 투자 환경에도 변화가 생기면서 국내 제작사들이 새로운 제작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해외 제작사 및 플랫폼과 협력하는 '글로벌 공동 제작'이다. 일본, 미국, 태국 등 다양한 국가와 제작비를 분담하고 현지 시장 진출을 함께 추진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K-드라마 제작 환경의 변화 속에서 글로벌 공동 제작의 현주소와 현장의 고민,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해외 제작사와 플랫폼이 K-드라마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는 글로벌 공동 제작이 늘면서 국내 콘텐츠 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제작비와 해외 유통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지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한국 콘텐츠 특유의 감성과 정체성이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부분은 창작 방향이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작품은 여러 국가의 시청자를 고려해야 한다. 현지 문화와 정서를 반영하고 각 시장의 취향을 살피는 과정은 필요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의식하면 작품 고유의 색깔이 흐려질 수 있다. 한국 콘텐츠가 해외에서 주목받은 이유 중 하나인 빠른 전개와 밀도 있는 감정선 등 고유한 서사적 특징을 어떻게 유지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실제로 글로벌 공동 제작에 참여한 제작사 역시 작품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을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관계자 A 씨는 "합작을 위한 합작이 돼 작품 고유의 색깔을 잃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며 "다양한 국적의 타깃을 모두 만족시키려다 보면 오히려 이야기가 피상적으로 흘러갈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작상의 변수도 적지 않다. 언어의 장벽과 문화적 차이로 의사결정이 늦어지면 예산 초과나 일정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A 씨는 "의사결정 과정이 길어지고 결과적으로 예산 초과나 스케줄 지연으로 이어지는 리스크가 다수 발생한다"며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국의 제작 시스템과 의사결정 구조가 다르다는 점도 변수다. 한국은 제작사가 자금 조달부터 원작 확보, 대본 개발, 캐스팅 등 제작 전반을 주도하는 프로젝트가 많다. 반면 일본은 방송사와 광고회사, 출판사, 배급사 등 여러 사업자가 참여하는 제작위원회 방식이 활용된다. 투자 주체가 여러 곳인 만큼 권리와 의사결정 권한이 분산될 수 있다.

물론 작품과 계약 구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국가별 제작 관행이 다른 만큼 협업 과정에서 제작 방향과 업무 권한을 조율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무엇보다 민감한 문제는 IP 주도권이다. 공동 제작에 참여하는 사업자가 늘어날수록 원작과 영상화 권리, 후속 시즌 제작, 리메이크, 2차 저작물 활용 등 권리 관계도 복잡해진다. 제작비를 누가 얼마나 부담했는지에 따라 수익 배분과 권리 소유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해외 자본을 유치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국내 제작사가 장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IP와 사업 권한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면 공동 제작의 성과가 제한될 수 있다.

A 씨는 글로벌 자본이 투입되더라도 기획과 크리에이티브의 주도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권리 관계에 있어서는 공동 저작권 확보를 최우선으로 하되 상황에 따라 특정 지역의 판권이나 향후 리메이크 작품 등에 대한 우선 협상권을 지켜내는 것에 중점을 둔다"고 밝혔다. 이어 "단기적인 수익 창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제작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계약 해석과 권한을 둘러싼 갈등이 분쟁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한국과 태국의 숏폼 공동 제작 프로젝트 '악마의 키스'와 '공동구역 로맨스'를 둘러싸고 플러스엑스이엔엠과 태국 테마워크 스튜디오 사이에 글로벌 유통 권한과 계약 해석을 둘러싼 이견이 불거졌다.

플러스엑스이엔엠 측은 계약 문서의 법적 효력 해석과 엔딩 크레딧, 유통 및 마케팅 권한 표기 등을 두고 양측의 입장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법무법인을 선임하고 법적 대응을 검토했다. 관계자는 "계약에 근거한 권리 관계를 확인하고 예정된 글로벌 유통 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동 제작 과정에서 계약 단계부터 권리와 책임 범위를 명확히 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글로벌 합작 드라마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우려도 존재한다. 특히 최근 IP 등 계약 문제를 두고 법적 갈등이 불거지기도 해 이를 위한 체계 마련이 더욱더 요구되고 있다. /플러스엑스이엔엠
글로벌 합작 드라마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우려도 존재한다. 특히 최근 IP 등 계약 문제를 두고 법적 갈등이 불거지기도 해 이를 위한 체계 마련이 더욱더 요구되고 있다. /플러스엑스이엔엠

글로벌 공동 제작의 확대는 제작사뿐 아니라 배우들의 활동 영역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해외 제작사와 플랫폼이 참여하는 작품이 늘면서 국내 배우들이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와 선택지도 넓어졌다. 먼저 해외 시장에 진출한 선배 배우들의 경험이 쌓이면서 후속 세대가 도전할 수 있는 영역도 확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배우 소속사 관계자 B 씨는 "소속 배우들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풀이 넓어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앞서 해외에 발을 내디딘 선배 배우들 덕분에 그 풀 역시 전보다 넓어졌다"고 밝혔다.

다만 기회가 커진 만큼 부담도 따른다. 글로벌 공동 제작이라는 타이틀이 작품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는 만큼 실제 공개된 결과물이 이에 미치지 못할 경우 실망감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마다 사회·문화적 배경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슈가 다른 점은 큰 변수다. 작품 공개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특정 국가에서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B 씨는 "글로벌 합작이라고 하면 일단 주목을 받는다"며 "이 과정에서 각 나라의 이슈가 다르기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다"고 털어놨다.

글로벌 공동 제작은 국내 콘텐츠가 해외 시장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동시에 제작 역량을 확장할 기회다. 배우들에게도 새로운 진출 경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협업의 규모가 커지는 것만으로 성공을 담보할 수는 없다.

각국의 제작 환경과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도 창작의 주도권과 IP 권리를 지키는 구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해외 시장의 요구와 K-드라마 고유의 경쟁력을 균형 있게 결합하는 것, 글로벌 공동 제작이 지속 가능한 성장 방식으로 자리 잡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다. <끝>

<관련 기사>

[합작의 시대①] 국경 허문 K-드라마…공동 제작, 새 생존 전략 될까

[합작의 시대②] 다른 시선, 하나의 작품…글로벌 협업 현장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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