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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 이광희의 문화 엿보기] 그날의 함성은 울렸으나, 정작 고향은 침묵했다
역사를 문화로 되살리는 예술인들 외면하는 지역사회와 행정

지난 29일 당진문예의전당 소공연장에서 충청오페라단 창단 37주년 정기연주회가 열린 후 단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광희 대전충남 본부장
지난 29일 당진문예의전당 소공연장에서 충청오페라단 창단 37주년 정기연주회가 열린 후 단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광희 대전충남 본부장

[더팩트ㅣ대전=이광희 대전충남 본부장]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역사라 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면 세월 속에 묻힌다.

반대로 작은 고을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도 후손들이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살리면 민족의 역사가 된다. 나아가 세계인이 공감하는 문화유산이 된다. 문화란 그런 것이다.

지난 29일 저녁, 당진문예의전당 소공연장에서는 의미 있는 공연이 열렸다. 충청오페라단 창단 37주년 정기연주회였다.

한국가곡과 오페라 아리아의 향연이라는 이름으로 마련된 무대였다. 이날 공연이 특별했던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107년 전 당진 대호지와 천의장터에서 일어났던 독립만세운동을 창작오페라로 되살리는 첫걸음이었기 때문이다.

창작오페라 '그날의 함성'. 필자의 장편소설 '대호지 아리랑'을 원작으로 제작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날 무대에서는 창작오페라의 주요 아리아인 '결단의 불꽃'과 '위대한 사랑', 그리고 합창곡 '대호지 아리랑'이 처음 선보였다.

테너 전상용과 소프라노 조용미가 노래했다.

김권섭과 정수화 두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었다. 양기철 단장이 이끄는 충청오페라단 합창단도 무대에 올랐다.

1919년 4월 4일의 역사가 2026년 10월 29일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의미 있는 행사의 첫 단추가 끼워진 셈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날 공연을 지켜보면서 기쁨 못지않게 깊은 아쉬움을 느껴야 했다. 정작 그 역사의 현장인 대호지면과 정미면의 관심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19년 4월 4일 대호지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은 정미면 천의장터로 이어졌다. 100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한 대규모 항일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다른 지역의 만세운동과 구별되는 역사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면장과 면사무소 직원, 지역 유지와 주민들이 함께 참여했다는 점이다. 관과 민이 하나가 되어 일제에 맞섰다. 누군가는 가족을 뒤로하고 거리로 나섰다. 누군가는 체포될 것을 알면서도 태극기를 들었다. 농부와 상인, 면사무소 직원과 평범한 주민들이 나라를 되찾겠다는 하나의 뜻으로 모였다. 그들은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체포와 고문을 당했다. 평범했던 삶은 무너졌고, 수많은 고통이 뒤따랐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단순히 대호지와 정미라는 두 고을이 아니었다.

나라였고 민족이었으며, 후손들이 살아갈 미래였다. 그렇기에 대호지·천의장터 독립만세운동은 당진만의 역사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자랑스러운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다. 그런 역사를 소설로 되살리고, 다시 오페라로 제작하려는 것이다.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문화예술로 승화시켜 후손들에게 물려주자는 뜻이다.

그것이 바로 지역문화콘텐츠의 출발점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정작 그 역사의 주인공들이 살았던 고장의 관심은 차가웠다. 양기철 충청오페라단 단장은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600장의 초청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역의 관계자와 주민들에게 일일이 전달했다. 적어도 대호지와 정미만큼은 특별한 관심을 보일 것으로 기대했다. 자신들의 고장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오페라로 제작한다는 소식이 아닌가.

지역의 면장과 유지들이 앞장서 격려하고, 주민들이 함께 관심을 기울여도 부족할 일이다. 그러나 주최 측이 전한 현장의 분위기는 기대와 달랐다.

해당 지역의 면장과 유지들로부터 기대했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당진시의 관심 또한 아쉬웠다. 물론 공연 참석 여부만으로 한 기관이나 지역사회의 역사 인식을 모두 판단할 수는 없다.

저마다 일정과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의 역사적 사건을 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키려는 시도에 행정과 지역사회가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는 충분히 물어볼 문제다. 필자가 안타까운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오늘날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문화콘텐츠 개발을 외치고 있다.

지역의 역사와 인물을 발굴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며, 문화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한다. K-컬처의 시대다.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음악과 문학이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지역의 작은 이야기가 세계적인 문화콘텐츠로 성장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다. 그렇다면 지역의 행정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없는 이야기도 찾아내야 한다.

잊힌 역사도 발굴해야 한다.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면 관심을 기울이고 그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 그것이 문화행정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미 존재하는 역사적 자산을 바탕으로 예술인들이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도 지역사회와 행정이 무관심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문화콘텐츠를 만들겠다는 구호와 실제 현장의 모습이 너무 다른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충청오페라단은 1989년 창단했다. 37년 동안 지역에서 오페라와 창작뮤지컬, 각종 음악회를 무대에 올려왔다.

지역에서 오페라단을 운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대를 한 번 올리기 위해서도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작곡가와 성악가, 연주자와 합창단이 있어야 한다.

대본과 연출, 무대 제작과 공연장 확보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돈이 든다. 지역의 문화예술단체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바로 제작비다.

그럼에도 양기철 단장과 충청오페라단은 대호지·천의장터 독립만세운동을 창작오페라로 제작하겠다는 뜻을 세웠다. 2027년 4월 4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날은 대호지·천의장터 독립만세운동 108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역사적인 날에 108년 전의 함성을 다시 무대에 올리겠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더구나 이번 작품은 단순히 독립운동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날을 살았던 사람들의 두려움과 고뇌, 사랑과 희생을 음악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다. 역사책에 기록된 사건을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로 되살리는 작업이다. 소설은 독자의 상상 속에서 역사를 되살린다.

그러나 오페라는 다르다. 무대 위에서 사람이 노래하고, 합창이 울리고, 관객이 그 시대의 슬픔과 감동을 함께 느낀다. 한 사람의 결단이 노래가 되고, 한 마을의 함성이 합창이 된다. 그렇게 역사는 문화가 된다. 필자는 이런 작업이야말로 지방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지역마다 역사적 사건이 있다.

그곳을 살았던 인물이 있고,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문학으로 만들고, 연극과 오페라로 제작하고, 영화와 영상콘텐츠로 발전시킬 수 있다. 문화관광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 대호지·천의장터 독립만세운동 역시 충분한 가능성을 지닌 역사적 자산이다. 당진에는 이미 그날의 역사가 있다.

그 역사를 기념하는 공간도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일이다. 그런데 문화예술인들이 어렵게 그 길을 열어가고 있는데 행정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을 계속하겠는가. 문화예술인들의 열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행정의 지원이 반드시 돈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관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사업을 살펴보고,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연결하며, 작품이 지속적으로 공연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런 역할조차 하지 못한다면 지역문화 발전을 말하는 행정의 구호는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다. 우리는 해마다 삼일절과 광복절을 기념한다.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억하자고 말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정작 그 역사를 오늘의 문화로 되살리려는 현장에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기념식장에서 만세삼창을 외치는 것만이 역사에 대한 예우는 아니다. 독립운동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전달하고, 그 시대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드는 일 역시 중요한 역사적 책무다. 오페라 '그날의 함성'은 바로 그런 취지에서 출발했다. 그날의 함성은 대호지만의 함성이 아니었다.

정미면만의 함성도 아니었다.

나라를 되찾으려 했던 우리 민족의 함성이었다. 그 역사를 문화로 되살리는 일에 지역의 경계가 있을 수 없다. 대호지와 정미에서 시작해 당진으로, 충청으로,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로 확산되어야 할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은 하나의 정기연주회를 넘어서는 출발점이었다. 아직 창작오페라가 완성된 것도 아니다.

이제 주요 아리아와 합창곡을 처음 선보였을 뿐이다.

앞으로 대본을 다듬고 음악을 완성하며 본격적인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갈 길이 멀다. 그래서 더 많은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다. 필자는 당진시와 대호지면, 정미면의 관계자들에게 묻고 싶다. 지역의 역사적 자산을 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키는 일에 어떤 관심과 역할을 할 것인가. 지역의 예술인들이 어렵게 시작한 작업을 어떻게 지역사회와 연결할 것인가. 그리고 108년 전 나라를 위해 거리로 나섰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늘의 후손들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

이 질문은 비단 당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지역문화는 행정기관의 구호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예술인들의 창작과 주민들의 참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이 함께할 때 비로소 살아난다. 1919년 4월 4일 대호지에서는 관과 민이 함께 거리로 나섰다. 면장과 면사무소 직원, 주민들이 나라를 되찾겠다는 하나의 뜻으로 모였다. 107년이 흐른 지금, 그 역사를 문화로 되살리는 일에도 관과 민이 함께할 수는 없는 것인가. 참으로 역설적이다. 나라를 빼앗겼던 시대에는 관과 민이 함께 독립을 외쳤는데, 나라를 되찾은 오늘에는 그들의 함성을 되살리는 문화예술인들이 관심을 호소해야 하는 현실이 아닌가. 그날 당진문예의전당에서는 노래가 울렸다. '결단의 불꽃'이 울렸고, '위대한 사랑'이 울렸다.

그리고 '대호지 아리랑'이 합창으로 이어졌다. 무대 위에서는 107년 전의 역사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공연장을 나서면서 필자의 마음은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날의 함성을 되살리려는 사람들은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함성의 고향에서 들려오는 화답은 너무도 작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저절로 기억되지 않는다. 누군가 기록해야 하고, 누군가 이야기해야 하며, 누군가는 노래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107년 전 대호지 사람들은 나라를 잃고도 침묵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들의 함성을 되살리는 일 앞에서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날의 함성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 함성에 누가 화답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tfcc2024@tf.co.kr

지난 29일 당진문예의전당 소공연장에서 충청오페라단 창단 37주년 정기연주회가 열린 후 단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광희 대전충남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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