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아버지였고 모두의 이웃이었다

[더팩트 | 정병근 기자] '국민 배우' '국민 아버지' '영원한 수사반장'. 배우 최불암에게는 유독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오랜 세월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얻을 수 있는 호칭은 아니다. 그가 연기한 인물들은 시대를 대변했고, 때로는 정의를 향한 갈증을 풀어줬으며, 때로는 고단한 삶을 위로했다. 그렇게 최불암은 안방극장을 넘어 국민의 삶 깊숙이 자리 잡았다.
최불암이 지난 29일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1959년 연극 '햄릿'으로 데뷔한 뒤 67년간 무대와 스크린, 안방극장을 누빈 한국 연기계의 거목이다. 수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인물을 연기했지만 대중의 기억에 남은 최불암은 언제나 우리 곁의 누군가였다. 정의로운 형사였고, 믿음직한 가장이었으며, 이웃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따뜻한 어른이었다.
최불암을 국민배우로 만든 대표작은 단연 MBC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다. 1971년 첫 방송된 '수사반장'은 1989년까지 18년간 이어지며 한국 수사극의 역사를 썼다. 최불암이 연기한 박영한 반장은 범죄 앞에서 타협하지 않고 집념을 갖고 진실을 추적하는 형사였다.
그가 활약한 1970~1980년대는 한국 사회가 격변하던 시기였다. 권위주의와 사회적 혼란 속에서 정의와 원칙이 언제나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시대에 최불암이 보여준 강직한 형사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남다른 울림을 줬다. 범인을 잡는 통쾌함만이 아니라 끝까지 진실을 밝히려는 집념, 약자의 편에 서려는 인간적인 면모가 박 반장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수사반장'이 정의로운 어른의 얼굴이었다면 1980년부터 2002년까지 22년간 방영된 '전원일기'는 따뜻한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최불암은 양촌리 김 회장 역을 맡아 우리 시대의 가장을 그려냈다.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묵묵히 가족을 지키고,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때로는 무뚝뚝하고 고집스러웠지만 그 속에는 깊은 정과 따뜻함이 있었다.
배우 김혜자와 보여준 부부의 모습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두 사람의 연기는 실제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부부처럼 자연스러웠다. '전원일기'는 단순한 농촌 드라마가 아니라 가족과 이웃,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었다. 최불암은 그 중심에서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시청자를 맞았다.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였고, 누군가에게는 할아버지였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정겨운 고향 어른이었다.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는 전혀 다른 장르였지만 최불암이 보여준 인물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정의를 지키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을 품었다. 두 작품이 오랜 세월 국민의 사랑을 받은 이유이자 최불암에게 '국민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붙은 배경이다.
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 것은 작품 밖에서도 이어진 친근함이었다. 1990년대 전국적으로 유행한 '최불암 시리즈'는 그 상징적인 사례다. 최불암을 주인공으로 한 짧은 유머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특유의 '파하~' 하는 웃음소리까지 유행했다. 근엄하고 묵직한 이미지의 배우가 유머의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최불암이 대중에게 친숙한 존재였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방송 진행자로서도 국민의 곁을 지켰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KBS '좋은나라 운동본부'에 출연하며 시민의식과 사회질서에 대한 관심을 환기했다. 드라마 속에서 정의와 공동체의 가치를 보여줬던 그가 현실에서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목소리를 낸 셈이다.
2011년부터 14년간 진행한 KBS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그의 소탈함과 따뜻함이 더욱 빛났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평범한 사람들의 밥상을 마주했고, 음식에 담긴 삶의 이야기와 세월의 흔적을 전했다. 유명 배우라는 거리감은 없었다. 투박한 손으로 음식을 차려낸 이웃에게 감사하고, 그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더없이 자연스러웠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최불암은 누군가를 연기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대중이 사랑해 온 배우 최불암의 인간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수사반장'에서 진실을 찾던 눈빛은 이웃의 삶을 들여다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이어졌고, '전원일기'에서 가족을 품었던 넉넉한 마음은 전국의 밥상으로 확장됐다.
최불암은 그저 인기 있는 배우에 그치지 않는다. 시대가 필요로 했던 어른의 모습을 보여줬고, 그 모습으로 여러 세대의 기억에 남았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달라져도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믿음과 온기는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최불암은 국민 배우로 남았고, 이제 새로운 작품에서 만날 수 없지만 오랫동안 기억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불암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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