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미래 등 대형사도 포함…유행 지나자 거래 절벽 방치 우려도

국내 ETF 시장이 순자산 450조원을 넘어섰지만, 모든 상품이 성장의 과실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의 외면 속에 순자산 50억원 미만으로 쪼그라든 ETF가 속출하고 있다. 반면 유행에 편승해 상품을 쏟아낸 자산운용사의 사후 관리 책임은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다. <더팩트>는 퇴출 위기에 놓인 좀비 ETF의 실태를 살펴보고, 상품 출시 경쟁 뒤에 따라오는 관리 책임과 투자자 보호의 사각지대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이한림 기자]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순자산 450조원을 돌파하며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았으나, 화려한 숫자의 이면에는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아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한 '좀비 ETF'가 무더기로 방치되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이 점유율 확대를 위해 트렌드성 상품을 무분별하게 상장시킨 뒤 거래량이 위축되자 사후 관리를 포기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들에게 전가되는 실정이다.
30일 <더팩트>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ETF를 운용자산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상장폐지 마지노선인 '순자산 50억원 미만'에 속해 퇴출 위기에 몰린 좀비 ETF는 28일 종가 기준 총 55개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거래소 규정상 상장 후 1년이 지난 ETF의 순자산액이 50억원 미만 상태로 지속되면 관리종목 지정·상장폐지 절차를 밟는다. 조사 결과 순자산 하위 55개 종목도 예외 없이 상장 후 1년이 지난 상품들이었다. 통상 신규 상장 상품은 자금 유입이 부진하더라도 1년간 퇴출 대상에서 제외되는 유예 조항을 적용받지만 55개 종목 모두가 즉시 관리종목 지정·상장폐지 요건이 발효되는 상태다.
시장에서는 국내 상장된 ETF 20개 중 1개꼴로 유동성 고사와 퇴출 위기에 놓인 배경으로 과거 특정 테마 붐에 맞춰 출시된 상품들이 흥행 분기점을 넘지 못한 채 장기간 시장에 정체돼 있었음을 보여준 결과로 풀이한다.
특히 운용사 규모나 브랜드 신뢰도가 높다고 해서 좀비 ETF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도 통계로 증명됐다. 시장 점유율 1, 2위를 다투는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 역시 각각 7개, 10개의 순자산 50억원 미만 부실 상품을 보유 중이다.
이들은 상품 출시 초기 화려한 수식어를 동원해 대대적인 광고 공세를 펼치며 투자자를 끌어모은 상품이다. 정작 유행이 지나고 자금이 이탈하자 활성화 대책 없이 자산이 쪼그라들도록 방치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독자적인 운용 역량이나 장기적 비전 없이 유행성 카피캣 상품을 밀어내고 방치하는 행태가 대형사 주도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미국스마트모빌리티S&P'는 출시 5년 차를 맞았지만 순자산이 49억원까지 추락했으며, 최근 자진 상장폐지 절차를 밟기 시작한 'KODEX 퀄리티PLUS(26억원)'와 'KODEX 멀티에셋하이인컴(H)(31억원)'은 당일 거래량이 각각 62주, 274주에 그쳐 거래 절벽 상태를 고스란히 노출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TIGER BBIG레버리지'는 5년 전 주가의 10분의 1토막이 나면서 현재 운용자산이 단 9억원에 불과하다. 'TIGER 200 생활소비재(46억원)' 등도 50억원 미만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상장폐지 위험을 노출하고 있다.
장중 정규 매매 시간 동안 개인 투자자의 거래가 사실상 단절된 상품도 속출하고 있다. NH-Amundi자산운용의 'HANARO Fn골프테마(순자산 48억원)'와 한화자산운용의 'PLUS 중형주저변동성50(순자산 41억원)'의 28일 거래량은 각각 단 1주에 그쳤으며, 29일은 거래량이 없었다.

문제는 기초지수를 추종하는 일반 패시브 ETF들이 유행이 지나 외면받는 것을 넘어 최근 자산운용업계가 신성장 동력으로 밀어붙인 '액티브 ETF'마저 좀비화의 늪에 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소비트렌드액티브(47억원)'가 대표적이다. 액티브 ETF는 펀드매니저의 역량을 앞세워 지수 대비 초과 수익을 약속하는 대가로 일반 패시브 상품보다 훨씬 높은 운용보수(수수료)를 책정한다. 다만 거래량이 끊기고 좀비 상품으로 전락한 이후에는 사실상 사후 관리가 멈췄는데도 투자자의 자산에서 매일 고율의 보수만 꼬박꼬박 차감해 가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처럼 운용사들이 소외 상품의 선제적인 청산에 소극적인 배경에는 ETF 특유의 펀드 보수 체계가 꼽힌다. ETF는 장중 거래 활성화 여부나 거래량이 없는 상태와는 무관하게 펀드에 남아 있는 순자산 총액에 비례해 매일 운용보수를 차감하는 구조다. 수탁고가 수억원 단위의 소액이더라도 계좌 유지 비용 대비 운용사로 들어오는 수수료 수익이 지속되기 때문에 운용사로서는 비용을 들여 선제적으로 상품을 걷어낼 유인이 낮다는 것이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이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퀄리티Plus'(순자산 26억원)나 'KODEX 멀티에셋하이인컴(H)'(순자산 31억원)처럼 스스로 상장폐지를 신청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역시 피해는 투자자의 몫으로 돌아온다. 해당 상품의 반등을 믿고 장기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은 자산운용사의 방치와 기습 청산으로 원치 않는 시점에 투자금을 강제 환수당하는 기회비용을 잃게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도 운용사들의 이런 상장 행태와 사후 방치 관행이 자본시장 전체의 신뢰도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좀비 ETF가 대책 없이 방치되면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장기간 묶이는 환금성 마비 사태가 고착화하고 고사 직전의 상품들이 시장 체질 개선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서다.
심수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내 ETF 시장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소규모 좀비 ETF의 방치 문제가 구조적 리스크로 자리 잡았다"며 "운용사들이 출시 당시에만 마케팅을 쏟아붓고 소외 상품은 보수만 수취하다가 기습 청산하는 관행을 막기 위해 투자자 보호 장치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②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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