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톱10 외국선수 중 로티 워드 1명만 출전
일정, 동선이 변수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한국 여자골프가 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으로 성장하기까지 국내에서 개최된 LPGA투어 정규대회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다. 2002년 CJ나인브릿지클래식으로 시작해 하나금융그룹 대회를 거쳐 2019년부터 BMW레이디스챔피언십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유일의 LPGA 정규투어로서 한국 여자골프의 세계화를 이끌어 온 소중한 무대다.
#Q스쿨 없이 미국행 가능…한국여자골프의 등용문 역할
무엇보다 국내 선수들에게 미국 진출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03년 안시현을 시작으로 2005년 이지영, 2006년 홍진주, 2014년 백규정, 2017년 고진영 등이 이 대회 우승을 발판으로 Q스쿨을 거치지 않고 미국 무대로 진출했다. 특히 고진영은 세계랭킹 1위까지 오른 바 있다.
우승하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값진 무대였다. 국내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같은 코스에서 실력을 겨루고, 그들의 경기 운영과 기술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오늘날 한국 여자골프의 경쟁력을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세계랭킹 톱10중 외국 선수는 로티 워드 단 1명 뿐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소중한 대회에 다소 아쉬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의 발길이 점점 뜸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2일 전남 해남 파인비치골프링크스에서 개막돼 나흘간의 열전에 돌입한 BMW레이디스챔피언십이 그렇다. 총상금 235만 달러가 걸린 올해 대회에는 세계랭킹 톱10 가운데 한국의 유해란, 김효주, 김세영을 제외하면 외국 선수는 세계 7위인 로티 워드(잉글랜드) 한 명만 출전했다. 세계 1위 넬리 코다(미국)는 벌써 3년 연속 불참이다. 2022년 이 대회 우승자이자 명예의 전당 회원인 리디아 고(뉴질랜드)도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출전치 않았다. 봄, 가을 아시안스윙을 3년간 계속 외면하고 이는 코다는 그렇다 치고, 올해 벌써 4승을 올린 2위 지노 티띠꾼(태국), 4위인 야마시타 미유(일본), 6위 인뤄닝(중국), 8위 찰리 헐(잉글랜드), 10위 해나 그린(호주) 등 세계 상위권 선수들의 이름도 없다. 지난해보다 톱랭커들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상하이, 쿠알라룸푸르는 가면서…한국만 스킵?
더욱 마음이 불편한 것은 다른 아시아 대회와의 비교다. 바로 전 주인 지난 18일 중국 상하이에서 끝난 뷰익LPGA상하이에는 티띠꾼과 인뤄닝 등이 출전했다. 인뤄닝은 최혜진을 1타 차로 제치고 우승컵까지 들어 올렸다. 그런데 인뤄닝 등은 이번 주 한국 대회를 건너뛰고 다음 주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메이뱅크 챔피언십에 출전할 예정이다. 최근 샷 감각이 좋은 야마시타는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메이뱅크에 나서며 해나 그린 역시 말레이시아 대회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따라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아시아 원정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닌 셈이다. 그런데 왜 한국 대회에는 유독 인색한 것일까. 물론 선수들의 불참 이유를 단정할 수는 없다. 개인적인 일정이나 휴식 계획, 컨디션 등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다만 프로 선수들이 대회 출전을 결정할 때 어떤 조건을 고려하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출전을 결정하는 변수는 동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상금과 랭킹 포인트다. 메이저대회나 특급대회에 정상급 선수들이 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회의 전통과 권위, 참가 선수들의 면면도 고려 대상일 것이다.
그런데 일 년 내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투어 선수들에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이동 동선이다. 이번 주에는 어느 나라에서 경기를 하고 다음 주에는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 공항에서 숙소와 골프장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이동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지 등이 대회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매주 다른 나라에서 경기가 열리는 아시안 스윙에서는 더욱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올해 BMW레이디스챔피언십의 개최지인 해남은 다소 불리한 조건이다. 파인비치는 아름다운 해안 경관과 훌륭한 코스를 자랑하지만 해외 선수들의 접근성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김포공항으로 이동한 뒤 국내선으로 광주까지 가서 다시 차량으로 해남을 찾아가는 경로를 생각해 보자. 물론 다른 항공편이나 대회 측 교통 지원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동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도착해 나흘간 경기를 치른 뒤에는 다시 말레이시아로 이동해야 한다. 선수들뿐 아니라 캐디와 동행 스태프들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일 것이다.
과거 하나은행 챔피언십이 인천 스카이72에서 열렸던 시절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다. 당시에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면 골프장과 숙소로 비교적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세계 각국을 누비는 선수들에게는 분명 매력적인 입지 조건이었을 것이다.
상금 규모도 생각해 볼 대목이다. 올해 BMW레이디스챔피언십의 총상금은 235만 달러다. 앞서 열린 뷰익LPGA상하이의 320만 달러보다 85만 달러, 다음 주 메이뱅크챔피언십의 300만 달러보다 65만 달러 적다. 세 대회 모두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CME 글로브 포인트는 500점으로 같다. 상금은 상대적으로 적고 이동 부담은 클 수 있는 상황이다. 아시안스윙 4개 대회를 모두 소화하기보다 한 대회를 쉬기로 결정하는 선수가 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물론 이런 조건들이 실제 불참 이유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내년도 컷오프 도입…또 하나의 변수
여기에 내년부터는 또 하나의 변화가 생긴다. 컷오프 도입이다. 국내에서 개최된 LPGA 정규대회는 2002년 창설 첫 대회를 치른 이후 20년 넘게 컷오프 없이 치러져 왔다. 출전 선수들은 성적에 관계없이 나흘간 경기를 치를 수 있었고 누구나 상금을 받아 갈 수 있었다. 장거리 이동을 감수해야 하는 해외 선수들에게는 적지 않은 장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출전 인원이 올해 84명에서 108명으로 늘어나면서 36홀 컷오프가 도입된다. KLPGA 선수들의 출전권이 15장에서 30장으로 확대되는 데 따른 변화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개최국 선수들의 출전 기회를 확대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변화다. 하지만 해외 선수들에게는 나흘간의 경기와 상금 수령을 보장 받을 수 없다는 의미도 있다. 물론 톱랭커들이 컷오프를 두려워해 대회를 피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컷오프가 있는 대회와 없는 대회를 선수들이 똑같이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일정, 개최지 변화엔 기대
다행히 내년에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LPGA 투어가 발표한 2027년 일정에 따르면 BMW레이디스챔피언십은 10월 14일부터 나흘간 열리며 가을철 아시안 스윙의 첫 대회로 자리를 옮긴다. 이후 중국 상하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일본으로 이어진다. 올해와는 이동 동선이 달라지는 셈이다.
개최 골프장도 바뀔 전망이다. 지난 2년간 대회를 개최한 해남 파인비치와의 계약이 올해로 끝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내년 개최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국제공항과 접근성이 좋은 골프장으로 옮겨간다면 해외 선수들의 이동 부담도 줄어들 수 있다. 상금도 240만 달러로 소폭 늘어난다. 컷오프 도입이라는 변화가 있지만 일정과 개최지 등에서는 기대를 걸어볼 만한 여지가 생긴 것이다.
#다시 찾고 싶은 대회로 매력 키워야
한국 여자골프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내 LPGA 대회가 해온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그리고 그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그래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잇따른 불참이 더욱 아쉽다. 선수들에게 출전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을 다시 찾고 싶어 할 만한 여건을 만들어가는 일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선수들에게 세계무대의 꿈을 키워주었던 소중한 대회다. 이제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기꺼이 찾아오고 싶어 하는 대회로서의 매력도 계속 지켜나갔으면 한다. 내년의 여러 변화가 그런 기대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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