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은 이사진 배상책임 불인정…가처분·임의준비금 해석에 반발

[더팩트|윤정원 기자] 영풍·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자기주식 공개매수 관련 주주대표소송의 1심 패소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사회의 의사결정 절차뿐 아니라 대규모 차입과 후속 유상증자 추진이 회사와 주주에게 미친 영향을 다시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부장 김석범)는 22일 영풍 측이 최윤범 고려아연 사내이사 등 이사 10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당시 이사회의 자기주식 공개매수 결정이 경영판단의 재량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며, 선관주의의무·충실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 1.6조 차입 뒤 유상증자…영풍·MBK "주주에게 부담 전가"
영풍·MBK파트너스는 이날 입장문에서 "이번 판결이 이사의 광범위한 경영 재량권과 외형적인 절차 이행만을 앞세운 나머지 자기주식 공개매수가 회사 재무건전성과 주주가치에 미친 실질적 영향을 간과했다"고 비판했다. 법률자문 등 절차를 거쳤다는 사정만으로 경영진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우선 공개매수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차입 부담을 문제 삼았다. 영풍·MBK는 고려아연이 1조6000억원 넘게 차입해 주당 89만원에 자사주를 매입하면서 8300억원 이상의 실질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오랜 기간 유지한 순현금 재무구조가 대규모 순차입 상태로 바뀐 것도 경영권 방어를 위한 결정의 결과라고 꼬집었따.
이들은 "회사의 미래 성장 동력과 재무적 안전판을 희생시킨 행위는 어떠한 외부 자문이나 형식적 절차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최 이사의 지배력 유지와 회사 전체의 이익을 구분해 이사회의 판단이 적정했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개매수 이후 추진했다가 철회한 일반공모 유상증자도 같은 맥락에서 거론했다. 고려아연은 2024년 10월 30일 차입금 상환 등을 위한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으나, 시장의 반발과 금융감독원의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 등을 거쳐 같은 해 11월 13일 철회했다.
영풍·MBK는 증자 추진을 경영권 방어 비용을 일반 주주에게 전가하려는 시도로 규정했다. 공개매수 기간에 유상증자를 준비하고도 시장에 알리지 않았다는 혐의로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도 항소 필요성의 근거로 제시했다. 공개매수 결정부터 자금조달과 후속 증자 추진으로 이어진 과정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입장이다.
◆ 법원은 경영판단 인정…가처분·준비금 해석에 이견
1심 판단과 영풍·MBK의 주장이 갈리는 지점은 이사회의 경영판단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다. 재판부는 외부 법률자문과 가처분 결정, 공개매수 가격과 자금조달 관련 사정 등을 고려해 이사회의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았다고 봤다. 반면 영풍·MBK는 차입 부담과 주주가치에 미친 실질적 영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판단이라고 반박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가처분은 긴급성을 요하는 잠정적·소명 단계의 판단일 뿐"이라며 "본안 소송은 그 실질적 위법성과 손해를 엄밀히 다시 따지는 절차"라고 말했다. 그는 "이사회 결의 당시의 자문과 가처분 결정뿐 아니라 차입 부담과 유상증자 추진 경위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자기주식 취득 재원으로 특정 목적의 임의준비금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양측의 해석이 엇갈렸다. 영풍·MBK는 해외사업 등을 위해 적립한 준비금을 주주총회 결의 없이 자사주 취득에 사용한 것은 주주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재판부는 상법 제462조 제1항에 따른 제한이 자기주식 취득에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의 회계상 총액에 관한 것일 뿐, 개별 재원 항목의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판단했다. 정관상 중간배당 제한 규정을 자기주식 취득에 유추 적용할 수 없다고도 봤다. 준비금을 배당가능이익에 포함한 것이 정관에 위배된다는 영풍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고려아연은 판결 이후 영풍·MBK의 소송 제기를 비판한 상태다. 회사는 "당사의 정상적 경영활동을 방해하며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묻지마식' 소송 남발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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