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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실적에도 웃지 못하는 은행장들…연임 가를 '해킹 책임론'
5대 은행장 연말 일제히 임기 만료…신한·국민·하나 고객정보 유출 부담
19일 금감원 국감 증인 채택…내부통제 역량 인선 변수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침해위협 대응 전금융권 긴급 점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이호성 하나은행장,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남윤호 기자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은행권이 올해도 견조한 실적을 이어가고 있지만 은행장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올해 말 5대 시중은행장의 임기가 일제히 만료되는 가운데 최근 잇따른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연임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동안 실적이 연임을 뒷받침하는 주요 명분이었다면 올해는 고객정보 보호와 내부통제 역량까지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특히 5대 은행장 전원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되면서 해킹 사태의 후폭풍이 연말 인사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환주 KB국민은행장과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 NH농협은행장 등 5명의 임기는 모두 오는 12월 31일 만료된다. 정상혁 행장을 제외한 4명은 지난해 1월 취임해 첫 연임 심사를 앞두고 있으며, 2023년 취임한 정상혁 행장은 3연임 여부가 관심사다. 각 금융그룹은 차기 은행장 선임을 위한 경영승계 절차에 돌입한 상태다.

이번 연말 인사는 5대 은행의 수장이 동시에 임기 만료를 맞는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린다. 이환주·정상혁·이호성 행장은 1964년생으로 동갑이고, 강태영 행장은 1966년생, 정진완 행장은 1968년생이다. 현직 은행장 전원이 연임 심사 대상에 오르는 만큼 각 금융그룹의 결정에 따라 은행권 최고경영자(CEO) 구도가 한꺼번에 바뀔 가능성도 있다. 특히 경영성과뿐 아니라 금융당국이 강조해 온 지배구조 개선과 내부통제 역량까지 인선 기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실적만 놓고 보면 현직 은행장들의 성적표는 엇갈린다. 올해 상반기 5대 은행의 합산 당기순이익은 9조340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6% 증가했다. 신한은행은 2조458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5% 증가하며 리딩뱅크 자리를 지켰다. KB국민은행은 2조2254억원, 하나은행은 2조1211억원으로 각각 1.7% 증가했다. 반면 우리은행은 1조3730억원으로 11.9% 감소했고, NH농협은행도 1조1629억원으로 2.1% 줄었다. 이달 말 발표될 3분기 실적 역시 연말 인선을 앞둔 은행장들의 주요 경영 성적표가 될 전망이다.

문제는 호실적만으로 연임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최근 금융권을 겨냥한 동시다발적 해킹 공격으로 신한은행에서 약 2만5000명의 고객정보가 유출됐고,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에서도 각각 119명과 89명의 개인정보 유출이 확인됐다. 국민은행의 경우 유출 인원 119명 가운데 고객은 99명, 임직원은 20명으로 파악됐다.

특히 정상혁 행장의 부담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한은행은 올해 상반기 5대 은행 가운데 가장 많은 순이익을 거두며 실적 측면에서 3연임 명분을 쌓았지만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이라는 악재를 맞았다. 정상혁 행장은 지난 1일 사고와 관련해 사과하고 피해 발생 시 전액 보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감독원이 사고 경위와 내부통제 체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만큼 향후 조사 결과가 연임 심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역시 내부통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해킹 공격이 약 43시간 이어진 뒤에야 이를 인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침해 탐지와 초기 대응 체계가 적절했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하나은행도 외부 해킹 세력이 영업지원시스템에 접근해 고객정보를 빼낸 것으로 확인됐다. 두 은행 모두 지난해 취임한 현직 행장들이 첫 연임 심사를 앞두고 있어 조사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신한은행, KB국민은행, 하나은행 등에서 인공지능(AI) 해킹 공격으로 고객 정보가 유출된 가운데 지난 6일 오전 시민들이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를 사용하고 있다. /박상민 기자
신한은행, KB국민은행, 하나은행 등에서 인공지능(AI) 해킹 공격으로 고객 정보가 유출된 가운데 지난 6일 오전 시민들이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를 사용하고 있다. /박상민 기자

반면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은 유사한 공격을 받았지만 현재까지 정보 유출 피해가 확인되지 않았다. 같은 시기 해킹 위협에 노출됐음에도 은행별 피해 여부가 엇갈리면서 보안 취약점 관리와 사전 대응 역량도 비교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유출 여부만으로 은행 전체의 보안 수준이나 경영진 책임을 단정하기는 어려워 금융당국의 추가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권의 보안 투자 실태를 둘러싼 비판도 커지고 있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5년간 20개 은행을 대상으로 한 모의해킹 과정에서 발견된 취약점 4770건 가운데 109건이 아직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이 수조원대 이익을 거두면서도 정보보호 투자와 취약점 개선에는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가 단순한 외부 공격을 넘어 경영진의 보안 관리·감독 책임을 따지는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오는 19일 열리는 금융감독원 국정감사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8일 전체회의를 열고 5대 은행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추가 채택했다. 증인 신청 사유는 모두 '금융권 해킹 사고 문제 점검'이다. 은행장들이 실제 출석할 경우 사고 발생 원인과 보안 투자 현황, 사고 인지 및 보고 체계, 재발 방지 대책 등을 둘러싼 집중적인 질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침해위협 대응 전금융권 긴급 점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이호성 하나은행장,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남윤호 기자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침해위협 대응 전금융권 긴급 점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이호성 하나은행장,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남윤호 기자

여기에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주문도 변수다.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와 은행의 CEO 선임 과정에서 친소관계가 아닌 역량 중심의 검증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신한금융은 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후보군 추천 권한을 부여했고, 하나금융도 은행의 후보 검증 참여를 확대하는 등 인선 절차에 변화를 주고 있다.

최근 KB금융이 양종희 회장의 연임 대신 이재근 부문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낙점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호실적에도 수장 교체를 선택한 만큼 금융권에서는 과거의 실적 중심 연임 공식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연말 은행장 인선에서도 경영성과와 함께 변화 대응 능력, 내부통제 역량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될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은행장 연임 여부는 얼마나 많은 이익을 냈는지뿐 아니라 고객정보를 얼마나 안전하게 지켰는지에 따라서도 평가받을 전망이다. 다만 해킹 사고 자체만으로 개별 CEO의 책임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 조사 결과와 국감에서 확인될 사고 대응 과정이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그동안 은행장 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데 실적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었다면 올해는 내부통제와 고객정보 보호 역량이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며 "아무리 좋은 실적을 거뒀더라도 보안 사고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이 확인된다면 연임 심사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seonye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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