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적 5㎡ 이상·건물 4층 이상만 신고 대상…현행법 허점

[더팩트ㅣ안디모데 기자] # 한글날을 이틀 앞둔 지난 7일 오후 손현문(63) 씨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인근 모 일식집 앞에 멈춰 섰다. 손 씨의 시선은 일식집 간판과 휴대전화를 오갔다. 일식집 간판에는 일본어만 적혀 있었다. 손 씨는 "일본어로 된 간판을 읽을 수가 없어서 눈앞에 약속 장소를 두고도 헷갈렸다"며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고 했다.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은 가운데 서울 도심 간판 10개 중 2~3개는 한글 없이 외국어로만 표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상 간판에 외국어를 사용하는 경우 한글 병기가 원칙이지만, 허가·신고 대상이 아닌 간판은 제재할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외국어 표기가 세대 간 단절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제도적으로 한글 표기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9일 서울시가 지난해 서울 16개 대학 인근 옥외광고물 한글 표기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 간판 7129개 중 외국어만 표기된 간판은 2086개(29.3%)로 집계됐다. 지난 2023년 실시한 서울 12개 자치구 옥외광고물 한글 표기 실태조사 결과에서는 전체 간판 7795개 중 외국어만 표기된 간판이 1651개(21.2%)였다.
이날 고려대 인근에도 카페(CAFE), 살롱(SALON), 인도 카레(INDIAN CURRY) 등 외국어만 표기된 간판이 눈에 띄었다. 시민들은 일제히 불편을 호소했다. 대학생 정윤진(24) 씨는 "외국어 간판이 한글보다 가독성이 떨어져 불편하다"고 말했다. 성북구 주민 신순임(74) 씨는 "음식점을 가려 해도 영어로 돼 있어 간판을 읽지 못할 때가 많다"며 "노인도 알아볼 수 있도록 한글을 써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 시행령 제12조2항은 '광고물의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맞춤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등에 맞게 한글로 표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외국 문자로 표시할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 위반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수 있다. 이행강제금은 1년에 총 2회까지 부과가 가능해 최대 1000만원에 달할 수 있다.
문제는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이 허가·신고 대상을 면적 5㎡ 이상이거나 건물 4층 이상에 설치된 간판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5㎡ 미만이거나 건물 3층 이하에 설치된 외국어 표기 간판의 경우 사실상 제재가 불가능하다.
관리·감독을 하는 자치구에서도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외국어 간판 민원이 들어오면 현장 점검을 나가지만 허가·신고 대상이 아닌 간판의 경우 제재할 수는 없다"며 "법령 안내와 시정 권고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규정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외국어 간판은 의도성이 없더라도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를 배척하게 된다"며 "이에 따라 세대 간 공감대의 단결로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프랜차이즈 점포 대형 간판의 외국어 단독 표기를 줄여야 한다"며 "소규모 간판에도 과태료나 벌점 등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해 한글 표기를 유도할 필요가 있고, 특허청에 등록된 상표의 경우에도 한글 병기를 원칙으로 하는 등 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lahep1217@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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