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l 유병철 전문기자] # 농구팬이라면 아직도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농구가 남녀, 3X3까지 4개 종목에서 모두 최고의 성적(금3 동1)을 냈기 때문입니다. ‘슬램덩크의 나라’ 일본에서, 전문가들도 기대하지 못했던 쾌거입니다.
남자농구는 결승전을 포함해 홈팀 일본을 2차례나 꺾었고, 강호 요르단과 이란도 제압했지요. 여자농구도 준결승에서 ‘진격의 거인’ 장쯔위(226cm)가 버티는 중국을, 결승에서는 최근 7연패 중이던 일본을 꺾었습니다. 남녀 모두 이 대회 통산 5번째 우승입니다. 여기에 3X3에서는 남자대표팀이 중국(8강), 필리핀(4강), 카타르(결승) 등 강호들에게 완승을 거두며 전승우승(6승)을 달성했습니다. 2018년 자카르타 대회 은메달 이후 최고성적이었죠. 같은 종목의 여자대표팀도 사상 첫 메달(동)을 획득했습니다.
# 이번 아시안게임에 남자는 귀화선수가 한 명도 없었고, 여자는 박지수, 박지현 등 원투펀치가 빠졌죠. 여기에 국내 남녀 프로농구의 인기도 신통치 않은 까닭에 한국농구가 그 동안의 부진을 보란 듯이 씻어내고 최고의 성적을 낼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물론 신드롬을 일으킨 이현중 여준석 이승현(이상 남자), 이소희 진안 강이슬(여자) 이주영 이동근(3X3 남자) 등 선수들이 혼신의 플레이를 펼쳤고, 지도자 등 코칭스태프도 한몫했을 겁니다. 대부분의 분석도 여기까지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2026 아시안게임 한국농구 쾌거’의 중심에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지난 2년여 동안 진행된 치밀한 체질개선이 진행됐죠. 바로 대한농구협회의 정재용 상근부회장입니다.

# 정 부회장은 스포츠미디어계와 농구동호인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원래 엘리트 축구선수였던 그는 중학교 때 부상으로 선수의 꿈을 접었죠. 연세대 시절 농구와 인연을 맺었고, 지금까지 30년이 넘도록 생활체육 농구를 즐기고 있습니다. 직업적으로는 그는 방송기자였습니다. 그것도 스포츠기자. 1995년 KBS 공채 22기로 입사해 오랫동안 스포츠현장을 누볐죠, KBS 보도본부 스포츠취재부장, 스포츠국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그런 그가 2024년 4월 1일자로 대한농구협회 상근부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시쳇말로 ‘덕업일치’가 되는 순간이었죠. 농구를 직접 즐기는 ‘덕후’에다가, 스포츠미디어 전문가이니 그의 합류는 나름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아예 취임과 함께 방대하면서 정교한 ‘대한민국 농구 미래전략보고서’라는 로드맵을 제시하고 실천에 나섰습니다.
# "사실 대표팀 전력강화를 위해 특별히 한 것은 없습니다. 그저 원칙대로 추진했을 뿐입니다." 정재용 부회장은 이번 아시안게임 대박의 비결에 대해 ‘원칙 준수’라고 답했습니다. 취임 때부터 ‘투명하고 공정한 대표팀 운영’이라는 확고부동한 원칙을 세웠고, 가장 중요한 경기력향상위원장 인선부터 이를 적용했습니다.
프로농구의 성공한 지도자인 유재학(남자)과 위성우(여자) 감독을 위원장으로 어렵게 영입했죠. 이후 정 부회장은 두 위원장 및 위원들과 지속적인 토론과 협의를 통해 원칙을 만들어 이에 따라 감독을 선임했고, 마찬가지로 선수도 그렇게 선발했습니다. 학연 지연에 따라 코칭스태프와 선수까지 나눠먹기식으로 선발했던 관행은 사라졌습니다. "협회는 이런 원칙을 지키면서 재정이 허락하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대표팀을 지원했을 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선수단이 한 겁니다."

# 정재용 부회장은 언론인 출신답게 논리적이면서도 차분하게 말했지만, 취재해 보니 지난 2년여 농구협회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했고, 또 그 과정에서 ‘농구인 출신도 아닌 사람이 와서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반발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3x3 전력강화를 위해 2024년 ‘올팍투어’는 대성공을 거뒀고, 남녀 연령별 대표팀도 차근차근 전력강화를 이뤄나갔습니다.
"막상 실행 과정에서 반대하는 일부 농구인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논리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여전히 많았거든요." 정 부회장은 이에 낮은 자세로 설득하고 또 설득했습니다. "농구인들이 시스템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서 한 걸음씩 계획을 추진했죠." 다행히도 이번 아시안게임 성과로 개혁작업은 이전보다는 순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정재용 부회장은 ‘지원은 하되 개입하지 않는’ 권혁운 대한농구협회장(아이에스동서 회장)에게도 감사를 전했습니다. 권 회장은 협회운영은 전문가들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신뢰해줬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한국양궁을 전폭적으로 후원해온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현대차 회장)을 연상시키는 대목입니다.
개혁적인 전문가의 가세, 확고한 원칙과 계획 수립, 설득을 바탕으로 한 실행,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뒷받침하는 협회장까지. 이런 2년 여의 뒷받침이 있으니 선수들이 혼연일체가 돼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정재용 발 대한농구협회의 개혁’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입니다.
동영상 프레젠테이션만 40분이 넘는 그의 ‘농구미래전력보고서’의 로드맵을 보면, 한국농구의 목표는 2032년 올림픽에서 남자는 세계 8강, 여자는 4강입니다. 꿈 같은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런데 사실 이번 아시안게임 쾌거도 그랬습니다. 어쨌든 한국농구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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