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작 또한 새 변신…넷플릭스 '버라이어티' 2027년 공개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배우 손예진이 오랜만에 사극으로 돌아왔다. 단순한 악녀도, 사랑에 매달린 여인도 아니었다. 시대에 가로막혀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 못했던 조씨부인을 통해 손예진은 욕망과 사랑, 질투와 후회가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그에게 '스캔들'은 배우로서 또 하나의 변화를 보여준 작품이자 새로운 챕터의 시작이었다.
배우 손예진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캔들'(극본 김민경, 연출 정지우) 공개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뛰어난 전략가이자 은밀한 내기를 시작하는 조씨부인 역을 맡은 그는 작품과 캐릭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18일 8부작 전편 공개된 '스캔들'은 조선시대 여성으로만 갇혀 살기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인 조씨부인(손예진 분)과 조선 최고의 연애꾼 조원(지창욱 분), 그리고 두 사람의 내기에 얽힌 희연(나나 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프랑스 고전 소설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하며 배경을 조선시대로 옮겨와 유교적 질서 속에서 자신의 재능과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가야 했던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사랑과 배신을 담았다.
공개 소감을 묻자 손예진은 "시청자분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세밀한 심리가 많아 어떻게 봐주실까 궁금했다"며 "재밌게 보시는 분도,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시겠지만 공개된 것 자체로 기쁘고 좋은 시기인 추석 연휴에 첫선을 보일 수 있어 감사하다"고 전했다.
특히 24여 년 만의 사극 복귀에 대해 쏟아진 호평에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손예진은 "어릴 적 사극을 찍을 때 물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사극은 내가 잘할 수 없는 장르라고 생각해 피해왔다"고 고백했다.
사극만의 아름다운 한복과 미술 세트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다만 한복 특유의 물리적인 제약은 여전했다. 손예진은 "한복은 가슴을 조여야 태가 예쁜데 긴장되는 장면을 찍을 때 어떨 때는 숨이 안 쉬어질 때가 있다"며 웃었다. 그럼에도 조씨부인의 내면과 외적인 모습이 오히려 잘 맞았다.
"조씨부인은 집도 새장에 갇힌 새 같은 느낌이 있고, 정숙하고 고고해 보이는데 속은 그 마음이 아니잖아요. 그런 점이 저에게는 오히려 조씨부인을 표현하는 데 잘 맞았다 싶었어요. 힘들었지만 도움이 됐죠. 무엇보다 아름다운 한복을 입어 좋았던 경험이에요."
손예진이 이번 작품에서 주목한 건 조씨부인을 단순한 악녀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스캔들'은 프랑스 고전 소설과 이를 영화화한 작품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시리즈라는 형식을 통해 인물들의 관계와 서사를 확장했다. 손예진은 "단순하게 한 남녀가 진짜 사랑을 알게 돼서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물들 간의 서사가 더 많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특히 조씨부인이 사랑 내기를 제안하는 이유에도 시대적 배경이 있다고 봤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이를 펼치지 못한 채 현실과 타협해야 했던 여성의 삶이 조씨부인의 욕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손예진은 "조씨부인이 하나의 감정으로 표현되는 인물이 아니라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손예진의 말처럼 조씨부인은 단면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캐릭터다. 냉소적인 면모부터 정숙함, 그 뒤에 숨겨진 자아실현의 욕망과 질투까지 다채로운 레이어를 그려내야 했다. 손예진은 "말과 표정, 행동이 매 순간 달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며 "과하면 이상해질 수 있어 디테일한 표정과 말투 하나까지 한 장면 한 장면 깊이 고민하며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조원과 있을 때와 정경부인(강지은 분), 희연, 소옥(신윤하 분)을 대할 때도 같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조씨부인이다. 손예진 역시 촬영 내내 "이 여자의 진짜 심정은 무엇일까, 진짜 민낯은 무엇일까"를 따라갔다고 전했다.
질투 역시 단순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소실을 들이기로 했지만 막상 소옥이 집에 들어오자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이 생긴다. 손예진은 "아무리 그래도 직접 부닥치면 이런 부분이 있네? 싶은 게 조씨부인은 많은 것 같다"며 "소옥을 바라볼 때도 단지 질투가 아니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예진은 조씨부인의 진짜 욕망과 진심이 나온 모습으로 엔딩을 꼽았다. 당초 눈밭에서 조원을 기다리는 조씨부인의 모습을 담는 것으로 구상됐던 엔딩은 이후 편지를 쓰는 장면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조정됐다.
손예진은 "조원이 떠난 뒤 붓을 들고 홀로 앉아있는 초라한 모습이야말로 조씨부인의 진짜 민낯이자 후회, 사랑, 집착이 뒤섞인 진심이었다"고 짚었다. 이어 "임금에게 올릴 글을 직접 쓰고 함박웃음을 짓는 대목은 인물의 본질이다. 억눌린 재능을 펼치지 못했던 여인이 비로소 '나 자신'으로 살고 싶었던 욕망이 표현된 순간이라 참 짠했다"고 털어놨다.
"조씨부인이 원했던 건 나로 살고 싶었던 것,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자신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드러낼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아픔과 자괴감이 망가진 형태로 발현된 것 같아요."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과의 관계성도 언급했다. 희연 역의 나나에 대해서는 "나나 씨는 희연 자체였다. 순수한 모습 그대로 있어서 나도 모르게 연민과 동질 의식을 느꼈다"고 돌이켰다. 그 결과 자신이 미리 설계한 조씨부인의 모습에서 한발 물러날 수 있었다. 손예진은 "조씨부인은 알 수 없는 이기적인 사람이지만, '나는 희연이 되고 싶다'는 감정은 진짜였다"며 "잠깐을 살더라도 진짜를 살고 가겠다는 용감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나나 씨를 보며 내 안의 무장이 해제되는 경험을 했다"고 설명했다.
유일하게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위험한 감정선을 주고받았던 조원 역과의 호흡에 대해서는 팽팽했던 리허설 과정을 짚었다. 대사량이 어마어마했던 만큼 상대와의 장면은 매번 밀도 높은 긴장감 속에서 치러졌다.
"조원과 붙는 장면은 1부 엔딩부터 대사만 몇 장에 달할 정도로 길고 감정의 폭도 컸어요. 한 자리에 앉아서 그 모습 그대로 인물의 기류를 끝까지 끌고 가야 했기 때문에 둘이서 마치 단편 연극을 하는 기분이 들었죠. 매번 만날 때마다 진이 빠질 정도로 디테일하게 동선과 표정을 맞췄어요. 서로를 잘 알면서도 도발하고, 조이는 관계에서 오는 특유의 긴장감을 살리는 게 중요했어요."
감정의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는 정지우 감독 특유의 디렉팅이 이정표가 됐다. 손예진은 "감독님은 화를 내라거나 감정을 죽이라는 디테일한 연기 디렉팅을 하지 않는다. 다만 '조씨부인은 안은 큰 그릇인데 이걸 펼치지 못하고 억눌렸을 때 어떻게 삐져나올까'라는 것처럼 큰 그림을 던져주셨다"며 배우들과 함께 감정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전했다.

'스캔들'은 손예진에게 단순한 사극 복귀작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는 "결혼 전과 후로 나뉠 수도 있는 것 같고, 내가 마흔이 넘어가면서 중년 배우로서 보여드릴 수 있는 것들의 챕터들이 한 장씩 덮여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장이 열림과 동시에 조씨부인도 하나의 장의 시작인 것 같다"며 "누군가가 내게 그런 말을 하더라. 희연이 아닌 조씨부인 역을 하는 나이가 됐다고. 그야말로 새 챕터로 넘어가는 시작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소중한 작품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손예진이 바라보는 다음 챕터는 '변화'다. 실제로 또 다른 변신을 예고하며 이미 했던 것을 반복하기보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데 여전히 욕심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배우로서의 욕심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이전과 달라진 점도 있다. 과거에는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려 했다면, 지금은 일과 삶의 균형까지 함께 생각하게 됐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잘할 수 있는, 도전하고 싶은 역할을 하나씩 차근차근 찾으면서 천천히 가보자는 게 있어요. 무조건 작품을 많이 하자는 욕심보다는 축적된 에너지를 좋은 작품에서 발산하자는 마음이에요."
손예진의 차기작은 넷플릭스 '버라이어티'다. K팝 산업을 둘러싼 인간군상과 욕망의 충돌을 그려낸 작품으로, 손예진은 한국 최고의 아이돌 그룹을 제작한 기획사 대표로 분해 재계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인물을 보여줄 예정이다.
손예진은 "다음 작품도 변신의 변신이다. 조씨부인과는 또 다른 변신이자 많은 변신이 될 수도 있으니 지켜봐 달라"고 전했다.
"저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게 좋아요. 매번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드리고, 시청자나 관객분들이 그 모습을 보며 즐거워해 주실 때 느끼는 희열이 굉장히 크거든요. 그래서 항상 새로운 역할을 찾게 되고,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모습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극대화해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앞으로도 제가 변신할 수 있는 작품들이 계속 들어온다면 끊임없이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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