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 회장 퇴진 후 7년째 CEO 경영 체제
2세 경영 참여 전무·오너 지배력은 굳건

[더팩트 | 손원태 기자] 국내 재계 50위인 이랜드그룹에는 여느 대기업과 다른 독특한 점이 하나 있다. 창업주 박성수 회장과 그의 자녀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은 물론, 승계를 위한 움직임조차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랜드그룹은 2019년부터 전문경영인(CEO) 체제를 이어오고 있다.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랜드그룹의 최상단 모회사인 이랜드월드는 올해 상반기 기준 상장사 2곳과 비상장사 121곳을 포함해 총 123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그룹의 사업 구조는 패션, 유통, 미래, 기타 등 4개 부문으로 나뉜다.
패션 부문에서는 스파오, 후아유 등 자체 SPA 브랜드와 뉴발란스 등 글로벌 브랜드를 전개한다. 유통 부문은 NC백화점과 뉴코아아울렛, 킴스클럽 등을 운영 중이다. 미래 부문은 외식 브랜드 애슐리를 비롯해 켄싱턴리조트, 테마파크 이월드 등을 영위한다. 기타 부문은 주류 도매·유통 사업을 하는 이랜드팜앤푸드와 정보기술(IT) 전문 계열사 이랜드이노플 등을 아우른다.
이랜드그룹은 올해 상반기 매출(연결 조정 전)이 전년 대비 2.0% 증가한 3조4545억원을 기록했다. 부문별로는 △패션 1조8477억원 △유통 8868억원 △미래 5307억원 △기타 1893억원 순이다. 이는 이랜드그룹의 핵심 수익원이 패션과 유통에 있음을 보여주고, 동시에 외식과 레저 등을 미래 부문으로 육성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한 이랜드그룹의 자산총액은 11조450억원으로, 국내 재계 순위 50위 규모다. 대기업집단으로 현재 그룹 총수(동일인)에는 창업주 박성수 회장이 이름을 올렸다.

◆ 패션에서 외식·호텔·유통·건설로 성장한 이랜드
이랜드그룹의 모태는 40여년 전인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 회장은 서울 이화여대 앞에 '잉글랜드'라는 2평 남짓한 옷 가게를 열고 첫 사업에 뛰어들었다. 패션의 중심지가 영국이라는 생각에 상호를 잉글랜드로 정했다.
박 회장은 맞춤복 중심이던 1980년대 의류 시장에 표준화된 디자인과 매뉴얼을 접목한 '패션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어 1986년 법인을 설립하면서, 고유 지명을 상호로 쓸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사명을 '이랜드'로 바꿨다.
박 회장은 1990년대 들어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기 시작했다. 1994년 국내 최초로 도심형 아울렛인 '2001아울렛'을 선보였고, 2년 뒤 '설악 켄싱턴 스타호텔'을 인수해 호텔로도 영역을 넓혔다. 아울러 중국, 베트남, 스리랑카 등에 의류 생산시설을 짓고 해외 패션 시장에도 진출했다.
2000년대에는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세를 키웠다. 2004년 뉴코아의 10개 백화점과 15개 할인점(킴스클럽)을 인수하며, 유통업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2007년에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의 국내 판권을 확보했고, 2년 뒤에는 토종 SPA 브랜드인 스파오를 만들었다.
2010년대에도 대구 테마파크 이월드를 인수하고 사이판 등 해외 리조트 사업에 공을 들이며 레저 영역을 넓혔다. 2020년대 들어서는 서울 신촌 청년주택 공급을 계기로 건설 분야로까지 보폭을 확장했다.
이랜드그룹이 100여곳이 넘는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 50위권에 진입하게 된 배경이다. 다만 그룹 외형에 비해 상장사는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이월드'와 부동산 투자회사인 '이리츠코크렙' 2곳에 그친다.

◆ 박성수 회장 경영 물러나도 지배력은 여전히 굳건
이랜드그룹은 2019년을 기점으로 중대한 변곡점을 맞았다. 창업주 박성수 회장과 그의 여동생 박성경 전 부회장이 그룹 경영에서 동시에 물러나면서다. 이후 이랜드그룹은 각 계열사 CEO가 전권을 쥐고 사업을 이끄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올해는 사업 전문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BG(Business Group) 경영 체제를 도입했다. 기존 유통 사업 부문을 '유통BG'와 '식품BG'로 분리 재편해 영역별 책임경영을 강화했다.
현재 유통BG는 NC백화점과 패션 전반을 총괄하는 채성원 대표가, 식품BG는 킴스클럽과 이랜드이츠(애슐리 등)를 이끄는 황성윤 대표가 각각 맡고 있다.
국내 대기업 특성상 창업주가 일선에서 물러나면 2세들이 경영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랜드그룹은 7년째 전문경영인 체제를 고수하며 2세 승계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박 회장이 그룹 지배력이 확고한 만큼 결국 자녀 승계 수순을 밟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이랜드월드는 비상장사로, 박 회장이 최대주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이랜드월드 지분율은 박성수 회장이 40.68%(191만9642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배우자인 곽숙재 씨가 8.06%(38만405주)로 2대 주주에 올라 있다. 여기에 이랜드월드가 보유한 자사주 44.76%(211만2103주)를 합치면 사실상 박 회장 개인이 그룹 전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1953년 3월생인 박 회장은 올해 만 73세로 고령에 접어들었다. 박 회장 슬하에는 1남 1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 자녀 모두 이랜드월드를 비롯한 그룹 계열사 지분을 전혀 보유하지 않고 있으며, 경영 활동에도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 박 회장이 평소 대외 활동을 자제하는 은둔형 경영자로 꼽히는 만큼, 자녀들의 구체적인 신상 역시 베일에 싸여 있다.
이에 본지는 이랜드그룹 측에 박 회장 자녀들의 경영 참여 여부와 CEO 중심 체제를 그대로 이어갈 것인지에 질의했다. 이와 관련해, 그룹 관계자는 "두 사안 모두 맞다"며 CEO 중심의 책임경영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tellm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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