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국선은 수사부터 상고심까지…사건 적체 심각

[더팩트 | 정예은 기자] 피고인과 범죄 피해자의 법률 조력을 담당하는 국선변호사들이 과도한 사건 부담과 낮은 보수, 지급 지연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지원 대상까지 확대되면서 사건 배당과 보수 지급 등 국선변호 제도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일반 국선변호인의 기본 보수는 사건당 55만 원가량이다. 사건의 난이도와 처리 기간 등에 따라 보수가 늘 수 있지만 통상 사선 사건보다 보수가 현저히 적은 수준이다.
양윤섭 대한변호사협회 국선변호사회 회장은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사건과 달리 혐의를 다투는 사건은 증인신문 등 준비해야 할 일이 훨씬 많다"며 "몇 년간 사건이 진행되더라도 보수 증액에 한계가 있어 사선 사건과 비교하면 보수가 10~20배가량 차이가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폭언·협박에 보수까지 밀려…국선변호사 '이중고'
의뢰인을 선택할 수 없는 국선변호인은 피고인과 갈등을 겪더라도 사건에서 손을 떼기도 어렵다. 현행 형사소송규칙은 피고인이나 피의자에게 폭행·협박·모욕을 당해 신뢰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나 부정한 행위를 종용받은 경우 등에만 법원 또는 판사의 허가를 받아 사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 변호사는 "사건 진행 이전 단계에서부터 의뢰인과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사선과 달리 국선은 국가가 명부에 있는 변호사를 선정하기 때문에 아무런 신뢰관계가 없이 사건을 시작한다"며 "국선이라고 무시하거나 무례하게 대하기도 하고, 스토킹이나 성범죄 피고인이 여성 국선변호사를 괴롭히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보수 지급이 지연되기도 한다. 6년째 국선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낭희 변호사는 "피고인 국선변호사들은 일을 하고 난 뒤에 돈을 받는데 그마저도 늦게 들어온다"며 "변호사들끼리는 우스갯소리로 '최고의 임금체불자는 국가'라는 이야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실제 국선변호사 보수 연체액은 지난 2021년 이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 2021년 4억7556만 원 수준이었던 국선변호사 보수 미지급액은 2022년 28억1492만 원, 2023년 94억8563만 원, 2024년 225억6592만 원으로 매년 늘었다. 지난해에는 297억5369만원으로 4년 새 60배 이상 증가했다.

◆사건 적체에 보수 산정도 '조립식'…피해자 국선의 고충
피해자 국선 변호사는 사건 장기화에 따른 업무 과부하도 호소한다. 수사 단계에서 선정된 뒤 재판까지 지원하는 사이 새로운 사건이 계속 배당돼 담당 사건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수원지검 안산지청에서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기훈 변호사는 매주 평균 2건의 신규 사건을 배당받아 매달 50~60건을 동시에 처리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피고인 국선은 1심이면 1심, 항소심이면 항소심으로 기준이 명확한데 피해자 국선은 수사부터 시작해서 1심, 항소심, 상고심까지 가기도 한다"며 "그러다 보니 사건 회전율이 높지 않고 사건이 많이 쌓인다"고 말했다.
사건 한 건에 들어가는 시간은 통상 10~20시간가량이다. 경찰 조사 참여에 2~3시간, 피해자 면담에 한 차례당 1시간가량이 소요되고 전화상담과 의견서 작성 등이 더해진다.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보수 역시 업무별로 산정된다. 피고인 국선은 사건당 55만 원의 기본 보수를 토대로 증액하는 반면 일반 피해자 국선은 조사 참여와 의견서 제출, 상담 등 실제 수행한 업무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
이같은 보수 산정 방식을 두고 '조립식'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김 변호사는 "조사 한 번 가면 얼마, 의견서 한 번 써주면 얼마 이런 식으로 한 건당 통상 20만~30만 원 정도를 받는다"며 "피해자가 국선변호사 선임을 원할 때는 이미 초기 조사가 끝난 경우도 많아 추가 조사가 없다면 받을 수 있는 보수도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국선 지원 대상 확대…보수 증액은 물론 '인력 충원' 시급
피해자 국선 지원 규모는 매년 4만 건에 육박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피해자 국선 지원실적은 2022년 3만9161건, 2023년 3만7150건, 2024년 3만7605건, 지난해 3만8507건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는 35명에서 49명으로 늘었다.
지난 6월부터 기존 5대 범죄(성폭력·아동학대·장애인학대·인신매매·스토킹)에 살인·강도 등 특정강력범죄 피해자도 국선변호사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법무부는 이에 맞춰 내년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 7명을 증원하고, 현재 전담변호사가 배치되지 않은 지역을 중심으로 채용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내년도 전담변호사 운영 예산을 올해보다 11억1000만원 늘어난 66억6100만원으로 편성했다. 비전담 변호사 수당은 올해와 같은 65억3500만원으로 편성했다. 전체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사업 예산은 132억5500만원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전담변호사 증원과 별개로 비전담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확충해 개별 변호사에게 쏠리는 사건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기훈 변호사는 "피해자 국선은 피고인 국선에 비해 인력풀이 한정돼 있어 사건 적체도 상대적으로 심각하다"며 "업무 적체가 국선변호사 제도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낭희 변호사 역시 "보수 증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변호사 개인의 희생과 선의에 기대는 구조에서 벗어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ye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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