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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소원 반년, '4심제'는 일단 기우…첫 취소 결정이 시험대
2300건 몰린 재판소원, 본안심리 21건
첫 결정 이후 법원과 권한 충돌 과제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재판소원이 시행된 지난 3월12일부터 지난 21일까지 총 2300건이 접수됐다. / 서예원 기자.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재판소원이 시행된 지난 3월12일부터 지난 21일까지 총 2300건이 접수됐다. / 서예원 기자.

[더팩트ㅣ설상미 기자] 법원의 확정재판으로 기본권을 침해받은 당사자가 헌법재판소에 재판 취소를 청구할 수 있는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 6개월을 맞았다. 그동안 2300건이 접수됐지만 전원재판부 심리에 넘겨진 사건은 21건에 그쳤다. 단순한 판결 불복은 대부분 걸러졌지만 실질적인 권리구제 효과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26일 헌재에 따르면 재판소원이 시행된 지난 3월12일부터 지난 21일까지 총 2300건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전원재판부에 회부된 사건은 21건으로 회부율은 0.91%다. 2152건(93.6%)은 각하됐다. 재판소원은 법원의 확정재판으로 기본권을 침해받은 당사자가 헌재에 재판의 취소를 청구하는 제도다. 헌재 결정에 반하거나 적법절차를 어긴 재판, 기본권 침해가 명백한 재판 등이 대상이다.

◆회부율 0.91%…'4심제' 우려 완화됐나

전원재판부 회부율이 1%에도 미치지 않으면서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로 운영될 것이라는 우려는 상당 부분 불식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헌법재판소 출신 한 법조인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재판을 바라보는 지점이 다른 만큼 재판소원이 4심제로 운영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가까웠다고 본다"며 "재판소원을 통한 권리구제보다 법원 재판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1%에 못 미치는 전원재판부 회부율이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재판소원은 사실관계나 법률 해석을 다시 판단하는 상소 절차와 달리 확정재판의 기본권 침해 여부를 심사하는 권리구제 수단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 재판소원을 시행하는 독일과 스페인에서도 인용률은 대체로 1% 안팎에 그친다.

재판소원 도입 반년을 맞은 헌법재판소가 1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연구관들과 만나 제도 운영 쟁점을 논의했다./헌법재판소
재판소원 도입 반년을 맞은 헌법재판소가 1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연구관들과 만나 제도 운영 쟁점을 논의했다./헌법재판소

◆회부 사건 절반은 '항소이유서' 쟁점...내달 첫 심리

전원재판부에 회부된 21건 중 절반가량인 10건은 법원의 재판 절차가 적법했는지를 다투는 사건이다. 모두 민사재판 당사자가 항소이유서 제출기한을 넘겼다는 이유로 법원이 항소를 각하해 문제가 됐다.

민사소송법 제402조는 항소인이 항소기록접수통지를 받은 날부터 40일 이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기한 내 제출하지 않으면 항소법원이 항소를 각하하도록 규정한다. 재판 지연을 막기 위해 지난해 3월 도입됐다.

청구인들은 법원이 제출기한을 잘못 계산하거나 기한 연장 신청에 대한 결정과 고지를 제때 하지 않은 채 항소를 각하한 것은 위법한 절차 진행이라며 재판청구권과 평등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한다. 일부 청구인은 제출기한을 잘못 계산하거나 연장 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과 고지를 제때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는 다음 달 주요 재판소원 사건 2건의 공개변론을 잇달아 연다.

다음 달 21일에는 참고인에게 압수수색 영장 사본을 교부하지 않은 사건을 심리한다.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을 수사한 특별검사팀은 2022년 참고인 신분이던 김영수 변호사의 주거지와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면서 영장 사본을 교부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지난 2월 김 변호사와 같은 참고인에게는 압수수색 영장 사본을 받을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김 변호사는 대법원 결정이 평등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재판청구권을 침해했다며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같은 달 23일에는 '재판소원 1호'인 녹십자 백신 입찰 담합 과징금 사건의 공개변론이 열린다. 녹십자는 입찰 담합 형사재판에서는 무죄를 확정받았지만 같은 사안의 과징금 취소 행정소송에서는 패소했다. 대법원이 상고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하자 충분한 심리를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법조계에서는 재판소원의 실질적 권리구제 효과가 첫 인용 결정을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더팩트 DB
법조계에서는 재판소원의 실질적 권리구제 효과가 첫 인용 결정을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더팩트 DB

◆첫 인용 결정 분수령...법원과 권한 충돌 문제 과제

법조계에서는 첫 인용 결정이 재판소원의 권리구제 실효성과 제도 안착 여부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본다. 헌재가 법원의 재판 절차와 법률 해석을 어느 범위까지 심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될 전망이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소원은 법원의 확정재판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대부분 대법원 판결을 두고 헌재와 대법원이 판단을 달리하는 문제가 될 것"이라며 "헌재는 대법원도 납득할 수 있고 국민 대다수가 재판 취소에 공감할 만한 사건에서 첫 인용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결정의 논리가 정연하고 결과가 합리적이어야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며 "대법원도 판결에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결정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재판 취소 결정 이후의 절차도 과제다. 헌재 결정이 법원을 어디까지 구속하는지를 놓고 헌재와 대법원 간 권한 충돌이 불거질 수 있다. 취소된 확정판결의 효력을 어떻게 볼지와 법원의 재심리 범위도 쟁점으로 남아 있다.

법무법인 위온 이영훈 변호사는 "재판이 취소된 뒤 기존 재판의 기판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 사실인정부터 다시 해야 하는지, 기존 재판에서 제출된 증거와 기록을 그대로 원용할 수 있는지 등의 문제가 예상된다"며 "실체적 판단 기준뿐 아니라 절차적 측면에서도 재판 실무를 조속히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now@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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