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승을 위해선 상대 압박을 풀어낼 전술적 해법이 필요하다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이라면 상대와 선발 라인업이 바뀌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22일 일본 나고야 미즈호 공원 럭비경기장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D조 최종전에서 나타난 한국의 심한 경기력 기복은 토너먼트를 앞두고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2-0 승리로 조 1위를 확정하며 8강에 진출했다는 결과만 놓고 보면 더할 나위 없는 경기였다. 그러나 우승으로 가는 길에 있어 결과만큼 경기 내용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주일 전 카타르전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경기력과 비교하면 이날 사우디아라비아전은 분명 아쉬움이 컸다.
양 팀 모두 이미 8강 진출을 확정한 상태에서 로테이션을 가동했지만 조 1위와 2위가 맞이할 토너먼트 대진의 난이도 차이를 고려하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경기였다. 이민성 감독은 카타르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배현준과 양현준 대신 양민혁과 이현주를 선발로 내세우며 변화를 줬다.
문제는 사우디가 카타르보다 훨씬 강한 압박과 조직력을 보여준 상대였다는 점이다. 카타르전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간 선제골을 터뜨리며 경기의 주도권을 가져왔지만, 이날은 사우디의 강한 전방 압박에 고전하며 전반을 득점 없이 마쳤다. 특히 중원에서 상대 압박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서 패스 미스가 잦았고, 전방의 엄지성과 김명준은 고립되는 시간이 길어졌다.
새롭게 선발로 나선 양민혁과 이현주도 개인적인 번뜩임은 간헐적으로 보여줬지만, 이를 팀 단위의 연계 플레이로 연결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공격 전개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으면서 카타르전에서 보여줬던 속도와 날카로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공격 1·2선의 유기적인 움직임이었다. 김명준을 중심으로 엄지성, 양민혁, 이현주가 서로의 위치를 바꿔가며 공간을 만들어내는 장면이나 상대 수비를 흔드는 조직적인 패턴 플레이가 충분히 나오지 않았다. 상대 압박을 벗겨낸 뒤 다음 단계로 연결하는 팀 차원의 해법이 부족했고, 그 결과 패스의 전개 속도는 한 템포씩 늦어졌으며 공간 창출도 제한적이었다.
더욱 아쉬운 것은 비슷한 문제가 이미 한 차례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민성호는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 전지훈련에서 23세 이하 현지 대표팀과 가진 친선경기 2연전을 0-4, 0-2로 모두 패했다. 당시에도 상대의 압박에 패스 길목이 차단되며 역습을 허용해 실점했던 장면이 많았는데, 이번 경기에서도 이에 대한 해법이나 대비책을 보여주지 못한 채 수차례 위기를 맞았다는 점은 토너먼트를 앞두고 반드시 돌아볼 부분이다.
유기적인 탈압박을 통한 빌드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중원에서 볼이 자주 끊겼고, 결국 후방에서 전방으로 길게 넘겨 공격수의 개인 능력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공격이 반복됐다. 사우디가 수비 라인을 끌어올린 만큼 뒷공간을 노리는 선택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롱패스의 정확도와 전방 선수들의 움직임이 맞물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대 뒷공간을 겨냥한 공격이 오히려 공격권을 쉽게 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체력적인 조건에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한국은 일주일의 충분한 휴식을 취한 반면 사우디는 단 3일을 쉬고 경기에 나섰다. 그럼에도 한국의 집중력이 더 떨어지는 모습이 나타났다. 상대의 거친 몸싸움에 파울 판정을 기다리는 듯한 장면이 반복됐고, 볼 경합과 세컨드볼 싸움에서도 적극성이 충분하지 않았다. 사우디의 빠른 패스와 공간 활용에 계속해서 대응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답답한 흐름은 후반 초반 양민혁을 빼고 배준호를 투입하면서 비로소 활력을 찾았다. 결국 후반 중반 신민하와 김명준의 헤더 연속골이 터지면서 승기를 잡았다. 결과는 2-0 승리였고 조 1위라는 목표도 달성했다. 그러나 토너먼트에서는 상대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한 번의 압박 대처 실패와 공격 전개의 단조로움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이날 한 경기의 경기력만으로 이민성호의 경쟁력을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수한 개인 기량을 갖춘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이를 하나의 팀으로 묶어내는 전술적 완성도가 충분하지 않다면, 강호를 상대로 고전할 가능성은 커진다. 우즈베키스탄이나 일본처럼 전력과 조직력을 함께 갖춘 팀을 만난다면 이번 경기에서 드러난 문제는 더욱 선명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제 토너먼트다. 조별리그에서 드러난 경기력의 기복을 단순히 로테이션의 결과로 넘기기보다는, 강한 압박을 받았을 때 어떻게 탈압박하고 공격을 전개할 것인지에 대한 해법을 구체화해야 한다. 개인 기량에 기대는 것만으로는 우승 경쟁에서 분명한 한계가 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양민혁이다. 오랜 경기 공백 이후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는 과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날 경기에서는 기대했던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개인 돌파와 스피드라는 자신의 장점을 팀 공격 속에서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가 남은 경기의 과제다. 이번 대회가 단순한 메달 경쟁을 넘어 선수들의 성장과 향후 대표팀 자원 육성이라는 의미까지 갖는 만큼, 양민혁 역시 남은 경기에서 자신의 장점을 다시 보여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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