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중심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함께 강해질 것인가'다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21일 로베르트 모레노 임시감독 체제에서 첫 소집을 시작했다. 이번 명단은 모레노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처음 구성한 대표팀이다. 손흥민과 김민재, 이강인, 황인범, 이재성, 황희찬 등 기존 대표팀의 주축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얼굴을 과감하게 포함해 경쟁의 문을 열었다.
또한, 24일 열리는 에콰도르와의 평가전은 단순한 첫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기존의 핵심 자원과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이 어떤 방식으로 조화를 이룰지, 모레노 감독의 구상이 그라운드에서 어떻게 구현될지를 확인할 첫 무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표팀을 둘러싼 외부 환경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모레노호 출범을 계기로 손흥민에서 이강인으로 대표팀의 중심축이 이동하는 ‘세대교체’를 이야기하는 시각도 있다. 대표팀 주장 교체론부터 에이징커브 논란까지, 홍명보호 때부터 계속돼 온 손흥민 흔들기가 다시 시작된 모습이다. 2024년 1월 아시안컵 당시의 ‘탁구장 충돌’ 사건까지 다시 소환해 손흥민과 이강인의 갈등설을 부각하는 모습도 있다. 하지만 새 체제 출범부터 논란을 키우고 과거의 한 장면을 현재 대표팀의 경쟁 구도로 끌어오는 것이 과연 한국 축구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축구는 정치가 아니다. 세대교체는 기존 선수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선수가 기존의 강자와 경쟁하며 팀의 선택지를 넓혀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현재 가장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는 연령과 관계없이 전술의 중심에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모레노 감독이 현재 경기력이 좋은 핵심 자원들을 중용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선수들에게 기회를 부여한 첫 명단은 주목할 만하다. 모레노 감독은 과거의 명성보다 현재 소속팀에서의 역할과 경기력을 강조했다.
특히 손흥민을 바라보는 모레노 감독의 시선은 이번 대표팀이 지향하는 ‘세대교체’의 방향을 짐작하게 한다. 모레노 감독은 A매치 중계방송사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손흥민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다. 득점, 패스, 뒷공간 침투 움직임, 수비 가담 능력을 모두 갖춘 손흥민이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라운드 안에서 리더가 되어야한다"고 말했다. 지난 월드컵을 거치며 논란의 중심에 섰던 손흥민의 리더십에 다시 한번 힘을 실어준 발언이다.

◆ 여전한 클래스와 도약하는 재능, 대표팀이 지켜야 할 자산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손흥민과 이강인은 대체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를 대신할 것인가가 아니라, 두 선수의 강점을 어떻게 하나의 전술 안에서 결합할 것인가다.
최근 소속팀에서 보여준 두 핵심 자원의 퍼포먼스는 이들이 왜 대표팀에서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자원인지를 보여준다.
손흥민은 20일(한국시간) 새너제이 어스퀘이크스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이날 활약으로 MLS 정규리그 6골 13도움을 기록했고, 도움 부문에서는 리오넬 메시와 공동 선두에 올랐다. 그동안 대표팀이나 소속팀의 전술적 환경에 따라 득점력을 온전히 살리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손흥민이 가진 최종 라인 침투와 마무리 능력은 여전히 대표팀이 활용해야 할 중요한 무기다.
이강인 역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시즌 초반 리그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새 팀에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는 가운데, 20일 레알 마드리드와의 라리가 7라운드에서도 선발 출전해 팀의 결승골에 기여했다. 상대의 압박 속에서도 탈압박과 전진 패스로 공격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대표팀에서도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모레노 감독은 기본 전술로 4-4-2를 구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관심은 자연스럽게 두 선수의 배치와 역할로 향한다. 손흥민을 어디에 세우고 이강인에게 어떤 자유를 부여할 것인지, 두 선수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를 만들 것인지가 첫 소집에서 확인해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 프레임을 깨고 시너지를 완성할 모레노호의 과제
그동안 클린스만과 홍명보 체제에서 팬들이 느꼈던 답답함을 선수 개개인의 기량 부족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 손흥민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거나, 이강인의 창의성을 팀 구조 안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스페인 대표팀과 유럽 클럽 무대에서 다양한 전술 환경을 경험한 모레노 감독에게 기대가 모이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손흥민에게 지나치게 많은 역할을 요구하기보다, 그의 최대 강점인 수비 뒷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과 마무리가 살아날 수 있도록 주변에 공간과 선택지를 만들어주는 것. 결국 핵심은 역할의 재정의다.
이강인 역시 탈압박과 전진 패스라는 자신의 강점을 살리면서 손흥민의 침투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공격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두 선수의 장점을 각각 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선수의 움직임이 다른 선수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모레노호의 중요한 과제다.
두 축이 전술적으로 연결된다면 대표팀의 공격은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는 단순한 구조에서 벗어나 한층 다양해질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손흥민과 이강인 두 선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존의 핵심 자원들이 자신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이 그 틈을 파고들 수 있어야 한다. 세대교체 역시 누군가의 자리를 비워주는 방식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 팀의 선택지를 넓혀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 기대를 모아 지켜볼 시간
21일 시작되는 모레노호의 첫 소집은 단순한 임시 체제의 출발이 아니다. 한국 축구가 보유한 기존의 핵심 자원과 새롭게 등장하는 선수들을 어떻게 하나의 팀으로 결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첫 시험대다.
특히 모레노 감독의 첫 명단에는 30명 가운데 K리그 선수 12명이 포함됐다. 지난 월드컵 최종 명단의 K리그 선수 7명과 비교하면 국내 무대에서 현재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들을 폭넓게 살펴보겠다는 변화가 읽힌다.
결국 대표팀을 둘러싼 여러 논란도 경기장에서 만들어내는 축구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손흥민의 경험과 결정력, 이강인의 창의성, 그리고 새롭게 기회를 얻은 선수들의 에너지가 하나의 방향으로 결집할 수 있을까. 모레노호의 첫 소집에서 우리가 지켜봐야 할 것은 누가 누구의 자리를 빼앗느냐가 아니다. 서로 다른 장점을 가진 선수들이 어떻게 하나의 팀으로 연결되느냐다.
세대교체는 누군가의 시대가 끝나야 다른 누군가의 시대가 시작되는 과정이 아니다. 기존의 강점 위에 새로운 재능을 더해 팀의 경쟁력을 확장하는 과정이다. 21일 시작되는 모레노호가 그 당연한 원칙을 그라운드에서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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