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T

검색
전국
일제강점기 건립 가옥 순천 '소천재'…의미 찾고 보존해야
순천 출신 복서 서정권, 미국 원정 상금으로 1932년 건립
청년·교육운동가 부친 서병규 흔적…시민사회가 찾아낸 유산


전남광주 순천시 가곡동에 있는 '소천재'. 이 곳은 일제강점기 미국 원정경기에 나서는 등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순천 출신 복서 서정권이 1932년 아버지 서병규를 위해 지은 한옥이다. /박병섭 순천시민(전 고교 역사교사)
전남광주 순천시 가곡동에 있는 '소천재'. 이 곳은 일제강점기 미국 원정경기에 나서는 등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순천 출신 복서 서정권이 1932년 아버지 서병규를 위해 지은 한옥이다. /박병섭 순천시민(전 고교 역사교사)

[더팩트 l 순천=김영신 기자] 일제강점기 미국 원정경기에 나서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순천 출신 복서 서정권. 그가 미국에서 받은 경기 상금을 고향으로 보내 지은 근대 한옥 '소천재(紹泉齋)'가 전남광주 순천시 가곡동 원가곡 마을에 남아 있다.

1932년 건립된 소천재는 서정권이 아버지 서병규를 위해 마련한 재실 겸 별채로 알려져 있다. 당시 세계 밴텀급 6위에 올랐던 서정권의 삶과 가족사, 일제강점기 순천의 청년·교육운동 역사가 한 공간에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지금 소천재의 모습은 초라하다. 장기간 방치되면서 지붕이 내려앉고 처마가 기울었으며, 건물 곳곳에서 훼손이 진행되고 있다.

이 근대한옥의 가치를 다시 지역 사회에 알린 것은 행정기관보다 시민사회였다.

전통건축문화유산을 조사·기록하는 단체 '배무이'는 지난해 소천재를 답사해 건물의 구조와 훼손 상태 등을 기록했다. 강동수 배무이 대표는 개인 소유자의 힘만으로 보존하기 어렵다고 보고, 올해 6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시민캠페인 '이곳만은 지키자!'에 소천재를 응모했다. 그 결과 소천재는 제24회 캠페인 보전 대상지 6곳 가운데 한 곳으로 선정됐다.

소천재의 보존 필요성이 제기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에도 순천의 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진 지역 인사들이 순천시에 소천재 보호와 매입을 요청했었으나 지금까지 별도의 보존 사업이나 매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소천재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건물에 남아 있는 '서정권의 흔적'이다.

서정권은 1912년 순천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복싱을 익힌 뒤 프로복서로 활동했다. 1932년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원정경기를 치렀고, 세계 밴텀급 6위에 오른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조선인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복서는 흔치 않았다. 서정권은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에 세계 무대에서 조선인의 이름을 알린 인물로 평가된다.

그가 미국 원정에서 받은 상금은 고향 순천으로 보내졌고, 이를 바탕으로 아버지 서병규를 위한 소천재가 건립된 것으로 전해진다. 소천재는 그런 점에서 한 복서의 성공담을 넘어 일제강점기 시기 조선인 스포츠 영웅의 삶이 지역의 건축물로 남은 사례이기도 하다.

서정권의 아버지 서병규 역시 당시 순천 사회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었다. 서병규는 1920~1930년대 순천고등보통학교와 순천농업학교 설립운동, 민립대학 설립운동 등에 참여했으며 승평학원을 운영했다. 1926년부터 1942년까지 순천향교 직원(直員)을 맡았고, 향교 뒤편 토지를 청년들의 운동장으로 제공하거나 자신의 건물을 청년회관으로 사용하는 등 지역의 청년·교육운동을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5년 소천재 모습. /박병섭 순천시민(전 고교 역사교사)
2015년 소천재 모습. /박병섭 순천시민(전 고교 역사교사)

소천재라는 이름도 서병규의 호에서 비롯됐다. 건축물 자체도 근대한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의 팔작지붕 한옥으로, 가운데 대청을 두고 좌우에 방을 배치했다. 처마 아래에는 구한말 관료이자 서예가인 해평 윤용구가 쓴 현판이 남아 있으며 기둥 곳곳에서는 주련도 확인된다.

연구자들은 소천재를 특정 인물의 생가나 개인 주택에만 한정해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강성호 전남대학교 연구교수는 소천재에 대해 "1920~1930년대 순천의 지역 엘리트가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교육·청년운동을 통해 지역 사회의 근대적 변화를 이끌고자 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평가했다.

순천향교 유림 장정근 씨는 "순천 도심에는 향교와 옥천서원을 제외하면 전통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소천재와 원가곡마을의 역사·문화자원을 연계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건물 자체의 보존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천재는 현재 장기간 빈집으로 남아 훼손이 계속되고 있다. 역사적 가치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더라도 원형이 더 사라진 뒤에는 보존과 복원이 쉽지 않다.

2011년부터 보존 필요성이 제기됐고, 지난해 시민단체가 건축물을 직접 조사했으며, 올해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보전 대상지로까지 선정됐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오는 10월 17일 서울50플러스재단 동부캠퍼스에서 제24회 '이곳만은 지키자!' 시상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일제강점기 미국 원정에 나서 세계 6위까지 올랐던 복서 서정권이 고향에 남긴 집, 청년·교육운동을 이끌었던 아버지 서병규의 흔적이 함께 남은 소천재.

시민이 먼저 찾아낸 이 근대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지역의 역사자원으로 이어갈 것인지앞으로 순천시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24일 소천재를 방문, 조사하고 있는 강동수 '배무이' 대표와 강성호 전남대 연구교수 모습. /배무이
지난 6월 24일 소천재를 방문, 조사하고 있는 강동수 '배무이' 대표와 강성호 전남대 연구교수 모습. /배무이

bbb2500@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인기기사
회사소개 로그인 PC화면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