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왜 부를지 결정하는 아티스트로 첫발

[더팩트 | 정병근 기자] '죽음(DEATH)'을 제목에 내걸었지만 에반(EVAN)이 첫 미니 앨범에서 말하는 것은 끝이 아니다. 자신의 미숙함과 차오르는 감정을 마주하면서도 끝내 멈추지 않는 삶이다. 소아암 투병 사실까지 어렵게 꺼낸 그에게 "이건 나의 죽음이 아니다(Ain't the death of me)"라는 가사는 자기 확신 이상의 무게를 갖는다.
에반은 지난 7일 미니 1집 'DEATH OF ME(데스 오브 미)'를 발매했다. 지난 6월 싱글 'RIDE OR DIE(라이드 오어 다이)'로 솔로 출발을 알린 지 3개월 만이다. 'RIDE OR DIE'가 강렬한 록 사운드로 새로운 방향을 예고한 짧은 서문이었다면, 'DEATH OF ME'는 어떤 음악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아티스트인지 본격적으로 펼친 첫 장이다.
2020년 엔하이픈으로 데뷔해 메인 보컬과 퍼포머로 역량을 인정받은 그는 지난 3월 팀을 떠났다. 이미 큰 무대와 세계적인 인기를 경험한 뒤 익숙한 이름과 자리를 내려놓고 홀로 선 만큼 기대와 우려가 함께 뒤따랐다. 에반은 그 선택을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으로 답했다.
그룹에서 힘 있는 고음과 안정적인 라이브, 유려한 춤으로 곡의 완성도를 높였다면 솔로 에반은 거기에 '선택'을 더했다. 전곡 작사에 참여하고 'Noise(노이즈)'를 제외한 7곡의 작곡에 이름을 올렸으며, 5곡에서는 프로듀서로 작업을 주도했다. 잘 부르고 잘 표현하는 가수에서 무엇을 왜 부를지 결정하는 아티스트로 영역을 확장했다.
그렇게 완성한 'DEATH OF ME'는 에반이 표현했듯 "거울 같은 앨범"이다. 거울 안에는 자신감만 있지 않다. 부족함과 욕심, 두려움과 미숙함, 사랑과 그리움이 뒤엉켜 있다. 에반은 말끔하게 정리된 성공담을 만드는 대신 서로 모순되기도 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늘어놨다. 그 각각의 감정을 다양한 장르의 소리에 입혀 전한다.
출발점은 결핍이다. 첫 곡 'Not Enough(낫 이너프)'에서 에반은 이미 이룬 것을 돌아보는 대신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묵직한 트랩 비트가 같은 자리를 집요하게 두드리고, 멜로디는 매끈하지만 반복되는 "It's not enough(잇츠 낫 이너프)"에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야심과 영원히 만족하지 못할 것 같은 초조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바로 이어지는 'Noise'는 그 초조함의 방향을 바깥에서 안으로 돌린다. 거친 로파이 기타 리프와 일부러 끼워 넣은 노이즈 효과가 제목을 소리로 구현하지만 곡의 중심은 차분하다. 에반은 소음을 없애겠다고 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게 조율하겠다고 노래한다. 거칠게 가공한 보컬과 깨끗한 팝 알앤비 멜로디가 겹치며 삶의 태도를 청각화한다.
'Ride or Die'는 그 내면의 동요를 바깥으로 폭발시킨다. 에반은 날을 세운 목소리로 걷잡을 수 없는 갈망을 토해낸다. 지난 6월 이 곡만 세상에 덩그러니 놓였을 땐 록을 앞세운 강렬한 솔로 데뷔 선언에 가까웠지만, 앨범 안에서는 'Not Enough'의 결핍과 'Noise'의 압박을 지나 마침내 터져 나온 충동처럼 들린다.
전반부에 쌓인 에너지는 타이틀곡 'Death of Me'에서 하나의 선언으로 모인다. 절제된 벌스와 점차 층을 높이는 보컬, 후렴에서 넓게 터지는 멜로디의 대비가 분명한 곡이다. "멈춘대도 this ain't the death of me", "두려움은 six feet under"라고 외칠 때 높은 음을 뻗는 힘과 리듬을 촘촘하게 타는 감각이 함께 살아난다.

에반은 무조건 세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풍부한 성량을 과시하는 대신 낮고 단단한 음색, 숨을 섞은 소리, 날카롭게 치솟는 고음과 겹겹이 쌓은 코러스를 나눠 쓴다. 그로 인해 후렴의 해방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전체를 세련되게 제어하는 능력은 오랜 그룹 활동에서 축적한 역량이고, 이제 오롯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가 됐다.
여기에 에반이 최근 처음 공개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노래를 더 묵직하게 만든다. 그는 위버스매거진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악성 림프종 진단을 받고 치료받았다고 고백했다. 병원에서 또래 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살고 싶고 집에 가고 싶었다고 생각한 아이가 성장해, 다시 시작하는 앨범에서 끝이 아니라고 노래한다.
그때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다만 실제로 끝에 가까이 가본 사람이 건네는 희망이기에 흔한 긍정의 문구가 삶에서 길어 올린 언어가 된다. 그는 쇼케이스에서 "내면을 보여드리기 위해 꼭 언급해야 했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아픔을 꺼낸 일은 음악 속 진솔함을 말과 삶으로 끝까지 밀어붙인 용기인 셈이다.
타이틀곡 뒤에 배치한 'Twilight(트와일라잇)'은 숨을 고르는 순간이다. 앞선 곡들이 계속 다음을 향해 달렸다면 이 곡에 이르러 황홀한 지금에 잠시 머물고 싶다고 말한다. 청량하고 부드러운 음색은 강한 고음에 가려지기 쉬웠던 에반의 또 다른 장점을 부각하는 동시에 황혼의 몽롱한 빛을 만들어낸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내달린다. 'Immature(이머추어)'는 거친 기타와 팝·일렉트로 사운드를 충돌시키면서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을 감추기보다 "이게 나"라고 외친다. 부담이 큰 솔로 첫 앨범에서 미숙함을 제목으로 내건 건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태도가 앞으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든다.
'Overflow(오버플로)'는 힘을 뺀 보컬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Ride or Die'와 'Immature'에서 거칠게 긁어낸 소리를 들려주고, 'Twilight'에서는 산뜻하게 떠오르며, 'Overflow'에서는 가까이 속삭인다.
마지막 'Going Home(고잉 홈)'은 이루고 싶은 것들을 완성하고 충분히 달라진 뒤 진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이다. 중요한 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지막 노랫말 "I'm just going"처럼 에반은 모든 것을 이겨냈다고 선언하지 않고 그저 계속 가겠다고 말한다.
앨범은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성공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끝맺는다. 트랩부터 록, UK 개러지와 드림팝까지 장르를 가쁘게 넘나들면서도 흩어지지 않는 건 감정의 순서가 곡들을 단단하게 묶는 덕이다. 결핍에서 시작해 소음과 충동을 지나 의지를 세우고, 미숙함과 약한 내면까지 끌어안은 뒤 다시 여정에 나선다.
그 서사처럼 'DEATH OF ME'는 완성형 아티스트의 빈틈없는 결과물이라기보다 자신의 방향을 직접 정하기 시작한 아티스트로서 생생한 첫 기록이다. 에반은 죽음이라는 가장 무거운 단어를 과거를 지우는 데 쓰지 않고 계속 살아가고 또 음악을 해나갈 이유로 바라봤다. 그렇게 에반은 이제 막 자신의 음악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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