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0원' 경쟁까지 가세…점유율 확보 위한 상장 경쟁 심화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최근 4년여간 1200개가 넘는 알트코인을 신규 상장한 가운데 같은 기간 거래지원이 종료된 가상자산도 400개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량 확보를 위한 거래소 간 경쟁이 수수료 무료화에 이어 신규 상장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상장·상장폐지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국내 5대 원화 거래소인 업비트·빗썸·코인원·디지털엑스(옛 코빗)·고팍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들 거래소는 지난 2022년부터 올해 7월 말까지 총 1236개 알트코인을 신규 상장했다. 빗썸은 올해 8월18일까지 집계된 수치다.
같은 기간 거래지원이 종료된 가상자산은 430개에 달했다. 2022년 이전 상장된 뒤 해당 기간 거래지원이 종료된 가상자산도 포함돼 신규 상장과 거래지원 종료 수치를 일대일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같은 기간 신규 상장 규모의 34.8%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거래소별로 보면 고팍스는 신규 상장 106개, 거래지원 종료 67개로 신규 상장 대비 거래지원 종료 비율이 63.2%에 달했다. 이어 코인원 337개·157개(46.6%), 빗썸 426개·134개(31.5%), 디지털엑스 148개·30개(20.3%), 업비트 219개·42개(19.2%) 순이었다.
특히 상장 이후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퇴출된 가상자산도 38개에 달했다. 빗썸이 16개로 가장 많았고 코인원 11개, 고팍스 5개, 디지털엑스 4개, 업비트 2개 순이었다.
거래지원 종료 사유로는 사업 지속가능성과 유동성 부족을 비롯해 중요사항 미공시·불성실 공시, 해킹·보안 문제, 법규 위반, 발행 주체의 신뢰성 문제 등이 꼽혔다.
상장 단계에서 검증 대상이 되는 사업 지속가능성이나 발행 주체의 신뢰성 등이 불과 수개월 만에 거래지원 종료 사유로 등장하면서 거래소의 사전 상장 심사가 투자자를 보호할 만큼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식시장과 비교하면 가상자산 시장의 잦은 퇴출은 더욱 두드러진다. 같은 기간 코스닥시장에서는 532개사가 신규 상장했고 76개사가 감사의견 미달 등의 사유로 상장폐지됐다. 가상자산과 주식은 자산의 성격과 상장·퇴출 제도가 달라 직접 비교에는 한계가 있지만 가상자산 시장의 높은 종목 교체 빈도를 보여준다.
◆ 수수료 '0원' 경쟁까지…신규 상장 경쟁 불붙나
최근에는 거래소 간 수수료 무료 경쟁까지 본격화하면서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한 신규 상장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거래소는 해외와 달리 파생상품이나 주식토큰 등으로 수익원을 다각화하는 데 제약이 있어 현물 거래 수수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결국 실적을 높이려면 거래량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인데, 수수료까지 무료화하면 신규 가상자산 상장이 이용자를 끌어들일 또 다른 경쟁 수단으로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시장 침체로 거래대금은 크게 줄어든 상태다. 코인게코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 5대 원화 거래소의 총 거래대금은 1464억3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2896억9000만달러보다 49.5%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후발 거래소를 중심으로 수수료 출혈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에 편입된 디지털엑스는 지난달 24일부터 1년 동안 원화마켓 전 종목 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코인원도 이틀 뒤 전 종목 거래 수수료율을 0%로 전환하며 맞불을 놨다. 별도 종료 시점을 정하지 않아 사실상 무기한 무료화에 가깝다.
업비트와 빗썸도 일부 거래에서 무료 정책을 펴고 있다. 업비트는 스테이블코인 원화마켓 일부 종목을 대상으로 수수료 무료 이벤트를 진행했고 빗썸은 원화마켓 전체 종목의 오픈 API 거래 수수료를 무료화했다.
수수료를 없애는 것만으로는 이용자를 장기간 붙잡기 어렵다는 점도 신규 상장 경쟁을 자극할 수 있는 요인이다. 과거 빗썸의 수수료 무료 기간 시장점유율이 35.2%까지 상승했다가 무료화 종료 닷새 만에 21.1%까지 떨어진 사례처럼 가격 경쟁만으로는 장기적인 이용자 확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수수료 경쟁이 거래소 전반으로 확산할 경우 새로운 종목을 빠르게 확보해 이용자와 거래량을 끌어들이려는 유인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올해 들어 신규 상장이 양대 거래소에 집중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지난 7월 11일까지 국내 5대 원화 거래소의 원화마켓 신규 상장은 149개로, 업비트가 59개, 빗썸이 57개를 차지했다. 두 거래소의 비중만 약 78%다.
시장점유율 경쟁이 수수료 무료화를 넘어 신규 상장 확대로 이어질 경우 상장 심사가 상대적으로 느슨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단기간에 거래지원이 종료되는 가상자산이 이미 반복적으로 나타난 상황에서 상장 종목 수 경쟁이 심화하면 그에 따른 위험이 투자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 알트코인 시장 침체도 영향…상폐 기준은 여전히 '깜깜이'
다만 최근 거래지원 종료가 늘어난 배경에는 알트코인 시장 자체의 침체도 자리하고 있다. 중소형 가상자산을 중심으로 유동성이 크게 위축되면서 상장 이후에도 충분한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프로젝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코인은 백서를 기준으로 상장되지만 실제로는 약속된 개발이나 사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거래소는 프로젝트의 지속성, 공시 여부, 기술 개발 현황, 유동성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해 상장 유지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상장과 거래지원 종료를 결정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투자자에게 충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거래소들은 발행 주체의 신뢰성, 이용자 보호 장치, 기술·보안 수준, 법규 준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도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율규제라는 한계가 있다. 거래소별 세부 판단 기준도 차이가 있어 투자자가 특정 가상자산의 거래지원 종료 가능성을 사전에 가늠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올해 1월 기준 최근 1년간 거래지원이 종료된 가상자산 74개 가운데 5대 거래소가 공통으로 거래지원을 종료한 가상자산은 2개에 그쳤다. 동일한 가상자산을 놓고도 거래소마다 상장 유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상장과 거래지원 종료 과정의 객관성과 일관성을 높이기 위한 별도의 평가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황 교수는 "거래소마다 기준이 다른 구조에서는 일관된 판단이 어렵다"며 "상장심사위원회 등 독립된 평가 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거래소 업계는 거래지원 종료가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상장폐지는 당국과 함께 마련한 자율규제 기준에 따라 모니터링과 유지 기준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이뤄진다"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프로젝트에 대해 유의 지정과 소명 절차를 거쳐 상장폐지가 결정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박성훈 의원은 "상장할 때는 장밋빛 전망을 내세우고 거래를 끌어모으다가 문제가 터지면 상폐시키는 식이라면 투자자는 사실상 폭탄 돌리기의 마지막 주자가 될 수밖에 없다"며 "거래소 배만 불리고 투자자가 손실을 떠안는 '코인 상장 잔치'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당국은 상장부터 상폐까지 전 과정을 들여다보고 거래량 경쟁이 아닌 투자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엄격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 이메일: jebo@tf.co.kr
-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