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안티 없는 예능인'…딸바보에서 손녀바보로 인생 2막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뽀식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방송인 이용식에게 붙은 이 별명은 단순한 애칭을 넘어 반세기 가까이 대중과 함께해온 그의 존재감을 상징한다. 1975년 MBC 코미디언 1기로 방송에 데뷔한 그는 당시 코미디의 전설들과 함께 방송 무대에 올라 '웃으면 복이 와요', '일요일 밤의 대행진',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등 시대를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누볐다.
특히 MBC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에서 무려 19년간 '뽀식이 아저씨'로 활약하며 어린이부터 부모 세대까지 아우르는 독보적인 친근함을 쌓았다. 그래서 이용식은 고희를 넘긴 지금도 나이를 잊은 듯 천진난만하고 익살스러운 모습이 자연스럽다. 개그맨이면서 가수와 배우, MC까지 넘나든 그는 스스로를 '원조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의 진짜 경쟁력은 웃음만이 아니다. 방송가에서 고 송해, 유재석과 함께 '안티 없는 예능인'으로 거론될 만큼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가는 배려와 겸손은 50년 방송 인생을 지탱해온 또 하나의 자산이다. 화려한 스타보다 함께 빛나는 감초가 되고 싶다는 그의 철학은 후배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요즘 이용식의 삶에는 새로운 웃음이 찾아왔다. 외동딸 이수민이 낳은 손녀 이엘을 돌보는 '육아하는 할아버지'로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것인데 손녀를 위해 체중을 크게 감량하며 건강관리에도 나선 그의 모습은 오랜 팬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안겼다.
반세기 동안 수많은 유행이 바뀌었지만 이용식은 변하지 않았다. 웃음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사람을 위해 먼저 다가가며, 가족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사람,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여전히 '영원한 희극인'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익살꾼 이용식을 '강일홍의 스페셜영상인터뷰'에 초대해 희극인 50년 삶을 직접 들어봤다.


<다음은 50년 예능인으로 살아온 '뽀식이' 이용식과 주고받은 일문 일답>
(+지면 사정상 질문답변은 축약해 정리했고, 전체 내용은 약 40분 가량 진행된 영상인터뷰 전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방송가에서 오랫동안 자주 뵀는데도, 볼 때마다, 누구한테나 늘 반가운 분입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여기 오시기 전에도 생방송 출연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KBS ‘아침마당’ 생방송을 하고 왔습니다. 심현섭 씨, 엄영수 씨, 송중근 씨와 함께 방송하고 식사까지 하고 부랴부랴 왔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하죠. 강일웅 씨와도 인연이 벌써 40년 가까이 됐습니다. 고민이 있거나 의논할 일이 생기면 서로 찾아가 이야기할 만큼 오래된 인연이라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올여름 유난히 뜨겁고 무더웠는데, 건강하게 잘 견디셨는지요.
"이번 여름도 잘 견뎠습니다. 제가 남들보다 햇볕을 맞는 면적이 넓어서 그런지 남들이 땀띠 열 개 날 때 저는 스무 개는 나는 것 같습니다. 하하. 그래도 더위 때문에 특별히 힘들어하지 않고 잘 지냈습니다. 늘 방송하고 사람들을 만나려면 건강해야 하니까 평소에도 몸 관리에 신경 쓰려고 합니다."
-올해로 방송 데뷔 50년을 맞았습니다. 반세기를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돌아보면 제 인생은 참 행복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듭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직업을 하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즐겁고 신나게 살았고, 가족들도 늘 뒤에서 응원해줬습니다.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코미디언이 되고 싶습니다. 더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남보다 잘살고 싶다는 욕심이 크지 않아서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75년 MBC 코미디언 1기로 데뷔했는데,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 당시 시험과 데뷔 과정이 궁금합니다.
"당시에는 방송국 최초로 코미디언 공채를 뽑았는데 무려 4,300명이 지원해 11명을 뽑았습니다. 저는 원래 통기타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이었는데 박은수 형이 MBC 코미디언 원서를 가져와 한번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형이 제 이름을 대신 써서 원서를 냈고, 시험 날에는 형 양복까지 빌려 입고 가서 합격했습니다. 제 인생을 바꿔준 사람이 바로 박은수 형입니다."
-‘뽀식이’라는 이름이 본명인 이용식보다 더 친숙합니다. 19년간 ‘뽀뽀뽀’에 출연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저에게는 축복이었습니다. ‘뽀뽀뽀’를 시작하면서 당시 다방에서 왕영은 씨, 김병조 씨, 조동희 씨와 함께 별명을 만들었는데 그때 나온 이름이 ‘뽀식이’였습니다. 처음엔 뽀식으로 시작해 뽀식이 형, 삼촌, 아저씨, 할아버지까지 됐습니다. 어린이부터 부모, 할머니·할아버지까지 저를 알아보게 만든, 제 인생에서 정말 특별한 프로그램입니다."

-방송가에서 ‘안티 없는 예능인’으로 불립니다. 비결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늘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자’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면 한 번 참게 되고, 그 순간 나 자신도 성장한다고 봅니다. 욕심내지 않고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오래 할 생각으로 묵묵히 자기 일을 해왔습니다. 밝게 혼자 빛나는 스타보다 여러 사람과 어울려 함께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늘 갖고 있습니다."
-70~80년대 ‘웃으면 복이 와요’부터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까지 전성기 프로그램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당시 방송 현장은 어땠나요?
"그때는 지금과 달리 정통 콩트 중심의 코미디를 했습니다. ‘웃으면 복이 와요’가 방송되는 날이면 방송 10분 전부터 길에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녹화할 때는 출연자들이 집에서 밥을 가져와 스튜디오에서 함께 먹었고, 녹화가 끝나면 꼭 뒤풀이도 했습니다. 서로 가족처럼 지내며 팀워크가 만들어졌던 시절이라 지금 생각하면 그 인간미가 참 그립습니다."
-자신을 ‘원조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표현하셨는데, 가수·MC·연기까지 직접 해온 이유가 있나요?
"돌이켜보면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코미디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도 하고, 무용도 하고, 여러 가지를 잘해야 진짜 ‘탤런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욕심을 부려 배울 건 배우려고 했고, 노래도 꾸준히 연습했습니다. 코미디언이라고 해서 코미디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는 것,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계속 도전하는 게 제 방식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언더그라운드 포크가수로 활동했고, 근래 발표하신 노래도 있죠.
"젊을 때 통기타가 유행하던 시절에 양희은, 송창식, 서유석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며 기타를 배웠습니다. 지금도 기타를 치라고 하면 웬만한 코드는 잡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트로트 음반도 냈고, 여수세계섬박람회 홍보대사로 위촉돼 사위 원혁 씨와 ‘여수에 미쳤다’라는 노래도 함께 불렀습니다. 노래와 방송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즐거운 일입니다."
-이용식 씨를 떠올리면 ‘웃음’과 함께 ‘따뜻함’이라는 이미지가 따라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웃음은 무엇인가요?
"저는 집에서 나가기 전에 거울을 보면서 일부러 1분 정도 웃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무조건 웃자’고 생각하고 나갑니다. 강아지를 보든 사람을 만나든 웃으려고 하다 보면 정말 웃을 일이 생깁니다. 웃음은 상대방의 기분도 좋게 하지만 결국 내 마음도 밝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좋은 웃음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웃음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웃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배 개그맨들을 위해 직접 코미디 공연장을 열었다가 운영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은 경험도 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후배들이 설 무대가 사라지는 게 너무 마음 아팠습니다. 그래서 청담동에 직접 코미디극장을 만들고 조명과 오디오까지 갖췄는데, 문을 연 지 열흘 만에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손님이 올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결국 큰 경제적 손해를 봤습니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무대를 만들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이라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후배들이 그 마음을 알아준 것만으로도 보람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대선배 희극인으로서 후배들 위한 안타까움이 컸을까요?
"그렇습니다. 나만 생각하면 굳이 방송국 앞에 피켓을 들고 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코미디를 꿈꾸며 몇 년씩 시험을 보고 기다린 후배들이 설 무대가 없어지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방송국 앞에 섰습니다. 거대한 방송국을 상대로 작은 피켓 하나였지만, 후배들이 울고 있다는 마음을 전달하고 코미디 프로그램이 다시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50년 방송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선배를 꼽는다면 누구인가요?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은 구봉서 선생님입니다. 저를 처음 뽑아주신 심사위원장이기도 했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같은 교회를 다니며 가까이 지냈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빨리 스타가 되려고 하지 말고 오래 할 생각을 해라. 이건 하늘이 준 천직이다"라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잠깐 반짝하는 스타보다 오랫동안 코미디언으로 살아가라는 그 말씀을 지금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오랜 방송생활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가장 보람된 순간 중 하나는 병원에서 아이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했을 때입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홍보대사를 오래 하면서 어린이병동의 아이들과 가족들을 보게 됐고,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주고 싶어 가수들과 함께 무료 공연을 열었습니다. 한 아이가 공연을 보고 난 뒤 침대에서 일어나 앉을 만큼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의사에게 들었습니다. 그때 웃음이 사람에게 정신적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반대로 50년을 돌아보며 가장 아쉬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특정한 한 가지를 가장 아쉽다고 꼽기보다는, 예전처럼 동료들과 가족처럼 지내던 방송 현장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예전에는 녹화가 끝나도 함께 밥을 먹고 뒤풀이를 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경조사가 있으면 끝까지 함께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각자의 시간과 생활을 존중하는 시대가 됐지만,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면서 예전의 인간미가 조금 사라진 것 같아 그 부분은 그립습니다."
-외동딸 이수민 씨가 태어났을 때의 감정은 어땠나요?
"수민이는 결혼 8년 반 만에 어렵게 얻은 딸이라 정말 특별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제가 워낙 바빠서 새벽에 나가 지방 공연을 다니고, 아이가 자고 있을 때 나갔다가 자고 있을 때 들어오는 생활을 했습니다. 우유 한 번 먹이고 젖병 하나 씻고 기저귀 한 번 갈아주지 못한 채 아내와 할머니가 아이를 키웠습니다. 그래서 지금 손녀를 보면서는 그때 못 해준 시간을 더 많이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큽니다."
-이제는 ‘딸바보’를 넘어 ‘손녀바보’가 됐습니다. 손녀 이엘을 돌보는 재미는 어떤가요?
"딸과 손녀의 느낌은 정말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손녀 이엘을 안고 바라보는 시간이 제일 행복합니다. 그래서 방송 일정도 한 시간 늦춰서라도 아이와 더 같이 있으려고 합니다. 아직 정확한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자기만의 ‘외계어’를 하고, 최근에는 병아리 소리라며 "삐약"이라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족 모두가 웃습니다. 손녀를 보면서 ‘더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손녀를 위해 체중도 크게 감량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건강관리에 특별히 신경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손녀를 오래 보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면 제가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20.2㎏을 감량했습니다. 예전에는 팔 힘이 약해서 아기를 제대로 안지 못했는데, 지금은 손녀를 안아주기 위해 아령을 들며 근력운동도 합니다. 단순히 오래 살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건강관리를 시작했습니다."
-사위 원혁 씨와의 관계도 방송을 통해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반대했다가 받아들이면서 더 시선을 받았는데, 지금은 어떤 사이인가요?
"처음에는 수민이가 서른이 넘었어도 제 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보였습니다. 8년 반 만에 어렵게 얻은 외동딸이다 보니 결혼하면 내 곁을 떠날 것 같아 서운한 마음도 컸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조금 늦추자고 했던 겁니다. 지금은 원혁 씨와 한집에 살면서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문자가 와도 무슨 뜻인지 모를 때 바로 해결해주고, 무엇보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는 게 참 좋습니다."
-묘비명에 ‘앗, 더 웃길 수 있었는데’라고 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평생 웃음을 준 희극인으로서 훗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저는 전설적인 선배로 기억되는 것보다 "그 선배 참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좋은 사람이었는데"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문득 제 이름이 떠오르고, ‘그 사람 참 괜찮았지’라는 생각이 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묘비에는 ‘앗! 더 웃길 수 있었는데’라고 쓰고 싶습니다. 웃음에 대한 아쉬움마저도 마지막까지 웃음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50년간 변함없는 웃음으로 시청자들을 웃겼고, 지금도 사랑받고 계십니다. 시청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지금까지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더 과분한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몸이 불편하고 힘든 상태에서 억지로 여러분을 즐겁게 하기보다는, 제가 건강한 모습과 밝은 표정으로 재미있고 즐겁게 여러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 혼자 빛나는 스타보다는 여러 후배들과 함께 은은하게 빛나는 별 중 하나로 오래 남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사랑해주신 마음, 변치 않기를 바랍니다."
(마무리) 네, 지금까지 '뽀식이'라는 별칭이 더 친숙한 분, 방송인 이용식과 인터뷰를 나눠봤는데요, 예상했던대로 유쾌하고 밝은 에너지를 내뿜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우리 방송연예계에서 왜 안티없는 예능인으로 불리는지 실감이 갑니다, 오늘 바쁘신데 스튜디오까지 직접 나와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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