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T

검색
전국
"아픈 아이도 학생입니다"…대전시의회, 희귀난치질환 아동 '학교생활' 논의
출결·학습권 등 제도적 공백 지적…의료 넘어 교육·돌봄 아우른 조례 필요성 제기
서다운 의원 "실효성 있는 조례 만들어야"


서다운 대전시의회 의원이 27일 대전시의회 소통실에서 '희귀난치성질환자 지원 체계 구축 및 조례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주재하고 있다. /정예준 기자
서다운 대전시의회 의원이 27일 대전시의회 소통실에서 '희귀난치성질환자 지원 체계 구축 및 조례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주재하고 있다. /정예준 기자

[더팩트ㅣ대전=선치영·정예준 기자] "저희는 특별한 혜택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아픈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보호해 달라는 것입니다."

희귀난치성질환인 크론병을 앓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정로운(10) 군이 대전시의회 토론회에서 담담하게 꺼낸 한마디다.

정 군은 크론병으로 인해 병원에 자주 가야 하고 복통으로 학교생활이 힘든 날이 많다고 했다. 특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적어 학교 급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날도 많아 4학년이 된 현재까지 급식실에서 식사한 날이 열 번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더구나 매주 복용하는 면역억제제 때문에 다음 날 몸 상태가 크게 떨어지지만, 결석이 쌓이면 유급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몸이 힘든 날에도 등교해야 하는 현실도 털어놨다.

정 군은 이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 뒤 "아픈 아이도 똑같은 학생"이라며 "저희의 권리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정 군의 사례는 희귀난치성질환 아동이 치료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병원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

◇"치료 때문에 학교생활 포기하지 않도록"

서다운 대전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 서구 4)은 27일 시의회 3층 소통실에서 '희귀난치성질환자 지원 체계 구축 및 조례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희귀난치성질환 당사자와 가족, 의료·복지·교육 분야 전문가 및 관계자 등이 참석해 환자와 가족들이 지역사회에서 겪는 어려움과 제도적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참석자들은 희귀난치성질환 아동들이 잦은 진료와 입원 등으로 학교를 빠지는 과정에서 출결과 학습권 문제에 직면하고, 질환에 따라 급식과 투약, 건강관리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치료를 위해 학교생활을 포기하거나, 학교에 가기 위해 치료와 건강관리를 미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제발표에 나선 임한혁 충남·대전권역희귀질환전문기관 센터장(충남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의료와 돌봄을 연계한 통합적인 지원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김지나 서울시립대 연구교수는 치료 중심의 지원에서 벗어나 교육과 돌봄, 일상생활까지 포괄하는 공공의 역할과 지역사회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희귀난치성질환인 크론병을 앓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정로운(10) 군이 27일 서다운 대전시의원 주재로 열린 '희귀난치성질환자 지원 체계 구축 및 조례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정예준 기자
희귀난치성질환인 크론병을 앓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정로운(10) 군이 27일 서다운 대전시의원 주재로 열린 '희귀난치성질환자 지원 체계 구축 및 조례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정예준 기자

◇잦은 결석부터 친구관계까지…학교가 또 다른 장벽

희귀난치성질환 아동 가족인 박진희 씨는 자신의 자녀가 겪었던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소개했다.

박 씨의 자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모야모야병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잦은 검사와 입원, 수술로 학교에 빠지는 날이 많아졌고,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친구 없이 1년을 보내기도 했다.

이후에는 수술 흉터를 또래 아이들이 놀리는 일까지 겪으면서 다니던 학원을 모두 그만뒀다.

현재 중학교 2학년이 된 아이는 친구가 생기면서 학교에 가는 것을 행복해하지만 여전히 일반 학생과 같은 일상을 보내기는 쉽지 않다. 시험 기간에도 마음껏 공부하고 싶어 하지만 장시간 고개를 숙이고 있기가 어렵고, 학교에 다녀온 뒤에는 오랜 시간 쉬어야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

박 씨는 "아픈 것도 우리 아이인데 왜 병 때문에 공부할 기회와 친구와 어울릴 기회를 포기해야 하는지 억울했다"며 "희귀난치성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아프다는 이유로 친구와 교육의 기회를 잃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의료비 중심 지원 넘어 '일상' 까지

현장에서는 현재 희귀난치성질환자에 대한 지원이 의료비와 치료 접근성에 상대적으로 집중돼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은 희귀질환자가 암이나 장애와 달리 기존 복지 체계에서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희귀질환은 질환별 환자 수가 적고 질환의 종류도 다양해 개별 환자가 필요한 지원을 받기 어려운 데다, 질환이 외부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장애로 인정받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정 사무총장은 특히 교육 분야의 지원 공백을 지적했다.

소아암 환자를 위한 병원학교 등이 운영되고 있는 것과 달리 희귀질환 아동을 위한 교육지원은 충분하지 않으며, 희귀질환 학생의 출결과 급식 등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대전시가 조례를 제정할 경우 다른 지역의 조례를 단순히 참고하는 데 그치지 말고 출결과 급식 등 환자 학생의 건강권과 학습권을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특히 "지원할 수 있다가 아니라 지원한다는 조례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선언적인 조례가 아닌 실제 사업과 예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제도 마련을 주문했다.

서다운 대전시의원이 27일 대전시의회 소통실에서 '희귀난치성질환자 지원 체계 구축 및 조례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한 가운데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전시의회
서다운 대전시의원이 27일 대전시의회 소통실에서 '희귀난치성질환자 지원 체계 구축 및 조례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한 가운데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전시의회

◇"중앙정부 기다리기보다 지역에서 먼저"

유지영 코리아헬스로그 편집국장도 교육과 복지 현장이 의료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희귀질환은 최근 진단기술과 치료제 발전으로 조기에 진단하고 적절하게 관리할 수 있는 환자가 늘고 있지만, 치료 이후의 교육과 돌봄, 사회생활을 뒷받침하는 제도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유 국장은 대전시와 대전시교육청이 중심이 돼 지역 내 희귀난치성질환 소아·청소년의 실태를 파악하고, 학교 현장에서 질환 관리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관계기관 협의체와 맞춤형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급식과 투약, 건강관리, 정기 진료에 따른 출결 문제뿐 아니라 이동·교통 지원과 간병, 심리·정서적 돌봄, 병원학교와 학습권 보장 등으로 지원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앙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을 기다리는 것보다 지방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영역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전형 조례, 선언 넘어 '실행'으로 이어질까

이번 토론회에서 제시된 의견은 향후 대전시의 희귀난치성질환자 지원 조례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로 중지가 모아졌다.

핵심은 의료비 지원을 넘어 교육·돌봄·심리·일상생활을 포괄하는 지원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또 이를 실제 정책과 예산으로 연결할 수 있는 실행 근거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다.

특히 아동·청소년 환자의 경우 치료와 교육을 별개의 영역으로 볼 것이 아니라 건강권과 학습권을 함께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컸다.

학교에서 필요한 급식 지원과 투약·건강관리, 질환으로 인한 결석에 대한 지원, 학습 공백 보완, 또래관계와 심리·정서 지원 등 구체적인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서다운 대전시의회 의원은 "희귀난치성질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은 치료에만 머무르지 않고 학교와 돌봄, 일상생활 전반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오늘 나온 목소리를 바탕으로 환자들이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치료받고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실효성 있는 조례 제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가 일회성 논의에 그치지 않고 실제 조례 제정과 정책 마련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희귀난치성질환 아동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아프더라도 학교에 가고, 밥을 먹고, 친구를 만나며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환경이다.

끝으로 정로운 군이 말한 '아픈 아이도 똑같은 학생'이라는 한마디가 향후 대전시의 희귀난치성질환자에 대한 지원체계가 어느 방향으로 향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tfcc2024@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인기기사
회사소개 로그인 PC화면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