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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 '상식이형' 외친 밤, 태극기도 함께 펄럭였다 [박순규의 창]
26일 베트남 사상 첫 아세안컵 2연패…김상식, 2년여 만에 '동남아 4관왕'
박항서가 연 베트남 마음, 김상식이 다시 넓혔다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26일 태국과 2026 아세안 현대컵 결승 2차전에서 2-2로 비겨 합계 1승1무로 우승, 대회 2연패를 이룩한 뒤 기뻐하고 있다./베트남축구연맹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26일 태국과 2026 아세안 현대컵 결승 2차전에서 2-2로 비겨 합계 1승1무로 우승, 대회 2연패를 이룩한 뒤 기뻐하고 있다./베트남축구연맹

[더팩트 | 박순규 기자] 26일 밤 베트남 하노이의 미딘 국립경기장.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경기장은 거대한 붉은 파도로 출렁였다.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가 펄럭였고 선수들은 서로 얼싸안았다. 그리고 그 붉은 물결 사이로 낯익은 깃발 하나가 보였다. 태극기였다.

하노이와 호찌민, 다낭, 하이퐁의 거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시민이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베트남 보딕(우승)", "베트남 꼬렌(파이팅)"을 외쳤다. 일부 팬들은 베트남 국기와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한국인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축구 한 경기가 두 나라 국민의 감정을 연결한 순간이었다.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태국과의 2026 아세안(ASEAN) 현대컵 결승 2차전에서 2-2로 비겼다. 방콕 원정 1차전에서 2-0으로 이긴 덕분에 합계 4-2. 2008년과 2018년, 2024년에 이어 통산 네 번째 정상에 올랐고,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아세안 현대컵(ASEAN Hyundai Cup)은 쉽게 말하면 동남아시아 남자축구 국가대표팀의 최고 권위 대회, 흔히 말하는 ‘동남아의 월드컵’이다. 정식 성격은 아세안축구연맹(AFF)이 주관하는 아세안 챔피언십(ASEAN Championship)이고, 2026년부터 현대자동차가 타이틀 스폰서를 맡으면서 ‘아세안 현대컵’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날 결승전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전반 12분 선제골을 내줬고 후반 초반에는 페널티킥까지 허용했다. 태국의 실축으로 위기를 넘긴 뒤 상대 자책골로 동점을 만들었지만 후반 막판 다시 1-2로 끌려갔다. 그러나 추가시간 또 한 번 태국의 자책골이 나오면서 2-2. 김 감독 특유의 끈질긴 축구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너지지 않았다.

'박항서 매직'에 이어 '기상식 매직'으로 베트남에 '한국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김상식 감독./베트남축구연맹
'박항서 매직'에 이어 '기상식 매직'으로 베트남에 '한국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김상식 감독./베트남축구연맹

그래서 베트남 팬들이 말하는 ‘김상식 매직’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숫자가 증명한다. 베트남 A대표팀은 이번 결승까지 26경기 연속 무패, 22승4무라는 놀라운 기록을 이어갔다. 김 감독은 2024 아세안컵 우승에 이어 2025 아세안 U-23 챔피언십 정상, 2025 SEA게임 남자축구 금메달을 차지했고 이번 대회까지 다시 제패했다. 불과 2년여 동안 베트남 축구에 네 번의 동남아 정상 정복을 선물한 것이다. U-23 대표팀은 2025 아세안 U-23 결승에서 개최국 인도네시아를 1-0으로 꺾었고, SEA게임에서는 태국을 연장전 끝에 3-2로 제압했다.

특히 의미 있는 것은 상대가 태국이라는 점이다. 동남아 축구에서 태국은 오랫동안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런데 김상식의 베트남은 2024 아세안컵 결승에서 태국을 누른 데 이어 이번에도 태국을 넘어섰다. 박항서 감독조차 이루지 못했던 아세안컵 2연패다.

그러나 김상식의 성공을 이야기하면서 박항서를 지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두 한국인 감독의 성공은 하나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 박항서 감독은 2018년 아세안컵 우승 등을 통해 베트남 국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었다. 한국인 지도자에 대한 신뢰도 함께 만들어냈다. 김상식 감독은 그 위에 또 다른 층을 쌓았다. 박항서 시대가 베트남 축구의 부흥이었다면 김상식 시대는 그 성과의 지속 가능성을 증명하는 과정에 가깝다.

김 감독 역시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았다. 우승 직후 그는 "역사의 주인공은 선수들"이라며 "이 승리는 모든 베트남 팬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자의 힘은 자신이 빛나는 데 있지 않고 선수들이 빛나도록 만드는 데 있다.

베트남축구연맹은 이날 우승 직후 김상식 감독의 “베트남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라는 인터뷰 내용을 홈페이지 대문에 걸며 '김상식 매직'에 주목했다./베트남축구연맹
베트남축구연맹은 이날 우승 직후 김상식 감독의 “베트남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라는 인터뷰 내용을 홈페이지 대문에 걸며 '김상식 매직'에 주목했다./베트남축구연맹

‘득도다조(得道多助)’라는 말이 있다. 올바른 길을 걸으면 돕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김상식 감독이 베트남에서 얻은 것은 단순한 승률이나 우승컵만이 아니다. 선수들의 신뢰와 국민의 마음을 얻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축구는 외교가 된다.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가 말한 ‘소프트파워’란 군사력이나 돈으로 상대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매력과 신뢰를 통해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스포츠만큼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분야도 드물다.

한국과 베트남은 이미 경제적으로 매우 가까운 나라다.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이고 약 1만 개 한국 기업이 현지에 진출해 있다. 양국 정상은 올해 4월 정상회담에서 현재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2030년까지 양국 교역 규모를 1500억 달러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국가 관계가 숫자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100억 달러의 투자보다 한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이 더 오래 남을 때가 있다. 정상회담의 공동성명보다 운동장에서 함께 흘린 눈물과 환호가 국민의 마음을 더 빠르게 움직이기도 한다.

2018년 베트남 사람들이 "박항서"를 외쳤고, 이제 거리에서는 "상식이형"을 외친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백억 원을 들인 국가 이미지 홍보 캠페인으로도 쉽게 얻기 힘든 자산이다. 한국인이 베트남의 승리를 위해 함께 뛰고, 베트남 국민이 그 한국인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두 나라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의 다리가 놓인다.

26일 밤 그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장면이 바로 금성홍기 사이에서 펄럭인 태극기였다. 축구 감독 한 사람이 국가 간 외교를 대신할 수는 없다. 스포츠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해결할 수도 없다. 그러나 외교가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면 스포츠는 국가 간 거리를 좁히는 가장 강력한 언어 가운데 하나다.

박항서가 그 가능성을 보여줬고 김상식이 다시 증명했다. 김상식 감독이 미딘에서 들어 올린 것은 그래서 단순한 우승컵 하나가 아니다. 베트남 사상 첫 아세안컵 2연패라는 역사와 함께,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 국민의 마음을 한 걸음 더 가깝게 만든 ‘신뢰의 트로피’였다.

베트남축구연맹은 이날 우승 직후 김상식 감독의 “베트남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라는 인터뷰 내용을 홈페이지 대문에 걸며 '김상식 매직'에 주목했다./베트남축구연맹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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