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T

검색
골프
선수와 투어를 키우는 힘...'림솔대전'이 반가운 이유 [박호윤의 IN&OUT]
서교림, 김민솔이 만들어 가는 KLPGA의 흥행 서사
친구라서 더 치열하고, 라이벌이라 더 강해진다
한발 앞서면 또 따라 붙는다


서교림이 BC카드·한경 제48회 KLPGA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연장 승부 끝에 우승을 확정 지은 뒤 기뻐하고 있다./KLPGA 제공
서교림이 BC카드·한경 제48회 KLPGA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연장 승부 끝에 우승을 확정 지은 뒤 기뻐하고 있다./KLPGA 제공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요즘 KLPGA투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솔림대전’, 또는 ‘림솔대전’일 듯싶다. 2006년생 동갑내기 서교림과 김민솔. 국가대표로 한솥밥을 먹던 절친들이 투어 정상을 놓고 연이어 숨막히는 라이벌 대결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하면 나도 한다...라이벌의 힘

지난주 끝난 BC카드 한경 제48회KLPGA챔피언십의 연장 승부는 ‘림솔대전’의 백미였다. 바로 전 주 대회인 한국일보 메디힐챔피언십에서 우승, 준우승을 나눠 가졌던 서교림과 김민솔이 시즌 두번째 메이저대회에서 마지막까지 엎치락뒤치락 연장 접전 끝에 2주 연속 같은 결과를 가져 오자 팬들이 열광하고 있다.

사실 상반기까지만 해도 김민솔이 한 발 앞서 나갔다. 먼저 내셔널 타이틀인 한국여자오픈을 포함, 3승을 거두며 주요 개인 타이틀의 맨 윗자리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지난해 우승없이 신인왕에 올랐던 서교림이 무섭게 따라붙었다. 6월 들어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에서 투어 첫 승을 올리며 추격을 시작한 뒤 한 주 건너 인카금융 더헤븐 마스터즈 우승으로 2승째를 올렸고, 최근 2주 연속 김민솔을 2위로 밀어내며 정상에 오르는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김민솔에 앞서 4승에 선착했고, 메이저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판도도 뒤집혔다. 이제 다승과 대상, 상금, 평균타수는 서교림이 맨 위다. 그런데 상금은 고작 13만6,572원 차이다. 12억8천만원을 넘게 벌어들인 둘의 차이가 14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이보다 더 ‘림솔대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숫자가 있을까.

김민솔이 지난 4월 iM 금융 오픈에서 올시즌 첫번째 우승을 차지한 뒤 공식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KLPGA 제공
김민솔이 지난 4월 iM 금융 오픈에서 올시즌 첫번째 우승을 차지한 뒤 공식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KLPGA 제공

#왜 스포츠에는 라이벌이 필요한가

하지만 정작 더 흥미로운 것은 누가 조금 앞서 있느냐가 아니다. 좋은 라이벌이 선수와 투어에 어떤 긍정적인 힘을 주느냐 하는 점이다. 라이벌십을 연구한 각종 자료를 종합해 보면 라이벌은 서로 실력이 비슷하고, 반복해서 만나며, 과거 승부가 팽팽할수록 일반적 경쟁 관계가 특별한 라이벌 관계로 발전하기 쉽다고 한다. 라이벌은 단순히 이번 주에 이겨야 할 선수와 다르다. 이전 승부의 기억이 쌓이고 다음 승부에 의미가 더해지는 상대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교림과 김민솔은 그 조건을 상당 부분 갖췄다. 우선 동갑이고 국가대표 동기다. 비슷한 시기에 프로 무대에 뛰어 들었고 이제는 투어의 가장 높은 곳에서 만난다. 한쪽이 승수를 추가하면 곧 다른 쪽이 따라 붙는다. 6월 한달간 열린 4개 대회를 서교림-김민솔-서교림-김민솔이 잇달아 정상에 섰다. 첫 메이저인 한국여자오픈은 김민솔이, 두번째 메이저인 KLPGA챔피언십은 서교림이 가져갔다.

라이벌이 선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구체적인 목표다. ‘더 잘해야 한다’는 막연한 다짐보다 자신과 비슷한 선수가 한 발 앞서가는 모습은 훨씬 강한 자극이 된다. 라이벌은 상대의 약점을 찾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내 부족함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세계 스포츠의 대표적인 라이벌들이 이를 증명한다. 여자 테니스의 크리스 에버트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무려 80차례나 맞붙었고 그 중 60회는 결승이었다. 한쪽이 앞서면 다른 쪽이 체력과 기술, 훈련 방식을 바꾸며 따라잡았다. 두 사람의 경쟁은 개인의 성장을 넘어 여자 테니스의 관심과 WTA의 위상까지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NBA의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은 라이벌이 종목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로 다른 캐릭터와 스타일을 가진 둘은 보스턴 셀틱스와 LA 레이커스를 이끌며 1980년대 NBA의 가장 큰 이야기를 만들었다. NBA는 두 사람의 경쟁이 리그를 새로운 인기의 단계로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버드는 은퇴 후에도 매직의 기록을 찾아보며 자신과 비교했다고 했고, 매직 역시 상대가 앞설까 봐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다고 회고했다. 이것이 투어가 좋은 라이벌을 반겨야 하는 두 번째 이유다.

한국 여자골프에도 익숙한 장면이 있다. 30년 전 박세리와 김미현이다. 학년은 김미현이 1년 위지만 동갑내기 국가대표 출신으로 같은 해 프로가 됐고 데뷔 시즌부터 상금 1, 2위를 다퉜다. 신지애와 최나연 역시 국내에서 시작한 경쟁을 LPGA 무대까지 이어가며 서로를 좋은 자극제로 삼았다.

'림솔대전'의 현장. 서교림(왼쪽)과 김민솔이 BC카드 한경 제48회KPGA챔피언십 3라운드에서 동반 라운드를 하고 있는 모습./KLPGA제공
'림솔대전'의 현장. 서교림(왼쪽)과 김민솔이 BC카드 한경 제48회KPGA챔피언십 3라운드에서 동반 라운드를 하고 있는 모습./KLPGA제공

#스타는 기록을 만들고, 라이벌은 이야기를 만든다

라이벌의 효과는 투어 전체로도 번진다. 스타 한 명은 기록을 만들지만 라이벌은 이야기를 만든다. 매주 우승자가 바뀌면 화제가 일주일로 끝날 수 있지만 라이벌이 있으면 지난 대회의 결과가 다음 대회까지 이어진다. ‘이번 주 누가 우승할까’에 ‘이번에는 둘 중 누가 앞설까’가 더해진다. 팬들에게는 응원할 이유가 생기고 미디어에는 계속 이어갈 서사가 생긴다. 둘을 이기려는 다른 선수들의 기준까지 높아져 투어 전체의 경쟁력에도 도움이 된다.

물론 라이벌이 언제나 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경쟁 의식은 독이 될 수 있다. 특히 골프는 상대의 플레이를 직접 막는 종목이 아니다. 결국 이겨야 할 상대는 코스와 자기 자신이다. 특정 선수를 너무 의식하면 평소라면 하지 않을 무리한 공격으로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미디어와 팬도 조심해야 한다. 실제로 친한 선수들을 억지로 ‘숙적’이나 ‘전쟁’의 구도로 몰아가고 팬들까지 편을 갈라 상대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건강한 경쟁은 금세 부담과 적대로 바뀐다. 라이벌은 스포츠의 양념이지 증오를 판매하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지금의 ‘림솔대전’이 반갑다. 둘은 국가대표 시절 함께 세계아마추어팀선수권 정상에 섰던 동료이자 친구다. 이제 프로에서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됐지만 상대를 끌어내려야 내가 올라가는 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상대가 올라가기에 나도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되는 관계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림솔대전’의 진짜 가치는 올해 누가 상금왕이 되고, 누가 대상을 받느냐에만 있지 않다. 몇 년 뒤 김민솔이 지금보다 더 좋은 골퍼가 됐을 때 그 과정 어딘가에 서교림의 존재가 있었고, 서교림 역시 김민솔 때문에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스포츠에서 최고의 라이벌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아니다. 상대의 최고를 끌어내는 사람이다.

(이번주 열리는 KG레이디스오픈에 김민솔이 출전치 않아 '림솔대전'은 1주일간 '휴전'에 들어간다. 반면 서교림은 3주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림솔대전'의 현장. 서교림(왼쪽)과 김민솔이 BC카드 한경 제48회KPGA챔피언십 3라운드에서 동반 라운드를 하고 있는 모습./KLPGA제공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인기기사
회사소개 로그인 PC화면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