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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 1골·토레스 2골...발렌시아 ‘절친’의 기막힌 새 출발 [박순규의 창]
어린 시절 함께 꿈꾼 한국·스페인 대표 스타, 마드리드와 파리서 동시에 존재감 폭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이강인(오른쪽)이 20일 말라가와 2026~2027 라리가 1라운드 홈 개막전에서 후반 선제골로 데뷔골을 장식하며 기뻐하고 있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이강인(오른쪽)이 20일 말라가와 2026~2027 라리가 1라운드 홈 개막전에서 후반 선제골로 데뷔골을 장식하며 기뻐하고 있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축구에서 인연은 때때로 기막힌 장면을 만들어낸다. 어린 시절 스페인 발렌시아의 훈련장에서 함께 공을 차며 유럽 최고의 선수를 꿈꿨던 두 소년이 있었다. 한 명은 한국에서 건너온 이강인(25), 또 한 명은 발렌시아에서 태어난 페란 토레스(26)였다.

세월이 흘러 둘은 한국과 스페인을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그리고 2026년 여름, 이번에는 마치 서로 자리를 바꾸듯 유럽의 두 거함에서 새로운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이강인이 파리 생제르맹(PSG)을 떠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향하자 토레스가 바르셀로나를 떠나 PSG 유니폼을 입었다. 그런데 새 시즌의 첫 장면마저 놀랍도록 닮았다.

이강인은 지난 20일 스페인 라리가 말라가와 개막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된 뒤 13분 만에 왼발로 선제 결승골을 터뜨렸다. AT마드리드는 2-0으로 이겼다. PSG에서 출전시간에 갈증을 느끼며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이강인이 스페인 복귀 첫 공식 경기에서 단숨에 주인공이 된 것이다. AT마드리드 공식 기록에도 후반 70분 이강인의 선제골은 결승골이 됐으며 매치 MVP로 이어졌다.

24일 스타드 렌과 2026~27 리그앙 개막전에서 PSG 이적 후 첫 멀티골을 기록한 페란 토레스./PSG
24일 스타드 렌과 2026~27 리그앙 개막전에서 PSG 이적 후 첫 멀티골을 기록한 페란 토레스./PSG

그리고 사흘 뒤 프랑스 렌에서는 그의 오랜 친구가 거의 똑같은 드라마를 만들었다. PSG는 24일(한국시간) 스타드 렌과 리그1 개막전에서 전반에만 두 골을 내주며 0-2로 끌려갔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우스만 뎀벨레를 빼고 새로 영입한 토레스를 투입했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토레스는 후반 26분 파비안 루이스의 패스를 받아 PSG 데뷔골을 기록했고, 12분 뒤에는 다시 루이스의 크로스를 헤더로 연결해 2-2를 만들었다. PSG 유니폼을 입고 처음 치른 리그 경기에서 멀티골. 패배 직전의 유럽 챔피언을 혼자 건져 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참 묘한 인연이다. 이강인이 떠난 PSG에 토레스가 들어왔고, 이강인은 AT마드리드 첫 리그 경기에서 한 골, 토레스는 PSG 첫 리그 경기에서 두 골을 터뜨렸다. 두 사람 모두 선발이 아닌 교체 선수로 들어가 경기의 흐름을 바꿨다는 점까지 닮았다.

두 선수의 인연은 10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강인은 2011년 발렌시아 유스에 입단해 성장했고, 토레스 역시 발렌시아 아카데미가 길러낸 대표적인 재능이다. 이강인이 처음 발렌시아 입단 테스트를 받을 당시 한 살 위인 토레스와 함께 훈련했던 일화도 있다. 이후 둘은 유스와 1군을 거치며 가까운 동료가 됐다. 이강인의 공식 경력에도 발렌시아 유스 시절이 2011~2018년으로 기록돼 있다.

발렌시아는 지난 2019년 10월 15일 페란 토레스와 이강인이 골든보이 최종 후보 20명에 함께 선정됐다는 기사와 함께 이강인과 토레스 사진을 게시했다./발렌시아
발렌시아는 지난 2019년 10월 15일 페란 토레스와 이강인이 골든보이 최종 후보 20명에 함께 선정됐다는 기사와 함께 이강인과 토레스 사진을 게시했다./발렌시아

그러나 성인이 된 뒤 걸어온 길은 달랐다. 토레스는 발렌시아를 떠나 맨체스터 시티와 바르셀로나를 거쳤고 스페인 대표팀의 핵심 공격수로 성장했다. 급기야 2026 북중미월드컵 결승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으며 스페인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았다.

이강인은 마요르카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뒤 PSG로 향했다. 세 시즌 동안 리그 우승을 거듭하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경험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즐비한 PSG에서 확고한 주전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안정된 명문구단의 로테이션 멤버로 남기보다 다시 주전 경쟁에 몸을 던지는 길을 선택했다. AT마드리드와 2031년까지 계약하고 상징적인 등번호 7번까지 받았다.

그 선택에 이강인은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 답했다. 골이었다. 토레스도 마찬가지였다. PSG는 그를 영입하는 데 5000만 유로 안팎의 거액을 투자했다. 월드컵 결승골의 주인공이라는 이름값도 따라붙었다. 부담스러울 법한 첫 경기에서 토레스는 불과 후반 45분만 뛰고 두 골을 넣었다. 프랑스 유력지 레키프가 그의 데뷔를 두고 사실상 PSG를 패배에서 구한 경기로 평가한 이유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PSG가 프랑스 슈퍼컵에서 패하고 리그 개막전에서도 비겼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이강인이 떠난 후유증’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 두 시즌 연속 유럽 정상에 오른 팀의 전력과 선수층을 생각하면 한 선수의 이적과 시즌 초반 결과를 단순한 인과관계로 연결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다. PSG를 떠난 이강인도, 그 자리를 이어받듯 PSG에 들어간 토레스도 더 큰 역할을 찾아 움직였고 첫 경기부터 자신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축구선수의 이적은 결국 ‘자리 찾기’다. 좋은 팀에 있는 것과 좋은 선수가 되는 것은 반드시 같은 의미가 아니다. 출전하지 못하면 재능은 빛을 잃는다. 그래서 때로는 익숙한 성공을 내려놓고 새로운 경쟁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강인은 파리의 안전지대를 떠났고, 토레스는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그리고 두 사람은 첫 경기에서 골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이강인은 이어진 비야레알과 라리가 2라운드에서는 처음 선발로 나서 67분을 소화하며 6개의 슈팅을 기록했다. 골은 없었지만 단순한 ‘교체 카드’를 넘어 AT마드리드 공격의 주축 경쟁에 뛰어들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제 두 친구의 경쟁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든다. 한 명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라리가 우승에 도전한다. 또 한 명은 파리에서 리그1과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도전한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각각 한국과 스페인의 중심이다.

어린 시절 발렌시아에서 함께 바라봤던 유럽의 큰 무대를 이제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누비고 있다. 동문수학(同門受學). 같은 곳에서 배우더라도 인생의 길은 서로 다르게 펼쳐진다. 중요한 것은 어느 길을 택했느냐보다 그 길에서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증명하느냐다.

2026~2027시즌 첫 장면에서 두 사람은 이미 답을 내놓았다. 이강인 1골, 페란 토레스 2골. 발렌시아의 두 소년이 유럽 축구의 중심에서 동시에 쏘아 올린 개막 축포다. 이들의 긴 시즌 레이스가 이제 막 시작됐다.

발렌시아는 지난 2019년 10월 15일 페란 토레스와 이강인이 골든보이 최종 후보 20명에 함께 선정됐다는 기사와 함께 이강인과 토레스 사진을 게시했다./발렌시아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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