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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붙은 산은 지방이전…박상진 '첫 내부출신 리더십' 시험대
산은·기은·수은 노조, 여의도서 지방이전 저지 공동 결의대회
산은 2023년 부산 이전기관 지정…정부 2차 이전 '속도전'에 긴장


박상진 한국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2월 25일 오후 2시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여의도=이선영 기자
박상진 한국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2월 25일 오후 2시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여의도=이선영 기자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정부가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속도를 내면서 한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한국산업은행 본점 이전 문제가 다시 불붙고 있다. 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노동조합이 서울 여의도에서 대규모 공동 결의대회를 열고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산은 설립 이후 첫 내부 출신 수장인 박상진 회장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올랐다. 취임 당시 본점 이전 반대와 이전공공기관 지정 해제 요구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던 박 회장이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과 직원들의 반발 사이에서 어떤 목소리를 낼지 주목된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노동조합은 전날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옆 의사당대로에서 '국책은행 지방 이전 저지 총력 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노조는 집회에 앞서 약 2000명 규모의 인원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노총과 금융노조 지도부를 비롯해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이 이날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산업은행 단독이 아니라 3대 국책은행 직원들이 함께 거리로 나섰다는 점에서 지방 이전 문제가 국책금융기관 전체의 공동 현안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집회를 앞두고 3개 노조는 공동성명에서 금융회사의 경쟁력은 금융·기업·인력의 집적에서 나오는 만큼 국책금융기관을 지역별로 분산할 경우 정책금융의 효율성과 금융산업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산은은 국민성장펀드와 첨단전략산업 지원을,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소상공인 금융을, 수은은 수출금융과 경제안보 관련 역할을 각각 맡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조가 요구한 것은 △국책은행 강제 이전 검토 중단 △국책은행 노동자를 배제한 일방적인 이전 논의 중단 △금융 중심지 도약을 위한 통합 금융 집적화 전략 수립 등이다.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이전 시도에 대응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앞서 지난달 말부터 3개 국책은행 노조는 2차 공공기관 이전에 공동 대응하기로 하고 이번 결의대회를 준비해왔다.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노동조합이 11일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옆 의사당대로에서 '국책은행 지방 이전 저지 총력 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여의도=이선영 기자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노동조합이 11일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옆 의사당대로에서 '국책은행 지방 이전 저지 총력 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여의도=이선영 기자

노조의 반발 배경에는 과거 산은 부산 이전 추진 과정에서 불거졌던 인력 이탈에 대한 우려도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인용한 최근 보도에 따르면 산은 남성 직원 이직률은 2021년 3.0%에서 지난해 9.0%로 높아졌다. 시중은행과의 임금 격차와 함께 지방 이전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직원 이탈의 배경 중 하나로 거론됐다. 윤석열 정부가 부산 이전을 본격 추진하던 2022년에도 9월 말 기준 전체 퇴직자가 100명에 달하는 등 인력 유출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정부의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업무계획에서 이전기관과 지역별 배분안 등을 담은 2차 공공기관 이전계획을 마련하고 2027년부터 임차청사 등을 활용해 선도기관 이전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달 8일 전북 KB금융타운 개소식에서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만 현재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의 이전 여부나 이전 지역이 새롭게 확정된 것은 아니다. 국토부는 지난달 15일 "2차 공공기관 이전 관련 이전 대상 기관 및 이전 지역은 전혀 확정된 바 없다"고 공식 해명했다. 국책은행 노조가 정부의 검토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반발하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산은의 경우 다른 두 국책은행과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이미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년 5월 부산 이전공공기관으로 지정·고시됐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본점 이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현행 한국산업은행법 제4조가 "한국산업은행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규정하고 있어 부산으로 본점을 옮기려면 국회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 결국 산은 입장에서는 정부의 2차 이전 추진을 계기로 이미 지정돼 있지만 멈춰 있던 부산 이전 논의가 다시 힘을 받을 가능성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다시 주목받는 인물이 박상진 회장이다. 박 회장은 1990년 산은에 입행해 법무실장과 준법감시인 등을 거쳐 지난해 9월 취임한 산은 최초의 내부 출신 회장이다. 취임 과정부터 본점 이전 문제가 박 회장이 풀어야 할 핵심 내부 현안으로 떠올랐다. 산은 노조는 당시 박 회장에게 '본점 부산 이전 반대 입장 표명'과 '이전공공기관 지정 해제 추진' 등을 요구했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출근 저지에 나서겠다고 압박했다.

박 회장은 이에 본점 이전 반대 입장 표명과 이전공공기관 지정 해제 추진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을 노조 측에 전달했다. 취임 이후 직원들에게 보낸 별도 메시지에서는 본점 이전 논의와 추진 과정에서 직원들이 겪은 상처를 언급하면서 직원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지난 2월 기자간담회에서 산은의 'KDB NEXT KOREA' 프로그램을 통해 국가 균형성장을 위한 지역금융에 5년간 75조원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국산업은행 본점. /여의도=이선영 기자
박 회장은 지난 2월 기자간담회에서 산은의 'KDB NEXT KOREA' 프로그램을 통해 국가 균형성장을 위한 지역금융에 5년간 75조원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국산업은행 본점. /여의도=이선영 기자

첫 내부 출신이라는 점은 박 회장에게 강점인 동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취임 당시 노조 역시 내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은 아니라면서 산은의 사정을 잘 아는 만큼 직원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고 조직을 지키는 데 소신 있게 행동해 달라고 요구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지방 이전 논란이 다시 커지면서 당시 노조와의 약속과 신뢰 관계가 실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그렇다고 박 회장이 지역균형발전이나 지방에 대한 정책금융 확대에 소극적인 것은 아니다. 박 회장은 지난 2월 기자간담회에서 산은의 'KDB NEXT KOREA' 프로그램을 통해 국가 균형성장을 위한 지역금융에 5년간 75조원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달에는 부산에서 열린 금융위원회의 첨단산업·벤처생태계 간담회에도 참석했다. 국민성장펀드는 향후 5년간 전체 공급액의 40% 이상을 지방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박 회장은 '지역 지원'과 '본점 이전'을 어떻게 구분해 정부와 내부 구성원을 설득할지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 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공급을 확대하는 것은 정부의 균형성장 정책에 부응하면서도 산은이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정책금융 기능의 연장선이지만 본점의 물리적 이전은 인력·조직 운영과 금융산업 집적 문제까지 얽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날 3대 국책은행 노조가 거리로 나서면서 박 회장이 계속 침묵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정부가 향후 구체적인 이전 대상과 지역을 확정하는 단계에 들어가면 산은의 기존 부산 이전공공기관 지정 문제 역시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취임 당시 직원들의 이전 반대 목소리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던 첫 내부 출신 회장이 정부의 2차 이전 드라이브가 본격화한 상황에서도 같은 기조를 유지할지, 박 회장의 리더십이 취임 이후 가장 민감한 시험대에 올라섰다.

노조는 박 회장에게 본점 이전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직접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정청 산업은행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더팩트>에 "아직까지 박 회장이 산은 본점 이전 논의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없다"며 "그동안은 이전이 확정되거나 공식화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그럴 수 있다고 봤지만, 최근 산업은행을 포함한 국책금융기관도 이전 대상으로 거론되고 부산 등 지역에서 유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내부 출신 여부를 떠나 산은 회장으로서 기관 경쟁력 등을 고려해 산업은행 본점은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대내외에 공식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노조도 조만간 박 회장에게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eonye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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