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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열린 ‘이강인 시대’…그리즈만의 7번 새 주인, 기대도 함성도 넘쳤다 [박순규의 창]
"컴온 시티!" 잠재운 "이강인!" 함성…후반 19분 등장과 함께 상암은 ‘알레띠 홈’
시메오네의 신뢰 업고 ‘120% 도전’ 출발


9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쿠팡플레이시리즈 2차전 팀 맨체스터 시티 FC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경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강인(오른쪽)이 교체투입 되며 시메오네 감독의 지시를 받고 있다./서울=뉴시스
9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쿠팡플레이시리즈 2차전 팀 맨체스터 시티 FC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경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강인(오른쪽)이 교체투입 되며 시메오네 감독의 지시를 받고 있다./서울=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상암벌의 주인은 ‘알레띠’였다. 그것은 경기 결과와 상관없는 즐거움이었다. 전반전까지만 해도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응원전은 팽팽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맨체스터 시티 팬들의 "컴온 시티!"가 울려 퍼지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들은 "아우파 알레띠!"로 맞받았다.

그러나 후반 19분, 그 균형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등번호 7번을 단 이강인(25)이 터치라인에 모습을 드러내자 5만여 관중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그리고 그가 그라운드를 밟는 순간 상암벌을 뒤덮은 것은 맨시티도, 아틀레티코도 아닌 "이강인!"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분명했다. 이날 상암의 홈팀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다. 이강인이 한국 팬들의 함성을 등에 업고 스페인 명문의 일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경기도 흥미롭게 흘러갔다. 아틀레티코는 전반 43분 코너킥 상황에서 흘러나온 공을 호르헤 도밍게스가 마무리하며 1-0으로 앞섰다. 벤치에서 지켜보던 이강인도 벌떡 일어나 동료들과 기쁨을 나눴다.

이강인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응원하는 알레띠 응원단./서울월드컵경기장=박순규 기자
이강인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응원하는 알레띠 응원단./서울월드컵경기장=박순규 기자

하지만 맨시티는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후반 들어 앙투안 세메뇨가 아틀레티코의 왼쪽 측면을 거푸 허물었다. 후반 12분과 14분 불과 2분 사이에 연속골을 내주면서 아틀레티코는 1-2로 역전을 허용했다.

그리고 시메오네 감독이 꺼내 든 카드 가운데 가장 뜨거운 이름이 이강인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자리였다. PSG에서 주로 측면 공격수나 공격형 미드필더, 때로는 공격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았던 이강인은 이날 최전방 투톱의 한 축으로 배치됐다. 전날 공개훈련에서 세컨드 스트라이커와 원톱 뒤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됐던 시메오네 감독의 구상이 실제 경기에서도 이어졌다.

그라운드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존재도 알렸다.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아틀레티코가 프리킥을 얻자 새로운 동료들과 몇 차례밖에 훈련하지 않은 이강인이 곧바로 키커로 나섰다. 단순히 ‘한국 팬들을 위한 이벤트성 출전’이 아니라 세트피스와 공격 전개에서 자신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이강인이 들어간 뒤 달라진 경기장의 공기였다. 공 하나를 잡을 때마다 5만 78명에 달란 팬들의 함성이 터졌고, 전방으로 움직일 때마다 관중석이 들썩였다. 맨시티라는 세계적 명문을 상대로 치르는 친선경기였지만 관중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아틀레티코의 새로운 7번에게 집중됐다.

9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쿠팡플레이시리즈 2차전 팀 맨체스터 시티 FC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경기, 양팀 선수들이 공중볼 경합을 하고 있다./서울=뉴시스
9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쿠팡플레이시리즈 2차전 팀 맨체스터 시티 FC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경기, 양팀 선수들이 공중볼 경합을 하고 있다./서울=뉴시스

3년 전인 2023년 여름에도 두 팀은 같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맞붙었다. 당시 아틀레티코가 맨시티를 2-1로 꺾었지만 한국 팬들에게 두 팀은 어디까지나 먼 유럽에서 날아온 세계적 명문이었다.

3년이 흐른 이날은 달랐다. 아틀레티코에는 한국인이 있었다. 그것도 단순한 후보 선수가 아니었다. 구단의 상징적 번호 가운데 하나인 7번을 등에 새긴 한국 축구의 에이스였다. 비록 경기는 맨시티의 3-1 역전승으로 끝났지만 이강인의 새 출발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그것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7번은 앙투안 그리즈만이 오랫동안 달았던 번호다. 경기 후 열린 특별 입단식은 그래서 더욱 상징적이었다. 아틀레티코에서 뛰었던 스페인의 전설적인 공격수 다비드 비야가 직접 나서 이강인에게 특별 유니폼을 전달했다. 마드리드 홈구장이 아니라 서울에서 먼저 새 선수를 팬들에게 소개하는 이례적인 무대였다.

이강인에 대한 아틀레티코의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강인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그는 화려한 등번호보다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그리고 "100%가 아니라 120%를 쏟겠다"고 다짐했다.

프로축구에서 말보다 무서운 것은 그라운드다. 7번도, 거액의 이적료도, 특별 입단식도 선발 자리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뒤흔든 5만여 팬들의 엄청난 함성 역시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순간부터는 사라진다.

그곳에서는 냉혹한 경쟁이 기다린다. 그리즈만의 번호를 물려받았다는 것은 영광인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다. 시메오네 감독의 신뢰가 크다는 것도 그만큼 요구하는 수준이 높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날 서울 데뷔전은 완성이 아니라 출발이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다. 발렌시아에서 시작해 마요르카를 거쳐 PSG에서 유럽 정상의 공기를 경험한 이강인은 이제 다시 자신이 가장 익숙한 스페인 무대로 돌아간다. 하지만 예전의 유망주 이강인이 아니다.

25세의 전성기에 접어든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이자 아틀레티코의 7번이다. 서울에서의 기대는 차고 넘쳤다. 시메오네 감독의 신뢰도, 구단의 대우도, 한국 팬들의 사랑도 충분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하나다.

‘그리즈만의 7번’을 ‘이강인의 7번’으로 만드는 것이다. 후반 19분, "이강인!"이라는 함성이 상암벌을 뒤흔들던 순간 시작된 그의 새로운 축구 인생이 마드리드에서도 계속될 수 있을까. 시작하는 장소가 반드시 목적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출발은 그 자체만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강인 시대’의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9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쿠팡플레이시리즈 2차전 팀 맨체스터 시티 FC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경기, 양팀 선수들이 공중볼 경합을 하고 있다./서울=뉴시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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