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액션의 경쟁력은 감정"

최근 안방극장에는 복수와 범죄, 킬러를 앞세운 액션물이 잇따라 등장해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로맨스와 휴먼물이 주를 이루던 흐름에서 액션 장르가 새로운 흥행 공식으로 떠오른 가운데 K액션은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는지 <더팩트>가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최수빈 기자] 화려하면서도 통쾌한 액션 장면 뒤에는 수많은 사람의 움직임을 설계하는 무술감독이 있다. 과거 배우의 동작을 지도하고 위험한 장면을 조율하는 역할에 머물렀던 무술감독은 이제 캐릭터의 감정과 작품의 흐름까지 설계하는 또 한 명의 연출자로 자리 잡았다.
류성철 무술감독은 최근 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에 위치한 서울액션스쿨에서 <더팩트>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액션 장면이 탄생하는 과정과 K액션의 경쟁력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류 감독이 몸담고 있는 서울액션스쿨은 액션배우와 스턴트 배우를 양성하는 국내 대표 액션 전문 교육 기관이다. 카메라 트릭이나 CG에 의존하지 않는 실제 액션 연기를 목표로 하며 영화와 드라마, 방송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활용되는 액션을 현장 중심으로 교육하고 있다.
특히 액션배우와 스턴트 배우 지망생의 진로에 맞춘 맞춤형 교육도 진행한다. 실제 몸으로 구현하는 액션과 스턴트 기술을 중심으로 실전 역량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췄으며 지금까지 780여 편이 넘는 작품 참여 경험을 교육에 녹여내고 있다.
교육 과정 역시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실전 중심으로 구성됐다. 장거리·단거리 달리기와 점프, 근력 및 지구력 향상을 위한 기초체력 훈련부터 주먹과 발차기, 피하기, 막기 등 현대 액션의 기본기를 읽힌다. 여기에 무기술을 포함한 사극 액션과 시대극 동작 구성, 낙법 구르기 텀블링 등 부상을 최소화하면서도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기초체조 교육도 함께 이뤄진다.
류 감독은 "대한민국의 영화와 드라마 속 액션을 책임지고 이끌고 있는 곳"이라며 "업계에서 가장 많은 스턴트맨과 가장 많은 무술감독이 상주한 만큼 아주 다양한 관점의 작품들이 많이 탄생하고 있는 회사"라고 소개했다.
2003년 스턴트 배우로 데뷔한 류 감독은 올해로 23년째 현장을 지키고 있다. 무술감독으로 활동한 지도 약 11년이다. 그간 넷플릭스 '킹덤', 디즈니+ '무빙' 등 굵직한 작품들의 액션을 설계했다.

무술감독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무술감독은 배우들의 액션 시퀀스 장면을 설계하고 만들어 시청자들에게 통쾌함과 짜릿한 매력을 전한다. 류 감독은 "무술감독은 작품에 맞는 액션 시퀀스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라며 "액션을 어떤 방향으로 가겠다고 감독님을 비롯해 파트 담당자들과 소통해서 현장 세팅까지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스턴트 코디네이팅을 주로 맡았다면 요즘은 캐릭터의 감정이 불타올라서 싸울 때 그 감정이 확 오르는 싸움의 무드까지도 어떻게 가면 좋을지에 대해 깊이 상의를 하고 있어요. 캐릭터를 조금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연출자적 역할로서 움직이고 있는 거죠."
이처럼 캐릭터의 감정을 액션으로 표현해야 하는 만큼 대본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 역시 캐릭터 분석이다. 류 감독은 "현장에서 연출자와 소통을 해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만약에 내가 연출자라면 어떻게 그릴지를 생각해서 세심하게 캐릭터를 분석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캐릭터 분석이 끝나면 본격적인 액션 설계가 시작된다. 먼저 류 감독이 직접 캐릭터가 돼 동작을 구현하고 어시스턴트와 함께 액션 합을 발전시킨다. 이후에는 다시 연출자의 시선으로 완성된 움직임을 바라보며 불필요한 동작은 덜어내고 필요한 장치는 더해 하나의 액션 시퀀스를 완성한다.
"저는 액션 합을 댄스 장르에서 많이 찾아요. 춤을 창작하는 분들은 남들이 하지 않는 동작을 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고 몸을 워낙 자유롭게 쓰시잖아요. 그걸 보면서 '저렇게도 몸을 쓸 수 있네'라는 생각을 해서 캐릭터에 녹여서 진행을 하곤 해요."
이렇게 완성된 액션은 스턴트 배우들에게 전달된다. 다만 스턴트 배우들은 작품이 정해진 뒤에만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꾸준히 기본기를 다져 언제든 현장에 투입될 준비를 한다.
"특정 작품만을 위해서 연습을 하지는 않아요. 각자 개인의 역량을 개발하고 반복 훈련을 진행하죠. 그럼 저는 촬영하는 작품의 캐릭터와 가장 부합한 대역이나 인물을 캐스팅해서 제가 구성해 놓은 걸 캐릭터한테 전달해 주고 그 부분이 바로바로 나올 수 있게 해요. 기본 훈련을 할 때 교육팀이 있기는 하지만 각자 준비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딱 만나서 컬래버레이션하는 그런 식으로 진행돼요."

이 같은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무빙'을 꼽았다. 극 중 봉석(이정하 분)이 하늘을 나는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제작진은 약 100m 길이의 와이어 두 줄을 연결해 총 200m 규모의 장치를 설치했다.
류 감독은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너무 부담으로 다가와 감독님과 두세 달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며 "다른 방식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여쭤봤지만 감독님은 꼭 해야 한다고 하셨고 고민 끝에 설계해 촬영을 마쳤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봉석 한 명을 날리기 위해 액션팀에서만 25명이 투입됐다. 와이어팀 20명이 동시에 줄을 당기며 촬영을 진행했지만 류 감독은 촬영을 마친 뒤에도 결과를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촬영은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다 보니 어떤 그림이 나올지 걱정이 많았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완성된 장면을 보자마자 울컥했어요. 그때 연출이라는 게 무엇인지 배운 것 같아요. 새로운 걸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장면을 어떻게 계산하고 설계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 순간이었어요.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가장 크게 체감한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AI와 CG 기술의 발전으로 액션 장면 역시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SBS 금토드라마 '김부장'은 한국 드라마 최초로 약 3분 분량의 주요 액션 시퀀스를 100% AI 기술로 구현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류 감독은 기술이 발전해도 액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감정'이라고 강조했다.
"동작 자체는 디자인할 수 있죠. 오른손 주먹을 지른 다음 왼발로 차라는 디렉션은 가능하지만 분노를 담아 주먹을 지르라는 감정의 표현은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한국 액션의 경쟁력은 감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냥 주인공에게 던지는 주먹이 아니라 분노와 슬픔이라는 감정을 담은 한 방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시청자들은 액션 장면을 어떻게 봐야 할까. 류 감독은 "기술과 동작을 분석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액션은 감정의 최고치에서 폭발시켜서 영화의 리듬과 기능적 역할로 템포를 바꾸는 엄청난 환기장치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가 분노로만 끝까지 갈 수도 있겠지만 분노가 폭발하더라도 환기가 돼야 결말도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액션 장면을 하나하나 분석하기보다 그냥 작품으로서 내가 쫓고 있는 캐릭터를 따라가면 더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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