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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사람 잃는 줄 알았다"…집채만 한 파도 뚫고 독도 전력 살려낸 '숨은 수호자'
1980년대 초 독도 동도 앞바다서 벌어진 목숨 건 입도 작전
20년간 독도 밤 밝힌 '숨은 파수꾼' 조명호 씨 회고록서 확인


독도 암벽에 '한국령'을 서각한 조명호 씨. 그는 1980년대 당시 발전기 수리 기술자였다. /본인 제공
독도 암벽에 '한국령'을 서각한 조명호 씨. 그는 1980년대 당시 발전기 수리 기술자였다. /본인 제공

[더팩트ㅣ울릉=김성권 기자] 1980년대 초 어느 봄날 독도 동도 앞바다. 집채만 한 검은 파도가 독도를 집어삼킬 듯 솟구쳤다. 울릉도 저동항에서 6시간을 거슬러 온 작은 어선 '진흥호'는 거센 물살에 휩쓸려 갈피를 잡지 못했다. 발을 디딜 곳조차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암벽. 정상적인 하선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하지만 독도의 밤을 밝히는 경비대의 불빛이 꺼져가고 있었다. 독도 전력을 복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마저 압도했다.

1967년 당시 17세 나이로 독도 암벽에 '한국령'을 서각한(지난 7월 21일 <더팩트> 보도: [단독] 영토주권 상징 독도 '한국령' 세 글자 암벽에 새긴 주인공 찾았다) 조명호(76) 씨는 31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40여 년 전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며 "그 순간에는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독도 경비대 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고 말했다.

독도 앞바다에서 펼쳐진 목숨을 건 입도 작전의 주인공이었던 조 씨는 당시 발전기 수리 기술자였다. 그는 고장 난 발전기를 돌려 전력을 복구하라는 임무를 띠고 독도로 향했다.

조명호 씨의 독도 발전기 수리 회고록. /본인 제공
조명호 씨의 독도 발전기 수리 회고록. /본인 제공

◇밤샘 멀미와 집채만 한 파도, 절체절명의 순간…"울릉도로 회항해야 하나"

오전 10시 울릉도 저동항에서 출항해 오후 4시쯤 독도에 도착했으나, 독도 바다는 쉽게 길을 내주지 않았다. 배 안에서 극심한 멀미와 싸우며 독도 등대 아래서 밤을 지새웠지만 날이 밝아도 상황은 악화할 뿐이었다.

선장 고(故) 배경조 씨마저 "더 이상 작업이 어렵다. 울릉도로 돌아가야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경비대의 전력 마비를 그대로 두고 돌아설 수는 없었다.

무전기 건너편 경비대의 긴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똥바위(동키바위)에 내려줄 테니, 동키(화물용 바가지)를 타고 올라오십시오!"

선장은 파도가 잠시 잦아드는 미세한 틈을 타 배를 바위에 바짝 붙였다. 순간을 놓칠세라 조명호 씨는 무게가 나가는 공구함부터 바위 위로 힘껏 던졌다. 그리고 파도가 솟구치는 순간 선수(船首)에서 젖 먹던 힘을 다해 암벽으로 몸을 던졌다.

바로 그 순간, 거대한 파도가 덮치며 배가 뒤로 밀려 나갔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이제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와이어 하나에 의지한 채 올라온 암벽…막사 전 대원 가슴 쓸어내려

생사의 갈림길에서 조 씨가 잡은 것은 화물용 바가지와 연결된 가느다란 와이어 줄이었다. 온몸이 차가운 바닷물에 흠뻑 젖은 채 바위 위에 흩어진 공구를 하나씩 챙겨 바가지에 실었다. 그리고 자신도 마지막 힘을 짜내 바가지에 몸을 실었다.

독도 상부에서 줄을 끌어올리던 고(故) 황영문·권만호 순경 등 경비대원들은 파도에 휩쓸리는 조 씨를 보며 피가 말라붙는 듯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정말 사람 하나 잃어버리는 줄 알고 가슴을 졸였다"는 당시 대원들의 증언은 현장의 긴박함을 그대로 전해준다.

무사히 암벽을 타올라 상부에 발을 디디자, 새벽부터 작업복 차림으로 기다리던 전 대원이 달려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살아 올라와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조명호 씨의 독도 발전기 수리 회고록. /본인 제공
조명호 씨의 독도 발전기 수리 회고록. /본인 제공

◇"독도를 지킨 것은 장비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은 마음"

이처럼 사선을 넘나들며 독도에 입도한 조 씨는 즉시 발전기 수리에 들어갔다. 그는 1968년부터 독도 경비 업무가 독도경비대로 이관되기 전까지 약 20년 동안 험난한 바다를 오가며 독도의 전력 인프라를 책임진 '숨은 독도 수호자'였다.

오늘날 독도 위로 당당히 휘날리는 태극기와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의 불빛 뒤에는 조명호 씨처럼 이름 없이 목숨을 걸고 독도를 지켜낸 이들이 있었다.

독도의 숨은 파수꾼 조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낮게 읊조렸다.

"독도를 지킨 것은 화려한 장비가 아니라, 그곳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마음이었습니다."


t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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