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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창 뒤집으니 ‘M’…제로백 3.8초 SUV,1억6480만원 돈값 할까 [오승혁의 팩트 DRIVE]
530마력·최고속도 285㎞/h…슈퍼카 심장 품은 럭셔리 SUV
감성·가속력은 ‘합격’, 마사지·주차 보조 등 편의 기능은 아쉬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차는 나에게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는 거다.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삶의 일부다." -엔초 페라리(1898~1988)

매년 수백 종의 신차가 쏟아지는 시대. 자동차에 대한 정보는 넘쳐 나는데, 정작 제대로 된 ‘팩트’는 귀하다. ‘팩트 DRIVE’는 <더팩트> 오승혁 기자가 직접 타보고, 확인하고, 묻고 답하는 자동차 콘텐츠다. 흔한 시승기의 답습이 아니라 ‘오해와 진실’을 짚는 질문형 포맷으로, 차에 관심 있는 대중의 궁금증을 대신 풀어준다. 단순한 스펙 나열은 하지 않는다. 이제 ‘팩트 DRIVE’에 시동을 건다. <편집자 주>

[더팩트|충북 청주=오승혁 기자]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의 전면부를 바라보다 타원형 로고를 180도 돌려봤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든 삼지창이 알파벳 ‘M’처럼 보였다. 마세라티(Maserati)의 첫 글자다.

장난스럽게 로고를 돌리며 시작한 첫 만남은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진지해졌다.

‘M’은 마세라티를 뜻하지만 이 차를 며칠간 타고 난 뒤에는 다른 단어들도 떠올랐다. 강렬한 힘을 뜻하는 ‘머슬(Muscle)’,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매력(Magnetism)’, 그리고 1억6000만원이 넘는 가격 앞에서 시작되는 ‘망설임’이다.

그레칼레 트로페오는 아름다운 외모로 운전자를 유혹하고 530마력의 힘으로 붙잡는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3.8초다. 가족을 태우는 중형 SUV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웬만한 스포츠카를 집어삼킬 기세로 튀어나간다.

반면 가격을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편의 기능의 빈자리도 분명하다. 감성과 성능은 뜨겁지만 모든 항목에서 빈틈없는 모범생은 아니다.

서울 도심과 경기도, 충북 청주의 굽이진 도로를 달리며 그레칼레 트로페오의 매력과 망설여지는 지점을 직접 확인했다. 삼지창 아래 숨겨진 ‘M’의 오해와 진실을 지금부터 가감 없이 살펴본다.

그레칼레 트로페오는 아름다운 외모로 먼저 유혹하고, 강렬한 힘으로 운전자를 붙잡는다. 반면 1억6000만원이 넘는 가격을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편의 기능의 빈자리도 존재한다. /경기 파주=오승혁 기자
그레칼레 트로페오는 아름다운 외모로 먼저 유혹하고, 강렬한 힘으로 운전자를 붙잡는다. 반면 1억6000만원이 넘는 가격을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편의 기능의 빈자리도 존재한다. /경기 파주=오승혁 기자

- 왜 이름이 ‘그레칼레’인가?

그레칼레는 지중해에서 부는 북동풍의 이름이다. 마세라티는 바람을 좋아한다. 기블리와 르반떼 역시 바람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바람처럼 빠르고 자유롭게 달리는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브랜드의 철학이 작명에 담겼다.

마세라티를 대표하는 삼지창 문양은 이탈리아 볼로냐의 넵투누스 분수에서 영감을 얻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든 삼지창은 힘과 강렬함을 상징한다. 차 앞에 박힌 타원형 로고를 거꾸로 바라보면 알파벳 ‘M’처럼 보인다. 마세라티의 정체성을 재치 있게 압축한 장치다.

그레칼레 트로페오의 차체는 전장 4859㎜, 전폭 1979㎜, 전고 1659㎜다. 휠베이스는 2901㎜로 넉넉하다. 공차중량은 2027㎏, 트렁크 용량은 570ℓ다. 국내 판매 가격은 1억6480만원이다.

숫자만 보면 중형 SUV지만 실제로 마주하면 낮게 웅크린 맹수에 가깝다. 세로형 그릴과 낮게 배치된 삼지창, 날렵한 헤드램프가 차체를 실제 크기보다 넓고 낮게 보이도록 만든다. 과시하려 애쓰기보다 본래 가진 힘을 조용히 드러내는 인상이다.

숫자만 보면 중형 SUV지만 실제로 마주하면 낮게 웅크린 맹수에 가깝다. 세로형 그릴과 낮게 배치된 삼지창, 날렵한 헤드램프가 차체를 실제 크기보다 넓고 낮게 보이도록 만든다. 과시하려 애쓰기보다 본래 가진 힘을 조용히 드러내는 인상이다. /충북 청주=오승혁 기자
숫자만 보면 중형 SUV지만 실제로 마주하면 낮게 웅크린 맹수에 가깝다. 세로형 그릴과 낮게 배치된 삼지창, 날렵한 헤드램프가 차체를 실제 크기보다 넓고 낮게 보이도록 만든다. 과시하려 애쓰기보다 본래 가진 힘을 조용히 드러내는 인상이다. /충북 청주=오승혁 기자

- SUV가 제로백 3.8초, 정말 체감 가능?

과장이 아니다. 오히려 숫자를 알고 밟아도 당황스럽다.

그레칼레 트로페오에는 마세라티가 독자 개발한 3.0L V6 트윈터보 ‘네튜노’ 엔진이 들어간다. 최고출력 530마력을 발휘한다. 8단 자동변속기와 사륜구동 시스템이 맞물리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3.8초 만에 도달한다. 최고속도는 시속 285㎞다. 이렇게 말하면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럼 다른 차량과 비교해보자.

최고출력 530마력이 어느 정도인지 익숙한 SUV와 비교하면 체감이 쉽다. 기아 쏘렌토 2.5 가솔린 터보는 281마력, 제네시스 GV80 3.5 터보는 380마력이다. 그레칼레 트로페오는 쏘렌토보다 약 1.9배 강하고 GV80보다도 150마력 앞선다. 가족을 태우는 중형 SUV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심장만큼은 웬만한 스포츠카를 집어삼킬 기세다.

고성능 수입 SUV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500마력의 포르쉐 카이엔 GTS보다 강하고 520마력의 알파로메오 스텔비오 콰드리폴리오와는 비슷하다. 612마력의 메르세데스-AMG GLE 63 S에는 출력이 못 미치지만,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그레칼레 토르레오가 0.1초 빠르다. 숫자만 보면 중형 SUV의 외피를 쓴 슈퍼카에 가깝다.

과거 BMW M135i를 타고 영종대교를 오가며 4초대 제로백의 재미를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작고 가벼운 차체가 ‘붕’ 하고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레칼레는 다르다. 2톤이 넘는 SUV가 거대한 덩치를 잊은 듯 삽시간에 앞으로 튀어나간다.

고속도로 진입 구간에서 가속페달을 깊게 밟자 잠시 뒤로 밀리는 감각과 함께 시야가 빠르게 좁아졌다. 힘을 과시하기 위해 요란하게 몸부림치기보다 묵직한 차체를 통째로 밀어낸다. SUV의 높은 시야와 슈퍼카에 가까운 가속력이 동시에 밀려오니 묘한 쾌감이 생긴다.

스티어링 휠은 손에 포근하게 들어오고 조향 반응도 빠르다. 좌회전이나 유턴, 좁은 길을 빠져나갈 때 차체가 운전자의 의도를 빠르게 따라온다. 전폭이 2m에 육박하지만 적응을 마치면 거대한 몸집을 끌고 다닌다는 부담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번 시승차의 붉은 가죽 시트는 그레칼레의 실내를 단숨에 특별한 공간으로 만든다. 차분한 외관과 달리 실내는 대담하고 관능적이다. 시트와 도어를 채운 붉은색, 금속 장식, 대시보드 중앙의 시계가 한꺼번에 시선을 잡아당긴다. /서울 마포구=오승혁 기자
이번 시승차의 붉은 가죽 시트는 그레칼레의 실내를 단숨에 특별한 공간으로 만든다. 차분한 외관과 달리 실내는 대담하고 관능적이다. 시트와 도어를 채운 붉은색, 금속 장식, 대시보드 중앙의 시계가 한꺼번에 시선을 잡아당긴다. /서울 마포구=오승혁 기자

- 마세라티의 ‘감성’은 돈값을 하나?

문을 여는 순간만큼은 확실히 그렇다.

이번 시승차의 붉은 가죽 시트는 그레칼레의 실내를 단숨에 특별한 공간으로 만든다. 차분한 외관과 달리 실내는 대담하고 관능적이다. 시트와 도어를 채운 붉은색, 금속 장식, 대시보드 중앙의 시계가 한꺼번에 시선을 잡아당긴다.

중앙에는 12.3인치 디스플레이와 8.8인치 컴포트 디스플레이가 배치됐다. 과거 고급 수입차의 상징이었던 대시보드 중앙 시계는 디지털 방식으로 재해석됐다. 클래식과 스포츠 디자인 등 원하는 형태로 바꿀 수 있다.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지 않고 디지털 기술로 변주한 선택이다.

차를 처음 수령하고 실내를 바라봤을 때 "아름답다", "예쁘다", "왜 성공한 사람들이 이런 차를 타고 싶어 하는지 알겠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단순히 비싼 소재를 늘어놓은 공간과는 다르다. 이탈리아 자동차가 어떤 방식으로 운전자의 감정을 자극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마세라티와 파트너십을 맺은 이탈리아의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소너스 파베르도 감성을 거든다. 저음은 단단하고 보컬은 비교적 선명하다. 음악과 엔진음이 번갈아 실내를 채우면서 이동 시간을 하나의 공연처럼 만든다. 노래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만족스러운 경험을 선사했다.

차를 처음 수령하고 실내를 바라봤을 때
차를 처음 수령하고 실내를 바라봤을 때 "아름답다", "예쁘다", "왜 성공한 사람들이 이런 차를 타고 싶어 하는지 알겠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서울 마포구=오승혁 기자

- 가족이 함께 타는 SUV로도 충분한가?

공간 자체는 합격점이다. 2901㎜의 휠베이스 덕분에 2열 레그룸과 헤드룸이 부족하지 않다. 운전석을 억지로 바짝 당기지 않은 상태에서도 성인 남성이 앉을 만한 무릎 공간이 남았다. 머리 위에도 한 뼘 안팎의 여유가 생긴다.

570ℓ의 트렁크는 안쪽으로 깊게 빠졌다. 2열 시트를 접으면 적재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으며 실드를 활용해 짐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할 수도 있다. 다만 그레칼레 트로페오는 가족을 최대한 편안하게 옮기는 데만 집중한 SUV는 아니다. 단단한 주행 감각과 즉각적인 반응, 엔진의 존재감이 계속 운전자를 자극한다. 뒷좌석 승객의 안락함보다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잡았을 때의 감각에 조금 더 무게를 둔 차다.

- 편의 기능은 만족스러웠나?

이 질문 앞에서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시승차에서는 시트 마사지 기능과 적극적인 자동 주차 보조 기능 등 운전자가 가격대에서 기대할 만한 일부 편의 기능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좁은 공간에서 전·후방 주차를 지원하는 기능과 운전자의 수고를 덜어주는 세부 장비도 경쟁 모델보다 풍부하다는 인상을 주지 못했다.

1억원대 중반의 SUV를 고르는 소비자는 빠른 차만 원하는 것이 아니다. 힘든 날에는 차가 운전자의 몸을 달래주고 복잡한 주차 과정도 대신 해결해 주길 기대한다. 그레칼레 트로페오는 이 부분에서 "운전은 운전자가 직접 즐겨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컴포트와 GT, 스포츠, 코르사, 오프로드 등 다섯 가지 주행 모드와 전자제어 서스펜션, 강력한 네튜노 엔진에는 공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마사지나 주차 보조 같은 편의 기능에서는 다소 무심하다. 스포츠카의 DNA를 품었다는 설명은 이해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소비자가 아쉬움을 느낄 만하다.

그레칼레 트로페오는 모든 항목에서 빈틈없는 모범생이 아니다. 편의 장비의 풍성함과 부드러운 승차감, 압도적인 가성비를 우선한다면 다른 선택지가 눈에 들어올 수 있다. /서울 마포구=오승혁 기자
그레칼레 트로페오는 모든 항목에서 빈틈없는 모범생이 아니다. 편의 장비의 풍성함과 부드러운 승차감, 압도적인 가성비를 우선한다면 다른 선택지가 눈에 들어올 수 있다. /서울 마포구=오승혁 기자

- 최종평은?

그레칼레 트로페오는 모든 항목에서 빈틈없는 모범생이 아니다. 편의 장비의 풍성함과 부드러운 승차감, 압도적인 가성비를 우선한다면 다른 선택지가 눈에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디자인과 붉은 가죽의 감성, 삼지창 로고가 주는 상징성,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폭발하는 530마력의 힘을 한꺼번에 원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차는 운전자를 편하게 모시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달리자고 계속 유혹한다.

내리면서 로고를 다시 봤다. 삼지창은 여전히 강렬했고 이 차를 향한 마음에는 매력과 망설임이 동시에 남았다. 그레칼레 트로페오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모범생은 아니다. 그러나 운전자의 감정을 흔드는 방법만큼은 누구보다 잘 아는 이탈리아산 ‘M’이었다.

sh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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