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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걸린 맥길로이, 6번 눈물 흘린 미컬슨의 '기록' [박호윤의 IN&OUT]
역사상 남녀 단 13명, 커리어 그랜드슬램
한 시즌이 아니라 한 시대를 견뎌야 완성되는 최고의 훈장
14번째는 언제 탄생하나


역사상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6인 중 두 명인 타이거 우즈(오른쪽)와 잭 니클라우스가 2022년 디오픈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AP.뉴시스
역사상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6인 중 두 명인 타이거 우즈(오른쪽)와 잭 니클라우스가 2022년 디오픈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AP.뉴시스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골프에서 가장 어려운 기록은 무엇일까.

한 라운드 모든 홀에서 타수를 줄이는 '18언더 파'일까. 파5 홀에서 홀인원을 잡아내는 이른바 '콘도르(Condor)'일까. 잭 니클라우스가 세운 메이저 18승일까. 아니면 현대 골프에서 아직 누구도 넘지 못한 단일 시즌 메이저 싹쓸이, '캘린더 그랜드슬램'일까.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에는 많은 골프인들이 고개를 끄덕일 듯하다. 가장 어려운 기록은 캘린더 그랜드슬램일지 몰라도, 가장 위대한 기록은 단연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고.

왜 그럴까. '콘도르'는 공식 사례조차 찾기 어렵다. 그러나 이는 실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록이다. 홀의 구조와 강한 뒷바람, 우연이 겹쳐야 가능한, 말 그대로 '가장 일어나기 어려운 사건'에 가깝다. 18언더파 역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기록이지만, 극단적으로 쉬운 코스 세팅과 이상적인 조건을 상상한다면 이론적인 가능성만큼은 남아 있다.

#가장 어려운 캘린더 그랜드슬램, 가장 위대한 커리어 그랜드슬램

반면 캘린더 그랜드슬램은 다르다. 1930년 보비 존스가 달성했지만 당시의 메이저 체계는 지금과 달랐다. 현재의 4대 메이저 시스템에서는 남녀를 통틀어 단 한 명도 이루지 못했다. 그만큼 골프에서 가장 높은 벽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또 다른 차원의 기록이다. 올해만큼 그 의미를 절실하게 보여준 시즌도 드물었다.

올시즌 디 오픈 개막을 앞두고 14일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디펜딩 챔피언 스코티 셰플러. 그는 올해 US오픈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AP.뉴시스
올시즌 디 오픈 개막을 앞두고 14일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디펜딩 챔피언 스코티 셰플러. 그는 올해 US오픈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AP.뉴시스

남자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는 US오픈에서 마지막 퍼즐을 맞추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명예의 전당 입성을 확정한 리디아 고는 US여자오픈과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역사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여자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다마저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시즌 첫 컷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내며 일단 고지 정복에 실패했다.

#셰플러, 리디아, 코다 모두 마지막 퍼즐 못맞춰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차례로 역사에 도전했지만, 누구도 마지막 문을 열지 못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 사실이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위대함을 증명한다.

PGA와 LPGA 투어 역사를 통틀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는 남자 6명, 여자 7명 등 모두 13명뿐이다. 수십 년 동안 많은 수의 메이저 챔피언이 탄생했지만 마지막 문턱을 넘어선 이는 단 13명이다.

그러나 이 기록의 진정한 가치는 '13'이라는 숫자보다 그들이 그 자리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의 깊이 속에 숨어 있다.

#우즈는 3년 3개월, 맥길로이는 11년 걸려 완성

역사는 어떤 이에게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타이거 우즈는 1997년 마스터스 첫 우승 이후 불과 3년 3개월 만에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 2000년 세 번째 메이저(US오픈)를 차지한 뒤 마지막 퍼즐인 디오픈을 채우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한 달 남짓이었다.

캐리 웹은 더 빨랐다. 첫 메이저 우승 후 1년 11개월 만에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했고, 이후 브리티시여자오픈까지 품으며 5대 메이저를 섭렵한 역사상 유일한 '슈퍼 커리어 그랜드슬래머'가 됐다. 말 그대로 역사를 질주한 사람들이었다.

지난해 마스터스 우승으로 11년을 끌어 온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한 로리 맥길로이가 우승을 확정짓는 마지막 퍼트 후 무릎을 꿇은 채 주먹을 쥐고 환호하고 있는 모습/AP.뉴시스
지난해 마스터스 우승으로 11년을 끌어 온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한 로리 맥길로이가 우승을 확정짓는 마지막 퍼트 후 무릎을 꿇은 채 주먹을 쥐고 환호하고 있는 모습/AP.뉴시스

하지만 모든 전설의 여정이 이들 처럼 찬란하고 재빠르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로리 맥길로이는 2014년 세 번째 메이저를 차지한 뒤 마스터스 하나를 남겨놓고 무려 11년을 기다려야 했다. 매년 4월이면 "올해가 그랜드슬램의 해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고, 그 긴 기다림 끝에 2025년이 되어서야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 줄리 잉스터는 첫 메이저 우승 후 15년 만에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했고 박인비는 7년, 아니카 소렌스탐은 8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비로소 역사의 종착역에 도착했다.

#필 미컬슨의 탄식, 마지막 퍼즐 US오픈 준우승만 여섯번

반대로 끝내 그 문을 열지 못한 비운의 거장도 있다. 필 미컬슨은 마스터스(2004, 2006, 2010년)와 PGA챔피언십(2005, 2021년), 디 오픈(2013년) 등 여섯 번이나 메이저 챔피언에 올랐지만 꼭 필요한 US오픈에서 준우승만 여섯 차례 기록하며 끝내 마지막 퍼즐을 채우지 못했다. 조던 스피스 역시 2017년 세 번째 메이저 우승 이후 올해까지 9년째 PGA 챔피언십 하나를 남겨두고 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실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마지막 퍼즐이 되는 대회와의 궁합도 필요하고, 오랜 시간 세계 정상에 머물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도 필요하다. 슬럼프를 견뎌야 하고, 부상을 피해 가야 하며, 때로는 바람 한 줄기와 퍼트 하나의 행운까지 따라야 한다.

역사는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오래 위대함을 유지한 선수에게만 마지막 문을 연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듯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넬리 코다. 코다는 이달 말 열리는 AIG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 사상 8번째 커리어 그랜드슬래머가 된다./AP.뉴시스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듯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넬리 코다. 코다는 이달 말 열리는 AIG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 사상 8번째 커리어 그랜드슬래머가 된다./AP.뉴시스

그래서 2026년은 참으로 흥미진진한 시즌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차례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역사에 도전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고 그 앞에서는 모두 같은 도전자였다.

단일 시즌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캘린더 그랜드슬램은 '한 시즌 동안 가장 완벽한 경기력'을 요구하는 기록이다. 그러나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다르다. 그것은 한 시즌이 아니라, 한 시대를 견뎌야 하는 기록이다.

그래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가장 길고, 가장 혹독한 시험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간 그 모진 시험을 통과한 전설은 역사상 단 13명뿐이다.

(이달 30일 영국의 로열 리덤 앤 세인트앤스 골프클럽에서 열리는 AIG여자오픈에서 넬리 코다는 다시 한번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도전한다. 코다 외에 한국의 전인지와 호주 교포 이민지 역시 AIG오픈에서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래머가 된다. 전인지와 이민지는 나란히 KPMG위민스PGA챔피언십, US여자오픈, 에비앙챔피언십 등 3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한 바 있어 AIG 또는 내년 초 셰브론챔피언십을 우승하면 된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듯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넬리 코다. 코다는 이달 말 열리는 AIG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 사상 8번째 커리어 그랜드슬래머가 된다./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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