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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협회장 이정효’는 어떨까...대표팀 감독으로만 쓰기엔 아깝다[이영규의 비욘더매치]
‘그들만의 밥그릇’ 깨부술 '팬 중심' 축구 산업 발전론
운동장 아닌 ‘행정의 최전선’에서 한국 축구의 판을 새로 짤 적임자


수원삼성 이정료 감독이 11일 안산 그리너스와의 K리그2 원정경기를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다./안산=K리그
수원삼성 이정료 감독이 11일 안산 그리너스와의 K리그2 원정경기를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다./안산=K리그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2026 월드컵 참패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든 한국 축구는 지금 거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홍명보 감독 사임 이후 차기 지휘봉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한창이다. 세간의 시선은 자연스레 또다시 현역 시절 명성을 날린 스타 플레이어 출신들에게 향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또 하나의 낯설고도 뜨거운 이름이 후보군 전면에 등장했다. 바로 지난해까지 K리그에서 전술적 혁신을 일으키며 광주FC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8강으로 이끌었고, 현재는 K리그2 수원 삼성이라는 거대한 명가 재건의 무대로 자리를 옮겨 고군분투 중인 이정효 감독이다.

비주류 출신인 그가 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한국 축구의 해묵은 관행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철저히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와 밀실 행정으로 점철됐던 축구협회의 선임 방식 속에서, 이정효처럼 ‘라인’ 없는 지도자는 감히 기회를 넘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협회의 무능과 구태가 바닥을 드러낸 지금, 축구팬들이 철저한 실력파인 그를 연호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실제로 이정효는 현대적인 전술 트렌드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이를 피치 위에 구현하며, 선수와 팀이 함께 성장하는 모델을 증명해 냈다. 거침없는 언사와 벤치에서의 과감한 액션은 연일 화제를 모았고, 유튜브와 저서 등을 통해 던진 그의 축구 철학은 고착화된 한국 축구의 병폐를 날카롭게 까발렸다.

이제는 전설이 된 사진. 2025년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질의에서 정몽규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홍명보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오른쪽은 이임생 당시 . / 뉴시스
이제는 전설이 된 사진. 2025년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질의에서 정몽규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홍명보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오른쪽은 이임생 당시 . / 뉴시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결정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이정효라는 시대의 혁신가를 단지 그라운드 위에서 전술을 짜는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에 국한하는 것이 한국 축구를 위한 최선의 선택일까?

현재 한국 축구는 대표팀 지휘봉뿐만 아니라 협회의 수장마저 공석인 전례 없는 리더십 공백 상태다. 수십 년간 '그 나물에 그 밥'인 인물들이 자리를 바꾸어가며 카르텔을 유지해 온 상황에서, 단순히 대표팀 감독 한 명 바꾼다고 한국 축구가 혁신될 리 만무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판 자체를 새로 짤 수 있는 행정의 리더다.

이정효 감독은 평소 "선수 한 명은 팀을 바꿀 수 없지만, 감독 한 명은 팀과 리그를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그의 이 지론은 이제 팀을 넘어 '축구 행정'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는 선수 경험이 없는 자신의 전술분석관에게 지도자 커리어를 권유할 만큼 편견이 없고 열린 마인드를 가졌다. 이처럼 철저하게 소비자인 팬을 존중하고, 산업적 가치를 이해하며, 혈연·학연을 떠나 능력 있는 자에게 과감히 기회를 주는 행정가가 협회의 키를 잡아야 축구계의 낡은 카르텔을 뿌리째 뽑아낼 수 있다.

지난 2월 정해성 당시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축구회관에서 3차 전력강화위원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더팩트DB
지난 2월 정해성 당시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축구회관에서 3차 전력강화위원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더팩트DB

그런 점에서 평소 이정효가 보여준 사명의식은 과거에 고여 있는 축구협회 행정의 수장에게 가장 시급히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이다. 그는 줄곧 "축구는 축구인들만의 것이 아니며, 가장 중요한 존재는 비용을 지불하는 고객(축구팬)"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특히 "축구인들을 만족시켜서는 축구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 비축구인을 만족시켜야 한다. 눈높이가 높아진 팬들은 맨날 프리미어리그를 보며 우리보다 더 높은 수준의 경기를 탐닉한다. 비축구인이지만 이미 축구 전문가인 그들을 만족시켜야만 비로소 산업이 된다"는 그의 통찰은 지도자 개인의 철학을 넘어, 협회 수장이 지녀야 할 거시적인 '축구 산업론'이자 행정적 패러다임이다.

그동안 대기업 총수라는 이유로, 혹은 올드 스타 출신이라는 이유로 협회 요직을 독식하며 '회전문 인사'로 그들만의 밥그릇 지키기와 권위주의 행정에 몰두해 온 현 축구협회 지도부에게 이보다 더 강력한 처방전은 없다. 축구협회도 이제 과거의 경력과 이력만 쳐다보는 '인선 놀음'과 인맥 카르텔을 완전히 끊어내야 한다. 데이터와 실력을 기반으로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행정 선진화가 시급하다.

수원 삼성의 '명가 재건'을 이끌고 있는 이정효 감독이 28일 용인FC와 '하나은행 K리그2 2026' 5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전반 4분 페신의 선제골 순간 두 팔을 번쩍 들어 기뻐하고 있다. 수원은 이날 1-0 승리로 9년 만에 5연승을 기록했다./용인=K리그
수원 삼성의 '명가 재건'을 이끌고 있는 이정효 감독이 28일 용인FC와 '하나은행 K리그2 2026' 5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전반 4분 페신의 선제골 순간 두 팔을 번쩍 들어 기뻐하고 있다. 수원은 이날 1-0 승리로 9년 만에 5연승을 기록했다./용인=K리그

우리가 지향해야 할 롤모델은 명확하다. 바로 대한양궁협회의 선진화된 시스템이다. 과거의 명성이나 이력은 완벽히 지운 채, 철저히 당해 연도의 데이터와 실력 중심의 공정한 평가 시스템만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투명함이 양궁을 세계 최강으로 만들었다. 과거의 금메달 개수가 몇 개든 상관없이 신인들과 똑같은 출발선에 서야 하는 공정함, 그리고 스포츠 과학을 가장 먼저 도입해 세계 트렌드를 선도하는 과감함. 지금 축구협회 행정에 가장 결여된 역량들이 바로 여기에 있고, 이를 실행할 결단력을 가진 인물이 필요하다. 그동안 파격과 소신 행보를 이어온 이정효야말로, 이 해묵은 과제를 눈치 보지 않고 과감히 실행해낼 적임자가 아닐까.

물론 행정가나 수장의 길은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정효 감독 역시 한국 축구의 해묵은 폐해를 바로잡고 의미 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것에 진정한 가치를 느낀다면, 이 거대한 도전은 충분히 걸어볼 만한 길이다.

이정효는 단순한 전술가가 아니다.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독보적인 개혁가다. 그를 단발성으로 소모되기 쉬운 대표팀 감독 자리에 앉혀 수많은 리스크를 짊어지게 하기보다, 축구협회의 행정 수장이나 기술 총괄로서 판 자체를 새로 짜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가 심어놓은 공정과 혁신의 시스템 속에서 제2, 제3의 이정효가 끊임없이 수혈될 수 있는 건강한 조직을 만드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축구 자산을 가장 가치 있게 쓰는 길이다. 이정효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이제는 경기장이 아닌 '행정의 최전선'에 세우는 상상을 시작해야 할 때다.

수원 삼성의 '명가 재건'을 이끌고 있는 이정효 감독이 28일 용인FC와 '하나은행 K리그2 2026' 5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전반 4분 페신의 선제골 순간 두 팔을 번쩍 들어 기뻐하고 있다. 수원은 이날 1-0 승리로 9년 만에 5연승을 기록했다./용인=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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