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약세, 기업 비용·운전자금 부담↑…직접 효과보다 간접·2차 파급 중시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고착되면서 고환율 장기화가 한국 경제에 미칠 충격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거 원화 약세는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호재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수입물가와 기업 비용을 끌어올리고 외국인 투자자의 환차손과 자금 이탈을 자극하는 금융불안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현재의 고환율은 외화유동성 경색이 핵심이었던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성격이 다르다. 경상수지 흑자와 양호한 외화유동성에도 해외투자 확대와 기업의 달러 보유, 외국인 포트폴리오 조정, 역외시장 포지션이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팩트>는 세 차례에 걸쳐 원화 약세의 구조적 원인과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의 통화정책 철학, 외환당국의 대응 전략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더팩트 | 김태환 기자] 원화 약세를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호재로만 보던 전통적인 환율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원화 가치 하락은 수출기업의 달러 가격 인하 여력이나 원화 환산 수익성을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수입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 기업의 외화부채와 운전자금 부담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의 기존 연구와 최근 발언을 종합하면 그는 환율을 단순한 수출가격 변수가 아니라 기업과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 위험선호와 신용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금융변수로 바라보는 것으로 해석된다. 금융기관이 시장 충격에 대응해 레버리지와 대출을 줄이면 원화 약세의 수출 증대 효과가 금융긴축으로 상쇄될 수 있다는 것이 신 총재의 연구에서 읽히는 핵심 문제의식이다.
◆ 위험 커지면 빚·대출 함께 줄여…환율 충격 증폭하는 금융기관
1일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 자료를 종합하면 신 총재가 강조해온 환율의 금융경로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토비아스 아드리안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자본시장국장과 함께 연구한 '경기순응적 레버리지'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금융기관이 경기와 자산가격의 움직임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대차대조표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금융사이클의 진폭을 키울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자산가격이 오르고 시장 변동성이 낮아지면 금융기관이 측정하는 위험도 낮아져 차입과 자산, 대출을 확대한다. 반대로 자산가격이 떨어지고 변동성이 커지면 위험한도와 자본규제를 맞추기 위해 자산을 팔고 레버리지와 신용공급을 줄인다.
여러 금융기관이 동시에 위험 축소에 나서면 최초의 충격보다 더 큰 자산가격 하락과 신용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자산 매각이 가격과 담보가치를 떨어뜨리고 기업의 재무상태를 악화시키면 금융기관이 다시 대출과 위험자산을 줄이는 자기강화적 흐름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신 총재와 아드리안 국장의 연구는 금융기관의 자산 확대와 축소가 자기자본보다 부채의 증감과 밀접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대차대조표 관점을 환율에 적용하면 원화 약세는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달러 등 외화로 자금을 조달한 기업은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원화로 환산한 부채와 이자 부담이 커진다. 수입 원자재와 중간재, 에너지와 운임 가격도 올라 같은 생산량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운전자금이 늘어난다.
신 총재는 최근 금융시장을 평가할 때도 위험선호와 위험감수 능력을 중시하는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6월 17일 ‘2026년 상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시장가격은 당시의 위험선호도와 위험감수 능력에 따라 크게 움직인다며 하루 단위의 금융시장 움직임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기초여건과 충격의 중장기 파급 경로를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고유가와 고환율이 겹친 비용 압력도 나타나고 있다. 신 총재는 당시 설명회에서 국제유가 상승과 원화 약세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원화 기준 유가가 약 24% 올랐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를 분석한 결과 유가 충격이 공업제품과 서비스 가격에 가장 크게 반영되기까지 약 14~18개월이 걸렸으며, 간접 효과의 기여도는 당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약 20%에 달했다. 유가와 환율이 단기간 안정되더라도 기업의 원재료 매입비와 생산·유통비, 운전자금 부담은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질 때 외부 자금조달 여건도 함께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는 제조기업은 중간재 재고와 매출채권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운전자금이 필요하다. 달러가 강해지고 글로벌 은행이 위험을 줄이면 신흥국에 대한 달러 대출과 기업의 운전자금·무역금융 공급도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 신 총재가 참여한 관련 연구의 설명이다. BIS는 달러 강세로 차주의 재무상태가 나빠지면 글로벌 금융기관이 대출을 줄이고 가산금리를 높이는 환율의 금융경로가 작동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기업의 충격 흡수 능력도 고르지 않다. 올해 1분기 말 금융기관 기업대출은 1974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8% 증가했지만, 연체율은 2.43%로 장기 평균인 1.62%를 웃돌았다. 은행권 기업대출 연체율은 0.68%, 비은행권은 6.14%로 집계됐다. 다만 업권별로 연체를 인정하는 기준 등에 차이가 있어 수치를 단순 비교하는 데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은 2024년 -0.7배에서 지난해 -0.4배로 개선됐지만 여전히 마이너스 상태를 지속했다. 이자보상배율이 1배를 밑도는 취약기업의 비중도 41.6%에 달했다. 고환율로 원가와 운전자금 수요가 늘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기업부터 충격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 "직접 효과보다 2차 파급 중요"…환율 충격의 경로 본다
신 총재의 통화정책 철학은 환율 충격이 경제 내부에서 증폭되는 경로를 살피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환율이나 국제유가가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금리를 인상하기보다 해당 충격이 기업의 비용과 가격 결정, 근원물가와 기대인플레이션으로 어떻게 확산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 총재는 지난 6월 17일 설명회에서 원화 약세와 달러 강세가 달러로 거래되는 국제유가 상승을 증폭시키는 '이중 효과'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휘발유와 유류할증료 등이 오르는 직접 효과보다 원가 상승이 가치사슬을 따라 공업제품과 서비스 가격으로 전이되는 간접 효과와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2차 파급 효과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신 총재가 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원칙과도 연결된다. 그는 공급충격이 장기적인 물가 상승으로 전환됐는지를 판단할 때 "얼마나 지속되느냐보다도 어떤 징후가 나타나느냐가 중요하다"며 "2차 파급효과가 나오는지, 근원물가에 반영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준금리는 환율 1400원이나 1500원 등 특정 수준을 직접 방어하는 수단이라기보다 고환율이 근원물가와 기대인플레이션, 금융안정으로 번지는 파급에 대응하는 수단에 가깝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신 총재가 금리와 환율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통화량 지표인 M2보다 금리차가 환율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한국은 역외선물환시장의 영향이 크고 선물환 거래 역시 금리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설명했다.
환율은 통화정책에서 배제할 수 없는 금융안정 변수지만 구조적인 원화 약세를 기준금리 하나로 해소할 수도 없다는 것이 신 총재의 입장에 가깝다. 기준금리는 경제 전반에 영향을 주는 만큼 환율을 낮추기 위해 과도하게 올리면 내수와 기업대출, 취약차주의 부담까지 함께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 총재는 인사청문회에서 "통화정책만으로는 가계부채를 제어할 수 없다"며 "가계부채나 특정 부문에 대해서는 거시건전성 정책을 쓰는 것이 맞고, DSR도 그 일환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DSR 정책 하나만으로는 부족하고 여러 정책을 통합해서 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등 대형 기관이 국내 외환시장에서 집중적으로 달러를 조달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제안에도 "방법론에 충분히 공감한다"고 답했다. 외환시장 개방에 대해서는 "자유화와 거시건전성 안정성은 같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환율의 물가 파급에는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되 해외투자 확대와 기관의 달러 수요, 역외 NDF 거래와 제한적인 원화시장 유동성 등 구조적 문제에는 외환수급 조치와 거시건전성 정책, 시장구조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신 총재는 고환율을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지난 6월 17일 설명회에서도 신 총재는 "원화 환율이 약세로 돌아가면 특히 유가 상승을 증폭시키는 역할이 있다"며 "직접 효과보다 간접 효과와 2차 파급 효과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물가 압력이 기업의 가격 결정과 기대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쳐 악순환으로 이어질 경우 "그때는 정말 통화정책이 너무 늦었다고 할 수 있는 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kimth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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