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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참사' 멍든 한국축구, '이민성호'도 위험하다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협회 전력강화위 무책임 행정, 한국축구 암흑기로 내몰아
2026 아시안게임 대표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방치할 것인가


한국의 23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이민성 감독(오른쪽)은 지난 1월 베트남과 2026 AFC U23 아시안컵 3~4위전에서 승부차기 패배를 당해 4위에 머문 뒤 기자회견에서 상황대처가 부족한 점을 아쉬워했다. /제다(사우디아라비아)=KFA
한국의 23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이민성 감독(오른쪽)은 지난 1월 베트남과 2026 AFC U23 아시안컵 3~4위전에서 승부차기 패배를 당해 4위에 머문 뒤 기자회견에서 상황대처가 부족한 점을 아쉬워했다. /제다(사우디아라비아)=KFA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한국 축구에 또 다른 위기가 엄습하고 있다. 사실 이 암흑기의 서막은 2년 전 벌써 시작됐다. 2024년 아시안컵에서 인도네시아에 덜미를 잡혀 파리 올림픽 진출권 획득에 실패하며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 무대가 좌절됐을 때, 우리는 그것이 바닥인 줄 알았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 받아 든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는 한국 축구가 현대 축구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했을 때 어떤 파국을 맞이하는지 똑똑히 증명해 보였다. 그리고 이제, 그보다 더 깊고 어두운 수렁으로 끌려 들어갈지도 모를 마지막 카운트다운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다.

또 다른 시한폭탄이 어김없이 초침을 옮기고 있다. 온갖 비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성인 대표팀의 그늘에 교묘하게 가려져, 대중의 관심 밖에서 소리 없이 위기를 키워가고 있는 U-23 아시안게임 대표팀, 즉 ‘이민성호’ 얘기다.

이민성 감독이 이끄는 한국 U23 대표팀이 지난 1월 '김상식 매직'의 베트남과 2026 AFC U23 아시안컵 3~4위전에서 연장까지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승부차기에서 6-1로 져 4위를 기록했다./제다(사우디아라비아)=KFA
이민성 감독이 이끄는 한국 U23 대표팀이 지난 1월 '김상식 매직'의 베트남과 2026 AFC U23 아시안컵 3~4위전에서 연장까지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승부차기에서 6-1로 져 4위를 기록했다./제다(사우디아라비아)=KFA

◆ 성인 대표팀 그늘에 숨은 시한폭탄 – 길 잃은 벤치, 방치된 호화 인재 풀

현재 현장과 축구팬들 사이에서 흐르는 위기감은 심각하다. 단순히 몇 경기의 패배가 문제가 아니다. 23세 이하 연령별 대표팀이 보여주고 있는 전술적 경직성과 경기력 기복은 대회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도 전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축구 체급 자체가 몇 수 아래인 팀들을 상대로 한 예선 경기를 제외하면, 향후 아시안게임 본선에서 경쟁해야 할 아시아 상위권 팀들과는 전술적 대응과 공수 밸런스에서 아예 중심을 잡지 못하는 졸전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지휘봉을 잡은 사령탑의 전술적 역량과 자질에 의문부호가 붙은 지는 이미 오래됐다. 약체 중국과 키르기스스탄을 상대로 납득하기 힘든 경기를 펼치고, 사우디아라비아 등에는 큰 점수차로 대패하는 등 현대 축구의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하는 정체된 전술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9월 열리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은 현 체제의 마지막 도전이 될 전망이지만, 지금의 경기력이라면 금메달은커녕 역대 최악의 연령별 대표팀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선수풀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이 연령대는 2023 FIFA U-20 월드컵에서 4강 진출을 이뤄낸 '김은중호' 멤버들이 주축이 된 2003~2004년생 세대다. 전북현대 강상윤 등 K리그는 물론, A대표팀 급 자원인 배준호, 김지수, 이현주 등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 유망주들이 즐비한 역대급 인재풀을 자랑한다. 선수들의 개인 기량과 체급으로 겨우 버텨온 팀이지만, 현대 축구의 빠른 공수 전환과 디테일한 빌드업 전술이 가미되지 않으면서 이 호화 멤버들을 두고도 아시아 무대에서조차 고전을 면치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024년 2월 당시 정해성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축구회관에서 3차 전력강화위원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민성 감독의 선임 2025년 현영민 위원장 체제에서 이뤄졌다./더팩트DB
2024년 2월 당시 정해성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축구회관에서 3차 전력강화위원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민성 감독의 선임 2025년 현영민 위원장 체제에서 이뤄졌다./더팩트DB

◆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의 비겁한 행정 편의주의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한축구협회(KFA)의 비겁한 행정이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이미 올해 초 아시안컵에서 베트남에 패해 4위에 그치는 등 아시아 무대에서 수차례 경고등이 켜졌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협회 전력강화위원회는 뒤늦게 ‘자칭’ 심층 리뷰를 통해 대표팀이 보여준 모습이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공식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결론은 황당한 유임이었다. 위원회는 "새로운 체제보다 지금까지 과정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시안게임 금메달 목표 달성에 적합하다"라며 유임의 명분으로 '연속성'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현 체제의 전술적 한계를 눈으로 확인하고도 당장의 책임을 뒤로 미룬,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이자 책임 미루기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지도자의 역량 부족과 한계를 절감했다면, 대회를 앞두고 있더라도 과감하게 사령탑을 허물고 대안을 찾는 결단이 옳았다. 겉으로는 심층 리뷰를 외치면서도 정작 인적 쇄신이라는 본질은 외면한 채, '대회 직전 체제 유지'라는 안전한 선택지 뒤로 숨어버린 협회의 태도는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뻔히 보이는 위기 앞에서 면피용 명분만 앞세우는 행태, 이것이야말로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책임 회피다.

물론 대회가 당장 두 달여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사령탑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극단적인 처방이며 리스크가 크다. 선수단의 혼란과 조직력 와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분명히 일리가 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시간이 없으니 일단 믿고 밀어주자’는 논리가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불과 며칠 전 성인 대표팀의 잔혹사를 통해, 대안이 없다는 핑계로 전술 부재를 방치했을 때 어떤 참혹한 대가를 치르는 지 뼈저리게 학습했다. 파국이 뻔히 예견된 길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눈감고 걸어 들어가는 것 역시 축구계의 심각한 직무유기이자 한국 축구의 미래를 담보로 한 무책임한 도박이다.

2023년 10월 중국 항저우 황룽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선수들이 시상식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항저우(중국)=뉴시스
2023년 10월 중국 항저우 황룽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선수들이 시상식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항저우(중국)=뉴시스

◆ 한국축구에 아시안게임이 지닌 무게감

협회는 이번 아시안게임이 가진 무게감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 과거 한국 축구는 2002 한일 월드컵 4강을 시작으로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그리고 아시안게임 3연속 우승이라는 유산을 통해 유망주들의 병역 족쇄를 풀어왔다. 이 ‘유럽 진출 파이프라인’이 굳건히 유지되었기에 박지성, 손흥민을 거쳐 지금의 황금 세대들이 유럽 커리어를 안정적으로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번 대회에서 고배를 마신다면, 현재 유럽 리그에서 한국 축구의 미래로 분류되는 10명 이상의 핵심 유망주들이 커리어 정점에서 대거 국내로 복귀해야 하는 사상 초유의 '인재풀 경력 단절'이 현실화 된다. 한국 축구의 젖줄이 통째로 마르고, 향후 10년 이상 한국 축구를 침체기로 밀어 넣을 도미노 효과의 시작점이 될 게 뻔하다.

홍명보 감독의 사례에서 봤듯이 그동안 한국 축구는 지도자를 선임할 때 현대 축구 트렌드에 대한 연구나 전술적 역량 검증보다, 과거 선수 시절의 이름값과 명성에 의존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을 반복해 왔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라는 후광이 현대 축구의 정교한 전술적 해킹 능력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매번 확인하고도 소 잃고 외양간조차 고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지도자를 판별할 안목조차 보여주지 못하는 전력강화위원회 시스템부터가 개혁 대상이다.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엄격한 경기력 리뷰를 통해 전술 코칭스태프를 보강하거나 기술적 안전장치라도 수혈해야 한다. 성인 대표팀의 어수선한 틈을 타 아무런 피드백 없이 방치해온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항로를 지금이라도 점검하길 바란다. 대참사가 눈앞에 닥친 뒤에 책임을 물어봐야 그때는 이미 한국 축구의 미래가 증발한 뒤일 것이다.

2023년 10월 중국 항저우 황룽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선수들이 시상식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항저우(중국)=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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