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순규의 창] 결국 ‘기적의 요행’을 바라던 한국 축구의 실낱같은 기대는 차디찬 현실 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28일 콩고민주공화국이 우즈베키스탄을 3-1로 제압함과 동시에,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행 경우의 수는 완전히 소멸했다. 1승 2패,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는 참가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난 무대에서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지키지 못한 한국 축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번 조기 퇴장은 일시적인 전술 실패나 특정 선수의 부진이 빚어낸 우연이 아니다. 지도자 선임 과정에서 보여준 밀실 행정의 독단성, 현대 축구의 흐름을 쫓지 못한 전술적 무능, 위기 상황에서의 무기력한 대처, 그리고 늘 책임의 깃털만 날려 보내던 축구협회의 고질적인 수뇌부 카르텔이 본선이라는 가장 거대한 무대에서 일시에 폭발한 필연적 파국이다. 타국의 경기 결과에 운명을 맡긴 채 생존을 구걸하던 비신사적인 풍경은 이미 한국 축구 행정의 총체적 파산을 예고하고 있었다.
정몽규 회장이 사퇴 의사를 표명하고, 홍명보 감독 역시 매서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며 불명예 퇴진의 기로에 섰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시급히 복기해야 할 본질은 패장(敗將) 한 명의 거취나 인적 교체라는 미봉책이 아니다. 무너진 한국 축구의 기둥을 밑바닥부터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에 대한 처절한 제도적 고찰이다.

축구계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박지성, 이영표 등 ‘2002 한일월드컵 세대’를 소방수로 등판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냉정한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이번 월드컵을 실패로 매듭지은 홍명보 감독 또한 2002년 4강 신화의 상징이자 좌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 축구의 재건이 단순히 ‘어느 황금 세대의 귀환이냐’라는 인물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방증이다. 과거의 명성과 사적 인연에 기대어 또 다른 카르텔을 형성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미래를 도모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름값이 아닌,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전문성과 행정적 책임 윤리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웃 나라 일본축구협회(JFA)의 과감한 체질 개선은 우리에게 뼈아픈 이정표를 던진다. 일본은 2000년대 대표팀의 핵심 주장 출신이자 국제적 감각을 지닌 40대의 미야모토 쓰네야스를 수장으로 앉히며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학연과 지연의 낡은 관습을 과감히 도려낸 일본은 유소년 육성부터 성인 대표팀까지 일관되게 관통하는 기술 철학과 데이터 중심의 과학적 행정 시스템을 바탕으로 세계 축구의 주류로 안착했다. 사령탑의 이름값에만 목을 매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투명한 행정 프로세스 위에서 젊은 리더의 진정성을 엔진 삼아 미래의 청사진을 실현하고 있다.

중국 당나라의 문장가 한유(韓愈)는 저서 '잡설(雜說)'에서 "세상에 백락(伯樂·말을 알아보는 감정가)이 있은 후에야 천리마가 있다"고 짚었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이라는 역대 최고 수준의 '천리마'들을 품고도, 전술적 빈곤 속에서 고작 "나가서 싸워라"라는 투지만을 강요했던 한국 축구의 비극은 천리마를 다룰 줄 모르는 지도부의 무지와 무능을 증명할 뿐이다.
이제 한국 축구는 환골탈태(換骨奪胎)의 심정으로 인적 쇄신과 제도 개혁의 칼을 동시에 빼 들어야 한다. 사람의 이름표만 바꾸고 낡은 관행의 토대를 그대로 둔다면 참사의 역사는 복사판처럼 되풀이될 것이다. 과학적 분석력과 글로벌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실력 있는 ‘신진 세대’가 행정의 중심에 전면 배치되어야 한다. 대표팀과 협회의 자리는 사적 보은이나 명예의 전유물이 아닌, 오직 투명한 데이터와 철저한 검증 위에서 작동하는 엄격한 공공재여야 한다. 폐허 위에 임시방편의 천막을 칠 것인가, 세대를 이어갈 견고한 집을 지을 것인가. 한국 축구의 미래는 오직 구조를 바꾸는 ‘진정성 있는 리더십’의 수혈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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