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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 인천시장 당선인이 걸어온 길
용현동에서 태어나 중장년 되면서 정치 입문
3선 국회의원·원내대표·당대표 직무대행 역임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앞장 


4일 박찬대 후보가 인천시장 당선이 확정된 뒤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박찬대 후보 선거캠프
4일 박찬대 후보가 인천시장 당선이 확정된 뒤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박찬대 후보 선거캠프

[더팩트ㅣ인천= 김재경 기자]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인천시장 당선인은 1966년 인천 남구 용현동의 일명 '히다찌(日立) 마을'에서 태어났다.

히다찌 마을은 가난한 노동자들과 피난민들이 모여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살아가던 판자촌으로 현재는 인하대학교 캠퍼스가 들어선 자리다.

박찬대 당선인의 친증조부인 손암 박규양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과 함께 서산 김흥락 선생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로 두 사람은 석주 선생이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나기 전까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뜻을 함께하는 동지다.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가문에서 태어난 박 당선인은 일곱 식구의 대가족, 가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 집 주변 사찰의 도움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고, 학창시절에는 교회의 보살핌 속에서 정서적 안정을 얻었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차비조차 없어 막막했던 그에게 길을 열어준 곳은 자신이 태어난 판자촌 터에 세워진 인하대학교였다.

4년 전액 장학생(정석장학생)으로 입학해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무사히 경영학과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스승의 이끎과 이름 모를 동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사회적 안전망이 판자촌 소년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준 것이다.

군 복무를 마친 후 박찬대 당선인은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20대의 끝자락인 1997년 한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고, 1999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까지 합격했다.

그는 세계 최대의 컨설팅 펌 프라이스워터하우스의 멤버 펌인 세동회 계법인과 삼일회계법인 국제부에서 근무하며 역량을 입증했다. 금융감 독원 공시 및 회계감독국으로 자리를 옮겨 거시경제와 자산시장의 제도를 철저하게 감시했다. 이후 직접 한미회계법인을 창업하여 부대표 의 자리까지 오르며 성공적인 사업가로 안착했다

당시 그는 성실히 납세의 의무를 다하고 내 울타리의 안녕을 책임지는 평범하고 안온한 생활인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자신의 비즈니스와 가족의 평온을 지키는 것에 만족하던 시절이었다.

그 안온했던 세계관에 균열이 생긴 것은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 순간이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열성적인 지지자도 아니었고, 정치인을 향한 세상의 조롱을 묵묵히 지켜보던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러나 비보를 들은 순간, 자신의 무심함과 방관이 대통령님을 벼랑 끝으로 내몬것은 아닐까 하는 무거운 자책감이 밀려 왔다고 한다.

4일 박찬대 후보가 선거사무소에서 인천시장 당선이 확정된 뒤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박찬댗후보 선거캠프
4일 박찬대 후보가 선거사무소에서 인천시장 당선이 확정된 뒤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박찬댗후보 선거캠프

그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란 노무현 대통령의 유훈을 되뇌며 자신이 세상에 진 빚을 각성했다.

인천 지역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연대의 벅찬 희열을 배웠던 박 당선인은 시민사회의 훌륭한 대안도 행정가와 정치인의 권한 앞에서는 서랍 속 서류로 끝나는 한계를 마주했다. 공동체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책임 있는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함을 절감했다.

이에 따라 박 당선인은 2012년 1월 3일 민주당에 입당 제19대 총선 남구 을에 도전장을 던졌으나 당의 우선 공천 원칙에 따라 출마가 좌절됐다.

이후 2016년 제20대 총선 당시 연수구갑에 출마해 국민의당 창당으로 인한 야권 분열의 불리한 구도 속에서도 불과 214표 차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연수구에서 민주당이 거둔 역사상 최초의 승리를 얻은 박 당선인은 21대와 22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돼 3선 국회의원이 됐다.

박 당선인은 22대 국회에서 원내대표로 선출돼 당의 핵심 과제를 이끌었다.

특히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때 동료 의원들과 함께 국회 담장을 넘어 의사당으로 진입했다. 무장 군인의 위협 속에서도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대표발의해 가결시켰고, 이어진 '탄핵소추안' 발의를 통해 헌정 질서를 굳건히 지켜냈다.

탄핵 이후 이어진 21대 대선 과정에서는 원내대표 겸 당대표 직무대행과 상임총 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현장을 누비며 이재명 대통령 당선을 이끌었다.

박찬대 당선인은 지난 4월 29일 3선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인천시장 후보로 새로운 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출마 선언을 통해 인천의 도약을 이끌 새로운 설계, 'ABC+E' 전략을 발표했다.

박 당선인은 이 전략을 바탕으로 2030년까지 인천시민의 평균 연봉을 전국 5위 수준인 5500만 원으로 확실하게 끌어올리는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 낸다는 목표를 세웠다.

박 당선인은 이 공약 실현 위해서는 이재명 정부의 지원이 절대적이라며 이재명 정부와 인천을 가장 긴밀하게 연결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박 당선인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예비후보 시절 수석대변인을 시작으로 비서실장, 최고위원 파트너, 원내대표로서 5년간 빈틈없이 국정을 논의해 온 사이를 강조하며 "내란의 밤, 국회에서 함께 민주주의를 지켜냈던 동지들이 지금 행정부의 핵심 참모와 국무위원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찬대 당선인은 "중앙정부와 인천시 사이에 신속하고 강력한 직통 통로가 열릴 것"이라며 "인천시민들이 모아준 소중한 지지를 굵직한 현안 해결과 막대한 국비지원이라는 성과로 분명하게 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용현초, 대건중, 인하대, 서울대 대학원 졸업, 한국과 미국에서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박찬대 당선인은 △세동회계법인 국제부(PW) △삼일회계법인 국제부(PWC) △금융감독원 회계감독국, 공시감독국 △한미회계법인 경인본부장 겸 부대표 △제20~22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또한 △2022년 더불어민주당 제1기 이재명 지도부 최고위원 △2024년 제2기 이재명 지도부 원내대표 △당대표 직무대행 △제21대 대통령 선거 선대위 상임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아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

infac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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