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무투표 당선만 80명
깜깜이 당선에 유권자 알 권리 박탈
견제 잃은 풀뿌리 민주주의 우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513명이라는 역대 최다 무투표 당선자가 쏟아졌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낡은 지역 구도 속에서 수백만 유권자는 후보를 검증할 기회를 잃었고, 천문학적 예산을 다룰 지역 일꾼들은 아무런 평가 없이 선출됐다. <더팩트>는 총 5편에 걸쳐 '선거 없는 당선'이 초래한 지역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한다. 무투표 당선의 실태부터 해외 주요국의 대응, 그리고 선거법에 묶인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현행 제도의 모순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광주=김수민·이태훈 기자] 6·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지난달 21일, 광주광역시 서구 유스퀘어(종합버스터미널) 앞 거리는 묘한 적막감으로 가득했다. 보통 선거철이라면 유세 차량과 선거운동원으로 북적이고, 귀를 울리는 선거 로고송이 거리를 메웠을 테지만 이날 현장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이따금 눈에 띄는 현수막은 교육감 후보의 것뿐, 시의원이나 구청장 후보를 알리는 현수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버스와 지하철에 부착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 독려 광고판만이 지금이 선거철임을 짐작게 할 뿐이었다.
터미널 인근에서 붕어빵을 파는 최모 씨는 "선거 느낌이 전혀 안 난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선거 운동으로 동네에 활기가 돌아야 사람도 모이는데 아쉽다"며 "광주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유리해 사실상 결과가 정해져 있다 해도, 누군가 나와서 경쟁하고 공약도 알리는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후보 등록 집계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 후보 등록 결과 무투표 당선이 결정된 기초단체장 후보는 전국을 통틀어 3명이다. 그 중 2명(김이강 광주 서구청장·김병내 광주 남구청장)이 광주에서 나왔다. 이들을 포함해 광주·전남 지역에서 발생한 무투표 당선자만 총 80명에 달하며, 특히 이 중 79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특정 정당의 지역 독점이 '선거 없는 당선'이라는 기형적 구조를 낳고 있는 셈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단독 출마로 경쟁자가 없는 선거구의 경우, 후보 등록이 끝나는 즉시 일체의 선거운동을 멈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네를 돌며 유세를 하거나 유권자 집으로 공보물을 보내는 것은 물론, SNS와 전화를 통한 지지 호소마저 전면 금지된다. 심지어 거리에 걸어두었던 홍보 현수막까지 거둬들여야 하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장 큰 피해는 유권자에게 돌아간다. 선거권 행사와 후보의 자질을 검증할 기회를 동시에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서구 구민 정모 씨는 "투표 한 번 못 해보고 구청장이 당선된 상황이 아쉽다"며 특정 정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보다는 견제 세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의당이나 진보당이 실질적인 대안 세력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당을 떠나 일 잘하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표를 던질 수 있다"고 말했다.
60대 한 택시 기사는 단독 출마로 선거가 마무리된 현실을 지적하며 "경쟁자가 없는 상황은 사실상 독재로 갈 위험이 크다. 권력을 견제할 라이벌 없이는 광주가 절대 발전할 수 없다"라며 "당적과 무관하게 제대로 된 공약을 들고 오는 후보가 있다면 표를 주겠다는 유권자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광주는 무조건 민주당'이라는 지역주의 공식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는 만큼, 지역을 위한 역량만 입증한다면 언제든 건강한 경쟁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무투표 당선의 반복은 유권자의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참여자치21 박재만 공동대표는 <더팩트>와 만나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광주가 전국 최하위 투표율을 기록했던 점을 언급하며 "유권자가 '내가 투표를 하든 안 하든 당선돼 버린다'고 느끼는 순간 정치에 대한 냉소가 깊어지고, 결국 정치를 외면하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이 고착화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더 큰 문제는 견제와 균형을 상실한 지방의회다. 박 대표는 "구청장부터 기초·광역의원까지 대부분 같은 당 소속이다 보니 집행부와 의회 간의 건전한 긴장감이 사라졌다"며 "30년 이상 이어진 특정 정당의 독점 체제가 오히려 행정 효율성과 지역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정치 신인이나 소수 유권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치 세력의 진입 자체가 원천 봉쇄된다는 점도 꼬집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소수정당의 현실은 가혹하다. 민주당 경선이 곧 본선인 구조 속에서, 경선이 끝나면 유권자들의 관심도 차갑게 식어버린다. 소수정당 후보들은 생업을 중단하고 출마하더라도 저조한 득표율로 인해 선거비용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며, 이는 후보 발굴의 어려움과 무투표 당선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굴레가 되고 있다.
정의당 광주시당 한 관계자는 "통합특별법을 통해 환경영향평가 축소나 농지 전용 개발 같은 막강한 중앙 권한이 특별시장에게 이양됨에도 이를 통제할 견제 장치가 없어 자의적 행정이 우려된다"며 "의회 내에서 단 한 명이라도 반대할 야당의 목소리마저 없어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해상풍력 발전이나 AI 데이터센터 구축 등 '밝은 청사진'만 내세울 뿐 그 이면에 뒤따르는 송전탑 건설이나 사막화 같은 농촌의 희생과 지역 불균형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만큼, 진보정당은 비록 의회 밖이라도 현장의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이들이 외면한 모순을 묻고 견제하는 '대중정당'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제도적 한계는 유권자뿐만 아니라 당선자들에게도 깊은 무력감과 답답함을 안긴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발이 묶여 유권자에게 자신의 정책과 공약을 알릴 최소한의 수단마저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2년 제8회 지방선거 당시, 광주 지역 무투표 당선인 12명은 "선거 운동 금지 규정이 선거운동의 자유와 유권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년 만에 청구를 각하 결정했다.
당시 헌법소원 청구를 주도했던 강수훈 광주시의원은 현행 제도의 모순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강 의원은 "애초에 제도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유권자들에게 투표장에 나오라고 독려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유권자에게는 누군가를 선택할 권리도 있지만, 반대로 누군가를 선택하지 않기 위해 투표장을 찾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무투표 당선이 확정됐다는 이유만으로 투표 용지에서 이름조차 지워지는 제도가 과연 맞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광주·전남 행정통합' 사례를 언급하며 지역 내 일당 독점의 명암을 짚었다. 그는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 의지와 광주시장, 전남지사, 광주시의원, 전남 도의원들이 다 민주당 소속이었기 때문에 행정통합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반면 민주당 당론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며 "정치에서 중요한 건 다양성과 다른 생각이며, 이를 통해 더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의 제도로는 그런 과정을 놓칠 수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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