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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구두 닦던 13세 사환' 윤용근, 국회의원 후보가 되다
'양동이에 남은 빵 한 개'…가슴에 불 지핀 사랑의 기억
"등록금 없어 교복 벗었던 소년…고향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서"


윤용근 국민의힘 공주·부여·청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가 26일 선거사무소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형중 기자
윤용근 국민의힘 공주·부여·청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가 26일 선거사무소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형중 기자

[더팩트ㅣ공주=김형중 기자] "용근아, 그 빵은 네 몫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윤용근 후보(국민의힘 공주·부여·청양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가슴에는 그 말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배고픔과 가난 속에서 처음으로 느낀 세상의 온기였다.

충남 부여군 장암면. 소작농 집안 8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난 윤 후보의 어린 시절은 혹독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집에는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겨울이면 찬바람이 스며드는 방바닥에서 몸을 웅크려야 했고, 끼니를 걱정하는 날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 가난 속에서도 소년은 유독 공부를 좋아했다.

윤 후보는 인터뷰 도중 잠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집은 너무 가난했지만 공부만큼은 정말 자신 있었습니다. 상장을 벽 한가득 붙여놓을 정도였죠. 배가 고파도 책을 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학교에서는 매일 곰보빵이 급식으로 나왔다. 하지만 급식비를 내지 못한 아이들에게 빵은 쉽게 손에 닿지 않는 음식이었다. 윤 후보 역시 늘 뒤에서 눈치를 보던 아이였다.

그런 소년을 지켜보던 담임교사는 어느 날 특별한 역할을 맡겼다.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일이었다.

신기하게도 빵을 모두 나눠주고 나면 양동이 바닥에는 늘 빵 하나가 남아 있었다.

어느 날 담임교사는 조용히 소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윤용근 후보가 최근 공주시 산성시장에서 열린 국민의힘 합동유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김형중 기자
윤용근 후보가 최근 공주시 산성시장에서 열린 국민의힘 합동유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김형중 기자

"용근아, 그 빵은 네가 먹어라."

윤 후보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단순히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아, 세상이 나를 버린 건 아니구나' 누군가 나를 챙겨주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 빵은 내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빵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등록금을 내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 선생님들이 돈을 모아 도왔지만 어린 윤용근에게 그것은 고마움보다 미안함으로 더 크게 다가왔다.

결국 그는 중학교 1학년도 마치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 열세 살이었다.

생계를 위해 찾은 곳은 부여 장암면사무소였다. 어린 윤용근은 서류 심부름부터 허드렛일까지 도맡는 '사환'으로 일했다.

첫 출근 날, 면장은 어린 소년에게 물었다.

"왜 학교를 그만뒀어?"

윤 후보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면장은 매일 아침 윤 후보를 불러 구두를 닦게 했다. 그리고 구두를 닦는 내내 같은 말을 반복했다.

"너는 여기 있을 애가 아니다. 다시 학교에 가야 한다."

소년 윤용근은 그 말이 가장 괴로웠다고 했다.

"공부는 너무 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밖으로 뛰쳐나가 울었습니다.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면장의 구두를 닦던 윤 후보에게 면장은 통장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학교 가라."

알고 보니 면장은 매일 구두를 닦게 하며 몰래 수고비를 모아 윤 후보 이름의 통장을 만들어두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이미 학교 측과 상의해 자퇴가 아닌 휴학 처리까지 해둔 상태였다.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윤용근 후보. /김형중 기자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윤용근 후보. /김형중 기자

윤 후보는 당시를 떠올리며 한동안 말을 멈췄다.

"통장을 받는데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세상이 무너진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다시 학교로 돌아간 소년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했다.

중학교에서는 반장과 학생회장을 맡았고 장학생으로 부여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새벽마다 신문을 돌리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매일 가슴이 뛰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주변의 도움은 이어졌다. 지역 교회의 목사와 장로, 권사들이 쌀을 가져다주고 학비를 보태주며 소년의 꿈을 지켜줬다.

윤 후보는 "나는 결국 고향 사람들의 사랑으로 자란 사람"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윤 후보의 삶 전체를 바꿨다.

그는 "누군가의 작은 손길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걸 직접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마음속 깊이 하나의 다짐을 품고 살아왔다고 했다.

"언젠가 반드시 나도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 되자."

국회의원 후보가 되어 다시 고향을 찾은 그는 인터뷰 말미에 주민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지금의 윤용근은 혼자 만들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배고팠던 소년을 고향 이웃들이 살려주셨습니다. 저는 가난이 얼마나 서러운지 압니다. 밥 한 끼가 얼마나 절실한지도 압니다."

이어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는 제가 그 사랑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누구도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는 세상, 소외된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정치를 만들겠습니다. 공주·부여·청양을 다시 희망이 살아나는 지역으로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tfcc202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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