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조된 스리백, '숫자의 함정'부터 깨라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결국 파격은 없었다. 홍명보 감독은 관리 가능하고 안전한 선수들을 선택했다. 경기장 안의 공기를 한순간에 바꿀 수 있는 ‘슈퍼 조커’ 이승우는 팬들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이번에도 외면당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을 26인의 최종 명단이 확정됐다. 이번 엔트리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수비수 10명, 미드필더 10명이라는 극단적인 '포지션 쏠림'이다. 전문 스트라이커에게는 단 3자리만 허락한 반면, 후방과 중원에는 전체 엔트리의 77%를 쏟아부었다. 화려한 공세 대신 ‘수비의 안정성’과 ‘중원의 통제력’에 방점을 찍겠다는 홍명보 감독의 실리주의적 선택이다. 올 시즌 K리그에서 강원 돌풍을 이끌며 주목을 끈 멀티 자원 이기혁 정도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깜짝 발탁은 없었다. 본선 무대 역시 특별한 전술적 모험 없이 기존 시스템이 그대로 이어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창의성과 활동량의 거부, 이승우·서재민 제외의 아쉬움
이번 최종 명단 발표에서 가장 이목을 끈 것은 K리그에서 폭발적인 드리블과 탈압박, 저돌적인 침투로 그라운드를 야성으로 물들이고 있는 이승우의 발탁 여부였다. 선수의 간절함과 눈부신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팬들의 기대도 높았다. 최근 홍명보호의 경기는 좌우로 공만 돌리다가 단조로운 크로스, 혹은 의미 없는 백패스로 이어지는 'U자형 빌드업'을 반복하다 흐름이 끊기고 역습을 당하는 장면이 잦았다. 이때 과감히 상대 진영을 허물며 전체 선수단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크랙형 선수, 즉 '창의적 게임 체인저'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하지만 홍 감독은 개성 있는 선수를 품기보다 기존의 시스템에 순응하고 관리하기 쉬운 선수들로 팀을 채우는 보수적인 선택을 내렸다.
또 하나 짙은 아쉬움을 남긴 자원은 인천의 중원 미드필더 서재민이다. K리그 활동량 1위를 기록하며 지난달 영플레이어상까지 수상한 그는 현재 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미드필더다. 뛰어난 탈압박과 볼 배급 능력을 갖춘 '두 개의 심장' 서재민이 가세했다면 대표팀 핵심 미드필더인 황인범의 부상 리스크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황인범과 함께 더블 볼란치를 형성할 경우 대표팀 경기의 고질병이었던 중원 붕괴를 메워줄 적임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해외 리그에만 안테나를 세운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시선은 끝내 K리그 최고의 엔진을 포착하지 못했다.

◆ 숫자의 우위가 무색한 방어선, 세부 역할 분담이 시급하다
변화보다 안정을 택한 실리의 중심에는 최종예선 막바지부터 도입된 ‘스리백’ 전술이 자리하고 있다. 본선에서도 이 시스템이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홍명보호의 스리백 전술은 최근 친선경기에서 심각한 구조적 결함을 노출했다. 스리백은 공격적 축구로 알려져 있으나 기실 홍명보호의 선택은 극단적 5백으로 수비지향의 축구를 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그럼에도 수비수의 수적 우위가 무색하게 본선 체급의 강팀들과의 매치업마다 무기력한 실점 패턴이 반복됐다. 지난해 10월 브라질에 5골을 내준 데 이어, 올해 3월 유럽 원정에서도 코트디부아르(0-4 패)와 오스트리아(0-1 패)를 상대로 다시금 공수 밸런스가 붕괴되며 완패를 당했다.
문제는 몰고 들어오는 상대를 강하게 제어하지 않고 포지션만 지키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다 보니, 상대에게 방해 없이 패스 길을 여럿 내주게 된다는 점이다. 배후 공간을 의식한 수비진이 수동적으로 라인을 물리는 과정에서는 중원과의 간격이 과도하게 벌어졌고, 이는 박스 정면 외곽의 제어력이 통째로 붕괴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박스 안 숫자는 우리가 더 많은데도 정작 공의 궤적에만 시선이 쏠려 등 뒤로 침투하는 공격수를 놓치는 구조적 균열도 자주 발생했다. 특히 취약한 측면의 수비벽이 허물어질 때 위험성은 배가됐다. 뚫린 측면을 메우기 위해 스리백의 스토퍼가 끌려 나가고 센터백들까지 도미노처럼 이동하면서 반대편 수비 구역이 텅 비어버리는 연쇄 동선 엉킴으로 이어지곤 했다. 포메이션의 형태보다 그 내부를 채우는 세부적인 역할 분담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 베이스캠프의 3주 속성과외? 일본 스리백 성공의 교훈, ‘공간을 압축하라’
대표팀은 18일 본진 출국을 시작으로 미국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3주간의 본선 담금질에 들어간다. 이 짧은 합숙 훈련 기간 동안 선수들과 급조된 스리백의 전술적 완성을 이뤄내야 한다. 홍 감독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는 바로 '압박의 타이밍'을 잡고 라인을 통제하는 것이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정교한 스리백의 예시는 이웃 나라 일본의 운영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은 스리백을 서더라도 수비 라인과 3선의 간격을 10~15m 내외로 극단적으로 좁혀 항상 촘촘한 수적 우위를 유지한다. 즉, 수비 라인이 배후 공간을 두려워해 마냥 뒤로 물러나지 않고 과감하게 전진해 블록을 유지하는 것이다. 볼이 있는 곳에 두세 명이 빠르게 압박을 가하고 유기적인 커버링으로 공간을 지배한다. 라인을 높여 생기는 배후 리스크는 골키퍼가 박스 밖까지 걸어 나와 '스위퍼' 역할을 수행하며 상쇄한다. 필드 플레이어들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전진 압박을 감행할 수 있도록 구조적 안전장치를 만든 셈이다.
결국 ‘스리백’의 본질은 숫자를 늘려 내려앉는 수동성이 아니라, 공간을 압축해 상대를 능동적으로 통제하는 유기성에 있다. 수비진이 주저앉지 않고 라인을 받쳐줘야만 중원이 압축되고, 전술의 밀도가 살아난다.

◆ 전방으로의 리스크 전가? 전술적 자살행위가 되지 않으려면
홍명보 감독은 최근 ‘월드컵 스카우팅리포트 2026’와의 인터뷰를 통해 점유율보다는 최대한 빠르게 공을 전방으로 투입하고 그 지역에서 싸우는 축구를 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후방에서 무리하게 공을 지키려다 압박에 걸려 위험을 초래하는 상황을 피하려는 의도다.
이것이 빌드업을 포기하고 길게 앞으로 차넣는 일방적인 롱볼 축구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유감이다. 빌드업은 단순 점유율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촘촘한 밀집 수비의 균열을 유도하고, 닫힌 공간을 열어 젖히며 전진해 골을 빚어내는 유기적인 과정을 일컫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롱볼 축구는 공중볼 경합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거나 흘러나온 세컨볼을 빼앗기는 순간, 곧바로 치명적인 수세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확률 낮은 축구'라는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후방 리스크를 전방으로 넘겨버리는 이 실리적인 선택은, 공 차단 시 중원에서 1차 저지선을 구축하고 세컨볼을 재탈취할 구조적 대책이 병행되지 않는 한 언제든 '전술적 자살행위'로 돌변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월드컵 본선은 실수를 가장 적게 하는 팀이 생존하는 냉혹한 무대다. 포메이션 칠판 위에 아라비아숫자를 적어두는 구조를 넘어, 상황별로 라인을 통제하고 공간을 압축하는 '디테일한 약속'이 채워져야만 홍명보호의 ‘10-10’ 엔트리는 비로소 본선 경쟁력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변화보다 안정을 택한 홍명보호가 과연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보낼 3주 동안, 그동안 미숙했던 전술적 디테일을 어느 정도나 빠르게 완성해낼 수 있을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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