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중개업자에게 진술 방향 지시도

[더팩트ㅣ설상미 기자] 김상민 전 부장검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항소심에서 1심 무죄 판단을 뒤집은 결정타는 문자 메시지였다. 재판부는 김 전 검사가 미술품 중개업자에게 보낸 "1.4억 올 캐쉬로" 등의 문자를 근거로 김 전 검사를 그림의 실구매자로 판단했다.
서울고법 형사6-2부(박정제 민달기 김종우 부장판사)는 지난 8일 김 전 검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했다. 김 전 검사는 김건희 여사에게 공천 청탁 명목으로 1억 4000만 원대의 이우환 화백 그림을 건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김 여사 오빠인 김진우 씨가 작품을 직접 구매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은 김 전 검사가 그림 대금을 부담하고 김 여사에게 전달한 것으로 판단해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은 여당 공천에 실질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며 "김 전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발령 직후 총선 출마를 준비면서 윤 전 대통령 부부에게 영향력을 기대하며 그림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같은 판단에는 김 전 검사가 미술품 중개업자 강모씨에게 보낸 문자가 결정적이었다.
17일 <더팩트>가 확보한 김 전 검사의 항소심 판결문에 따르면 김 전 검사는 2023년 1월 초 강 씨에게 "투자 가치가 있는 그림을 알아봐 달라"고 요청한 데 이어, 같은 달 14일에는 "응 살짝 한 번 물어봐줘", "말 안 나게", "괜히 또 여사님 그림 찾는다는 소문 나면 우리가 문제되니"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같은 달 20일에는 "이우환 선생 작품으로 하고 가격만 협상 가능한 선에서"라고 했고, 23일에는 "1.4b(억) 올 캐쉬로"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강씨 등이 김 전 검사를 실질적 구매자로 인식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김 전 검사가 강씨를 통해 그림을 1억4000만원에 매수하고 구매 대금을 지불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강씨의 진술 번복 경위에 납득할 만한 사정이 있어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씨의 진술 번복 배경에 김 전 검사의 부탁과 진술 방향 지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강씨는 특검 조사에서 김 전 검사가 "피고인이 실제 구매자가 아니고 피고인 뒤에 실제 구매한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진술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피고인의 부탁에 따라 피고인이 그림 매수자가 아님을 드러내기 위해 피고인이 (그림을 보고도) 설레어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 전 검사ㅇ "김 여사가 그림을 받고 엄청 좋아하셨다"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며 당시 경상도 사투리 억양까지 구체적으로 재현한 점에 주목했다. 강씨는 피고인 특유의 사투리 어감이 워낙 독특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김씨가 실제 구매자였다면 고가 미술품 매입 과정에서 구매 동기나 의사결정, 사후 관리 정황 등이 드러나야 하지만 그런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특히 1억4000만원 상당의 그림을 사들이면서 미술을 전공한 김 전 검사의 배우자와 별다른 상의나 조언을 거친 정황도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김씨의 그림 구매 자금 여력을 두고도 두 재판부는 엇갈린 판단을 내렸다.
앞서 1심은 김 전 검사 계좌에서 현금 인출 기록이 확인되지 않았고, 마이너스 통장 한도액도 3억원 중 2억9000만원까지 사용 중이었다며 그림 구매 자금 여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김 전 검사 가족이 재력가인 점 등을 고려할 때 1억4000만원 상당의 그림을 구매할 경제적 여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김 전 검사는 법정에서 "양가로부터 연간 5000만원에서 1억원 상당의 현금을 지원받는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김 전 검사가 14년 넘게 검사로 재직한 점 등을 들어 그림 구매 자금을 본인이나 직계가족 명의 계좌에서 직접 인출하는 방식으로 집행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핵심 쟁점이었던 그림의 진위 여부에 대해 진품으로 판단했다. 김 전 검사 측은 그림이 위작이므로 가액을 1억 4000만 원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그림의 실질 가치는 100만 원 미만으로 청탁금지법 위반이 아니라는 취지다.
하지만 재판부는 가품 가능성을 제기한 한국화랑협회 의견보다 UV 촬영 등 과학적 기법을 활용해 진품으로 판단한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의견의 신빙성이 더 높다고 봤다.
김 전 검사는 2023년 2월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김 여사 측에 1억 4000만 원대 이우환 화백의 그림 '점으로부터 No.800298'을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그림은 특검이 지난해 7월 김 여사의 친오빠 김진우 씨의 장모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발견됐다. 김 전 부장검사는 22대 총선 공천 심사에서 탈락했지만, 2024년 8월 국가정보원 법률특보로 임명됐다. 특검은 김 여사 측이 그림 대가로 김 전 부장검사의 공천과 국정원 법률특보 임명에 관여한 것으로 봤다.
김 전 부장검사 측은 지난 8일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에서는 그림이 김건희 여사에게 실제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청탁금지법 위반 성립 여부를 다툴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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