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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메리’는 어떻게 일상이 됐나...스포츠가 만든 '언어의 힘' [유병철의 스포츠 렉시오]
헤일 메리는 미식축구 용어
일상생활의 스포츠 관용어 ‘MZ세대’도 즐겨
‘스포츠식 은유’ 심신건강에 제격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일>의 한국판 포스터. '헤일 메리'는 미NFL에서 비롯된 관용어로 '기적을 바라는 최후의 시도'라는 의미다. 영화속 우주선의 이름이 '헤일메리' 호. 주인공은 성모송의 시작에 나오는 '그레이스(은총)'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일>의 한국판 포스터. '헤일 메리'는 미NFL에서 비롯된 관용어로 '기적을 바라는 최후의 시도'라는 의미다. 영화속 우주선의 이름이 '헤일메리' 호. 주인공은 성모송의 시작에 나오는 '그레이스(은총)'다.

[더팩트 l 유병철 전문기자] # 올해 84세가 된 로저 스타우벅은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스포츠 레전드로 유명합니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군인이자, NFL 스타플레이어입니다. 해사 시절인 1963년 네이비 미드십맨을 전국 2위로 이끌며 최고의 대학선수에게 주어지는 하인즈먼 트로피를 수상했죠. 당시 <타임>지의 표지 모델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졸업 후 임관해 베트남전쟁에도 참전했습니다. 해사 출신의 NBA스타로 유명한 데이비드 로빈슨보다 더한 ‘찐 군인’이었습니다. 27세의 늦은 나이에 프로에 데뷔한 그는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1차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슈퍼볼에서 2회 우승(72, 78년), 3회 준우승(71, 76, 79년)을 차지했죠. 1985년 NFL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은퇴한 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부동산회사를 운영해 NFL 출신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사업가가 됐습니다.

# 로저 스타우벅은 역사에 남는 스포츠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1975년 미네소타 바이킹스와의 플레이오프 때입니다. 10-14로 뒤지고 있던 경기 직전 댈러스의 스타우벅은 50야드 초장거리 역전 터치다운 패스를 성공시켰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스타우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마음을 비우고 성모송을 외우며 던졌다"고 밝혔습니다.

성모송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Hail Mary, full of grace)’로 시작하죠. ‘기적을 바라는 마지막 시도’의 뜻을 가진 ‘헤일메리’가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유명한 소설가 앤디 위어는 마션(2011년), 아르테미스(2017년)에 이어 자신의 SF소설 3부작의 마지막 편의 제목을 ‘프로젝트 헤일메리’(2021년)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봄 현재 헤일메리는 영화(프로젝트 헤일메리)로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책이 영화보다 스토리가 풍부하고, 감동이 진합니다).

로저 스타우벅을 표지모델로 내세운 미국 <타임>지(1963년 10월). 1975년 그가 연출한 '헤일 메리 패스'는 지금도 온라인상에 쉽게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로저 스타우벅을 표지모델로 내세운 미국 <타임>지(1963년 10월). 1975년 그가 연출한 '헤일 메리 패스'는 지금도 온라인상에 쉽게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헤일메리처럼 스포츠의 특별한 사건에서 유래한 관용어들이 있습니다. ‘그의 리즈 시절은...’ 식으로 사용되는 ‘리즈 시절’은 영국 프로축구팀 리즈 유나이티드(Leeds United)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팀이 화려한 전성기를 누리다가 급격히 추락하자 ‘한때 최고였던 시절’이 된 것입니다. 1986년 월드컵의 디에고 마라도나에서 비롯된 ‘신의 손(Hand of God)’은 국내에서 신기급의 손재주를 의미하지만, 영어권에서는 ‘논란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한 행동’으로 사용됩니다.

베이브 루스의 이적 후 생긴 ‘밤비노의 저주(Curse of the Bambino, 어떤 사건 이후의 불운)’, 1998년 NBA 파이널 때 나온 마이클 조던의 ‘플루 게임(Flu Game, 최악의 컨디션에서도 해내는 투혼) 등도 보편성을 획득했죠. 축구를 비롯해 일상에서도 많이 쓰이는 해트 트릭(Hat-trick)도 1858년 크리켓에서 한 선수가 연속으로 세 타자를 아웃시키자 모자를 선물한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한국에서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빠떼루(파테르, 레슬링)‘가 국민유행어가 된 바 있습니다.

# 특정 사건이 아닌 스포츠 용어에서 비롯된 관용어는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만루)홈런, 파울, 대타(핀치히터), 킥오프, 자책골, KO, FA(프리 에이전트), 포커페이스, 낙마, GG(굿게임, 항복선언) 등은 특정종목의 용어가 일상에 자리잡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돌직구, 먹튀, 뜬금포처럼 영어가 아닌 한국어에서 비롯된 스포츠 유래 관용어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젊은 세대의 스포츠 용어 활용법입니다. ‘저 둘은 티키타카가 잘 맞아’, "상대가 그린라이트 준 거 아냐?" ‘그 일은 00이 하드 캐리한 거야’ 등등. 축구에서 짧은 패스를 빠르게 주고받으며 상대의 빈틈을 공략하는 스페인식 전술 티키타카(Tiqui-taca, 원래는 탁구)는 ‘두 사람이 잘 통하여 빠르게 주고받는 대화’로 사용됩니다.

야구에서 감독의 주루사인인 그린라이트(선수 스스로 도루를 시도해도 된다는 사인)는 ‘호감신호(긍정적인 분위기)’로 자리 잡았습니다. E스포츠에서 비롯된 ‘캐리(Carry)’도 어려운 상황에서 대활약을 펼칠 때 널리 사용됩니다. 하드캐리, 캐리력(力) 등으로 확장되기도 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든 '커리 모드'에 대한 이미지. 이 말은 NBA의 역사를 바꾼 스테판 커리의 폭풍 3점슛을 빗대 '갑자기 미친 퍼포먼스'를 뜻한다. / 챗GPT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든 '커리 모드'에 대한 이미지. 이 말은 NBA의 역사를 바꾼 스테판 커리의 폭풍 3점슛을 빗대 '갑자기 미친 퍼포먼스'를 뜻한다. / 챗GPT

# MZ세대 사이에서는 스포츠의 고유명사나 선수이름에 ‘급’ ‘모드’ ‘각’ 등을 붙여 쓰는 게 최신 감각이라고 합니다. ‘FIFA 올해의 골’ 상에서 유래한 ‘푸스카스급’은 ‘와 이건 예술이다’ 정도의 의미입니다. '푸스카스상'은 헝가리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 페렌츠 푸스카스에서 따왔습니다. 메시 월드컵 모드’는 메시의 2022년 월드컵의 퍼포먼스에서 비롯됐는 집중력 최고, 각성 상태를 나타냅니다.

비슷하지만 더 널리 쓰이는 ‘커리 모드’는 NBA 역사를 바꾼 스테판 커리의 폭발적인 3점슛에 빗대 ‘갑자기 미친 퍼포먼스’와 연결됩니다. 가장 최근에는 ‘오타니급’, ‘페이커급’도 있습니다. 오타니의 투타 겸업, LOL의 이상혁처럼 ‘사기캐(사기캐릭터) 수준의 능력을 뜻하죠. ’조코비치 멘탈‘, ’르브론 블록‘도 쓰인다고 합니다.

# 이러한 스포츠용어의 일상화는 기본적으로 은유(隱喩 metaphor)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게 한 번 웃고 넘어가는 수준은 넘습니다. 은유는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사고력이 넓어지고, 창의성과 연결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탁월한 인간을 ‘은유하는 인간’이라 정의했습니다. ‘천재들의 생각을 훔칠 단 하나의 방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은유란 무엇인가(2023년)’는 ‘은유는 모든 창의성의 원천’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좀 어럽게 설명하면 개념적 표상과 회화적 표상이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는 메커니즘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직접 스포츠를 즐기고, 또 일상생활에서 스포츠용어를 적절하게 사용하면 몸도 마음도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스포츠를 통해 모두들 각 분야의 ‘노터블 플레이어(Notable Player, 골프중계에서 유래)’에 도전하면 좋겠습니다. 날씨도 좋고, 실내외 인기 프로종목이 모두 열리고 있는 요즘, 모두들 '스퍼트(육상)'합시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든 '커리 모드'에 대한 이미지. 이 말은 NBA의 역사를 바꾼 스테판 커리의 폭풍 3점슛을 빗대 '갑자기 미친 퍼포먼스'를 뜻한다. / 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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