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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짝사랑’ 이승우의 야성, ‘무채색’ 홍명보호는 응답할까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무채색' 대표팀에 필요한 붉은 야성, 경기장 공기를 바꿀 기폭제
과연 홍명보호는 이승호의 지독한 기다림에 응답할까


'한국의 메시' 이승우(오른쪽 두 번째)가 12일 오후 성남FC클럽하우스에서 진행된 홍명보호의 귀국 후 첫 훈련에 합류, 함박 웃음을 지으며 즐겁게 훈련을 하고 있다./KFA

누군가는 그를 '악동'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철부지 천재'라 불렀다. 하지만 2026년의 봄, 전주성에서 우리가 본 것은 그저 태극마크를 지독하게 짝사랑하는 한 명의 간절한 축구선수였다.

"은퇴할 때까지, 축구를 그만둘 때까지 태극마크는 평생의 꿈입니다. 은퇴하는 그날까지 국가대표팀에서 불러줄 그날을 위해 경기장 안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죠."

굴곡 많았던 28살의 청년 축구선수. 바로 이승우 얘기다.

전주성을 뒤흔든 ‘야성’의 재현

지난 4월 4일 전주월드컵경기장. 전북과 울산이 맞붙은 이른바 통산 100번째 ‘현대가 더비’. 며칠 전부터 매스컴이 떠들썩했고, 경기 당일 경기장 주변은 몰려든 양쪽 서포터스의 흥분과 열기로 들썩였다.

전북이 1-0으로 앞선 가운데 이미 전광판 시계는 멎었고 종료 휘슬이 불리기 직전이었다. 하프라인 근처에서 볼을 잡은 이승우는 압박해오던 울산 수비수를 터치라인 부근으로 유인해 잽싼 발 놀림으로 가볍게 따돌린 뒤 쏜살같이 울산 진영 중앙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폭발적 드리블과 현란한 발기술로 울산 수비수들을 잇따라 제쳐낸 뒤 페널티 아크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왼발 대각선 슛으로 골 망을 흔들었다. 후반 조커로 투입돼 들어가는 순간 경기의 템포를 바꾸고 특유의 저돌적 플레이로 상대의 혼을 빼놓은 단연 히어로였다. 단신 이승우 앞에서 추풍낙엽으로 떨어져 나가는 울산 수비수들의 모습은 흡사 슬로비디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했다.

경기가 끝난 뒤 가진 인터뷰는 전주성을 찾은 현장의 축구팬뿐 아니라 인터뷰를 접한 모든 국민의 마음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저토록 애틋한 태극마크 사랑이라니. 표정과 목소리는 경기장에서 뛸 때와 다르게 너무나 담담하고 차분했다. 이 역시 오랜 기다림과 좌절의 고통이 만들어 준 연륜의 색깔일 터다. 자신감이 충만했던 10대 때의 거침없는 인터뷰 태도와는 너무도 달랐지만, 목소리에서 묻어난 진심은 감출 수 없었다.

작년 12월 코리아컵 결승에서 광주FC를 상대로 연장 전반 결승골을 터뜨린 이승우가 환호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기쁨의 포효를 하고 있다./뉴시스
작년 12월 코리아컵 결승에서 광주FC를 상대로 연장 전반 결승골을 터뜨린 이승우가 환호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기쁨의 포효를 하고 있다./뉴시스

태극마크와의 인연: 붉은색을 향한 끝없는 짝사랑

이승우에게 태극마크는 '당연한 권리'에서 '간절한 염원'으로 그 의미가 변해왔다. 우리는 기억한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 숙명의 한일전 연장전. 대선배 손흥민의 드리블 궤적 속으로 달려들며 "비켜, 비켜!"라고 외쳤던 그 당돌한 외침을. 찰나의 순간 선배의 공을 낚아채 골 망 상단을 뚫어버린 그 대포알 슛은 전술판 위의 공식을 비웃는 야성 그 자체였다. 그때의 이승우에게 태극마크는 거침없는 질주를 증명하는 훈장이었다.

그러나 성인 국가대표팀의 벽은 높았고, (2024년 10월 이라크와의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 종료 3분 남기고 교체돼 잠깐 선을 보인 것을 빼면) 기다림은 7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화려했던 '바르셀로나의 천재'는 K리그라는 냉혹한 현실 위에서 자신의 축구를 다시 빚어냈다. 이제 이승우에게 국가대표는 더 이상 오만함의 상징이 아니다. 매 경기 자신을 증명해야만 닿을 수 있는, 지독하고도 애틋한 '짝사랑의 대상'이 되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바레인과의 1차전에서 이승우(왼쪽)와 황희찬이 한국의 6번째 골을 합작했다. /인도네시아=뉴시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바레인과의 1차전에서 이승우(왼쪽)와 황희찬이 한국의 6번째 골을 합작했다. /인도네시아=뉴시스

무채색 국가대표팀에 덧칠할 선명한 붉은색

최근 한국 축구는 '시스템'과 '빌드업'이라는 이름 아래 다소 특징 없는 정형화된 길을 걷고 있다. 일본 축구 관계자들조차 "한국 특유의 힘과 저돌성이 사라졌다"고 평할 만큼, 지금의 대표팀은 예전의 일본 축구마냥 예의 바른 '샌님 축구'에 가깝다.

여기서 이승우의 역할은 명확하다. 모두가 정해진 약속대로 움직일 때, 혼자서 그 약속을 깨뜨리는 '균열'을 만드는 것. 대표팀이 기술적 세련미는 잘 갖췄는지 모르겠으나, 정형화된 시스템을 깨뜨리는 창발성과 투혼이라는 '마지막 퍼즐'은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이승우처럼 상대의 기를 죽이는 드리블, 예측 불허의 창의성, 그리고 무엇보다 팀 전체의 투혼을 깨우는 '전염성'이다. 그는 단순한 선수가 아니라, 무채색으로 변해가는 경기장에 붉은 잉크를 쏟아부을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파리 올림픽 빈 세대의 공백, 차기 대표팀 새 리더십 준비 절실

현 국가대표팀은 손흥민(33), 이재성(33), 황인범(30), 황희찬(30), 김민재(29) 등 주력 선수들 대부분이 30대다. 지난 3월 유럽원정 소집 기준 평균 연령도 29세에 육박한다. 손흥민과 이재성은 사실상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이 될 것이고 나머지 선수들도 절정기를 지나는 시점이다. 그 뒤를 이강인, 설영우, 오현규 등이 이어가야 하지만, 한국은 지난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실력을 검증받고 성장해왔어야 할 한 세대가 통째로 비어 버렸다.

이런 차기 대표팀의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절실하다. 무엇보다 자신보다 대표팀을 우선할 수 있는 정신적 리더가 보이지 않는 시점이다. 태극마크에 대한 절실함은 누구인들 덜하겠냐마는, 나머지 선수들은 자신을 증명해 보이려는 의지가 강하다면, 이승우는 태극마크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자부심 그 자체가 동력으로 느껴진다. 22~24시즌 3년 연속 리그 두 자릿수 골을 기록했고, 올해도 벌써 두 차례 리그 베스트11과 MOM에 선정되는 등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그가 오직 대표팀에서만 이토록 외면 받는 게 개인적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의 메시' 이승우(오른쪽 두 번째)가 12일 오후 성남FC클럽하우스에서 진행된 홍명보호의 귀국 후 첫 훈련에 합류, 함박 웃음을 지으며 즐겁게 훈련을 하고 있다./KFA
'한국의 메시' 이승우(오른쪽 두 번째)가 12일 오후 성남FC클럽하우스에서 진행된 홍명보호의 귀국 후 첫 훈련에 합류, 함박 웃음을 지으며 즐겁게 훈련을 하고 있다./KFA

2026년 월드컵에서 이승우가 뛴다면: 계산기 밖에서 일어날 기적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 무대, 팽팽한 균형이 이어지는 후반 30분쯤. 상대의 수비가 견고해질 때 대표팀이 꺼내 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조커'가 이승우였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자꾸 해본다. 그는 90분을 완벽하게 조율하는 선수는 아닐지 모르나, 단 15분 만에 경기장의 공기 자체를 바꿔버릴 수 있는 선수다.

홍명보 감독의 강박에 가까운 전술판 위에는 이승우라는 변수가 놓여 있지 않다. 그러나 축구는 때로 계산기 밖에서 일어난다. 손흥민에게 '비켜'를 외치던 그 오만함이, 지금의 침체된 한국 축구에는 가장 필요한 '해독제'일지도 모른다. 그의 지독한 태극마크 짝사랑이 월드컵이라는 가장 높은 무대에서 화답받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잃어버렸던 한국 축구의 '야성'을 되찾게 되지 않을까.

'한국의 메시' 이승우(오른쪽 두 번째)가 12일 오후 성남FC클럽하우스에서 진행된 홍명보호의 귀국 후 첫 훈련에 합류, 함박 웃음을 지으며 즐겁게 훈련을 하고 있다./K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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