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수사 요구에도 같은 결론…피해자 비극

[더팩트 | 김해인 기자] 미진한 초동수사로 보완수사를 거쳐 실체가 드러나거나 '보완수사 요구'가 한계를 보인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진행될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의 최대 쟁점인 검찰의 보완수사 기능을 놓고 주목되는 사례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검 남양주지청은 지난 2일 경찰에서 고 김창민 감독 폭행 사망 사건을 송치받은 직후 검사 3명과 수사관 5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을 꾸리고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팀은 의학적 전문성을 갖춘 검사 의견을 수사에 적극 반영해 폭행과 사망 간 인과관계 등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김 감독은 지난해 10월 20일 오전 1시 10분께 발달장애 아들과 경기 구리시 한 식당에서 다른 손님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약 1시간 만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 판정을 받았고, 장기 기증을 통해 4명에게 생명을 나누고 숨졌다.
경찰은 사건 초기 가해자 1명만 특정해 검찰에 넘겼다. 이후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와 유족 항의가 이어지면서 추가 가해자 1명이 특정됐다. 이에 관련자 다수가 현장에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초동수사 단계에서 사실관계 확인이 충분했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검찰은 지난 15일 피의자 이모 씨 자택을 압수수색해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피의자 강제수사는 사건 발생 6개월 만인 이번이 처음이었다. 경찰은 사건을 우발적 폭행으로 보고 강제수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초동수사 과정에서 파악된 폭행 정도도 보완수사를 거치며 달라졌다. 경찰은 첫 구속영장 신청 당시 '주먹으로 3회 폭행했다'고 기재했지만, 검찰 보완수사 요구 이후 확보된 CCTV와 참고인 진술 등을 토대로 폭행 강도가 더 컸던 정황을 확인했다. 두 번째 영장에는 '피해자가 쓰러진 뒤 머리와 얼굴을 발로 10여 차례 짓밟거나 걷어찼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도 피해자의 보완수사 관련 발언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 사건 역시 검찰 보완수사를 거쳐 혐의가 보강된 사례로 꼽힌다.
피해자 A 씨는 지난달 김남순 부산지검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검찰의 보완 수사가 폐지된다면 그 사각지대로 범죄 피해자는 억울함을 호소할 곳을 잃게 될 것"이라며 "범죄 피해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검찰의 보완 수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지난 2022년 5월 22일 새벽 부산 서면에서 30대 남성 이모 씨가 혼자 귀가하던 김 씨를 뒤따라가 오피스텔 1층 복도에서 발차기로 뒷머리를 강하게 가격해 쓰러뜨리고 CCTV 사각지대로 끌고가 성폭행을 시도한 뒤 도주한 사건이다.
이 씨는 1심에서는 살인미수 혐의만 인정돼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검찰은 항소심 단계에서 피해자가 입었던 옷의 120여개 부위에서 DNA 샘플을 채취해 대검찰청에 정밀감정을 의뢰했고, 청바지 안쪽 허리와 허벅지, 종아리 부분 등에서 이 씨의 DNA가 발견됐다.
보완수사를 통해 이 씨의 성폭행 증거를 발견한 검찰은 강간 살인미수 혐의를 추가했고, 2심에서 징역 20년으로 형이 늘었다. 대법원은 2023년 9월 원심을 확정했다.
김 씨는 피해자가 수사·재판 과정에서 배제됐고 성폭력 의심 정황 등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5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지난 2월 국가가 김 씨에게 15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고, 법무부는 "수사과정에서 미흡함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한 이번 판결을 엄중히 받아들인다"며 항소를 포기했다.

'청소년 아르바이트생 성폭력 부실수사'도 논란이 되고 있다.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 이후에도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다.
지난해 12월 경기 안산시 단원구 한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19세 여성 A 씨는 주점 사장인 40대 B 씨를 준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A 씨는 당일 조사에서 "술을 마신 뒤 기억을 잃었는데 B 씨가 성행위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 그를 밀치고 뛰어나왔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은 CCTV 영상에 사건 전후 두 사람이 웃고 대화하며 주점 내부를 오갔고, 헤어질 때 서로 배웅하는 장면이 포착된 점을 근거로 강제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불송치 결정했다. B씨의 "합의된 관계였다"는 진술과 동석자 조사 결과도 판단 근거로 제시됐다. 다만 피해자 조서 작성 당시 피해자의 혈중알코올농도가 0.085%였음에도 추가 조사 없이 결론을 낸 점을 두고 비판이 제기됐다.
A씨는 지난 2월 불송치 통보를 받고 사흘 뒤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의 이의신청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사건은 송치로 전환됐다. 검찰은 지난달 CCTV 시간 오차 확인과 참고인 대면 조사 등 보완 수사를 요구했지만, 경찰은 기존 판단을 유지했다.
청소년 아르바이트생 성폭력 부실수사로 인한 사망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17일 경기 안산단원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은 CCTV 속에서 피해자가 웃고 대화했다는 찰나의 장면만을 근거로 합의를 단정 지었다"며 "고용주라는 지위가 주는 압박 속에서 청소년 노동자가 취할 수밖에 없었던 방어 기제인 '사회적 웃음'을 수사 기관은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범죄 피해자 조사 최소화라는 지침이 오히려 피해자의 권리를 지키는 대신 추가적인 증거 제출과 소명 기회를 차단하는 장벽이 됐다"며 부실 수사를 인정하고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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