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 도입 교섭 제외…근로조건 변화 시 교섭 기준”

[더팩트ㅣ세종=정다운 기자] 인공지능(AI)이 어느새 인간의 업무를 깊숙이 침범하고 있습니다. 단순 반복 업무를 넘어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겼던 창의성과 판단의 능력까지 AI가 장착했습니다. 인간의 일자리가 빠르게 줄어들 것이라는 공포심과 함께 생산성 혁명이라는 기대감이 엇갈립니다. <더팩트>는 이번 [AI와 일자리] 기획을 통해 기술이 인간의 동료가 될지 아니면 인간의 대체재가 될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거스를 수 없는 AI 혁명 속에서 우리 사회가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그 해법을 모색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AI 시대 노동배제 없는 전환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 하반기에는 관련 입법과 정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은 지난 10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AI 확산에 따른 일자리 감소 해소 방안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AI 도입 과정에서 직무전환과 고용안정 지원을 병행하고, 플랫폼·프리랜서 등 보호 사각지대 해소에도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권 차관은 "AI 확산으로 비대면·플랫폼 기반 업무가 늘면서 플랫폼·프리랜서 등 전통적인 고용관계 밖의 노동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이들에 대한 보편적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입법을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오는 6월에 발표할 대책인 고용안정 기본계획도 노동배제 없는 전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권 차관은 AI가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단순한 일자리 감소로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AI와 로봇이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변화 양상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며 "일자리 감소 우려와 함께 생산성 향상, 새로운 일자리 창출 기대가 병존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를 일자리가 사라지는 시대로만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권 차관은 AI 전환의 본질은 일자리 축소가 아닌 직무 재편이라는 관점이다. 권 차관은 "최근에는 AI가 업무 목적을 재정의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단 분석이 많다"며 "결국 일의 내용과 구조가 변화하는 전환의 시대"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산업전환 충격이 취약계층에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권 차관은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 청년, 중소기업에 영향이 먼저 나타날 수 있다"며 "기술이 일하는 사람의 수단으로 작동하는 ‘노동 있는 산업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조업은 AI와 결합하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준비가 부족하면 일부 직무가 자동화로 대체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산업전환에 대응하기 위한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오는 6월 발표할 방침이다. 관계부처와 노사, 전문가가 참여해 산업별 일자리 변화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직무전환 지원과 고용안전망 확충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권 차관은 직무훈련 방식 전환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무와 괴리된 기존 훈련방식을 전면 개편해 기업이 실제 사용하는 기술 중심의 훈련체계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정부의 기술 확산 지원과 함께 원·하청 상생 모델이 필요하다"며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AI 도입과 훈련을 지원하는 구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I 전환 속도가 빠른 만큼 기존 교육 방식으로는 대응이 어렵다"며 "대기업의 인프라와 고숙련 인력을 활용한 프로젝트형 훈련 모델도 검토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청년과 중장년을 구분한 맞춤형 전략도 밝혔다. 그는 "청년에게는 AI 특화훈련과 일경험 기회를 확대하고 중장년은 경력 설계 단계부터 직무 전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AI+역량 UP 프로젝트’를 통해 AI 전환을 뒷받침할 방침이다. 이 사업은 구직자부터 재직자, 이·전직자까지 전 주기를 아우르는 맞춤형 AI 교육훈련으로 단기 기초교육뿐 아니라 청년 대상 중장기 과정(6개월) 등도 포함한다.
정책 효과도 일부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대기업·대학 등의 인프라를 활용한 중소기업 대상 컨소시엄 훈련은 재직자 훈련 참여 비중이 1%포인트(p) 증가할 경우 1인당 매출액은 약 245만원, 임금은 약 5만4000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현장의 문제를 외부 전문가와 함께 해결하는 S-OJT 훈련은 참여기업의 70% 이상이 불량률 감소, 생산성 향상, 작업시간 단축 등 정량적 성과를 보였다.
중장년은 일대일 맞춤형 경력설계 서비스를 제공해 재직 단계부터 직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새로운 직무에 원활히 적응할 수 있도록 ‘폴리텍 중장년 특화훈련’과 ‘중장년 일경험’ 기회도 확대할 방침이다.
권 차관은 산업·에너지 전환과 맞물린 구조조정 대응 방향도 언급했다. 최근 현장에서는 석유화학업계 나프타분해설비(NCC) 감축에 따른 구조조정과 2040년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등 전환이 본격화하고 있어 ‘정의로운 전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전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직무 전환을 위한 훈련과 함께 기업이 고용을 유지한 채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두 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업이 업종을 전환하면서 근로자와 함께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불가피하게 이동이 발생할 경우에는 직업훈련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임금 격차 등으로 근로조건이 악화되는 경우에는 정부 지원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호봉제를 일괄 폐지하기보다 직무 중심 임금체계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1기가 출범하면서 노사정은 ‘AI 전환에 따른 노사상생위원회’를 구성·운영하기로 했다. 향후 해당 위원회를 통해 AI 도입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와 노사 협력 방안이 중점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AI 규율 수준과 관련해 권 차관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춘 단계적 접근을 시사했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8월 1일 AI Act를 발효해 채용·평가 등 노동 영역에서 활용되는 고위험 AI에 대해 투명성 확보와 차별 방지, 인간 개입 보장 등을 의무화했다.
권 차관은 "가이드라인은 준칙 성격으로 우선 자율 준수를 기반으로 한다"며 "현장 상황을 보며 필요 시 제도화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노동권을 보호하는 균형 잡힌 개입이 중요하다"며 "상황에 따라 강제력 있는 제도 도입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란봉투법과의 상충 가능성 우려에 대해 권 차관은 노사관계 기준을 분명히 제시했다. 그는 "지난 9일 기준 노란봉투법 시행 한 달 만에 하청노조 1011곳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한 것으로 집계됐다"며 "이를 단순한 혼란으로 보기보다는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준 정립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기술 도입 자체는 경영전략으로 교섭 대상이 아니지만 근로조건에 실질적 변화가 발생하면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일방적 추진보다 노사협의를 통한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해 권 차관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는 AI는 피할 수 없는 미래이지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우리 선택에 달려있다고 말했다"며 "노사정이 함께 준비한다면 전환은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 차관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40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노동부 직업능력정책과장, 근로기준정책과장, 노사협력정책과장과 청년고용정책관, 노동개혁정책관, 기획조정실장을 거치며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내부에서는 실·국장 시절부터 업무 이해도와 추진력이 뛰어난 ‘천재형 관료’로 평가받아 왔으며, AI 산업 전환기를 이끌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온화한 성품과 상대를 배려하는 소통 방식으로 조직 내 신망도 두텁다는 후문이다.
danjung638@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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