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석한 얼굴·절제된 감정 연기로 새로운 얼굴 꺼내

[더팩트|박지윤 기자] 매번 전혀 다른 결의 인물로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채웠던 배우 김혜윤이 '살목지'로 공포 장르에 처음 뛰어들었다. 끊임없는 변주로 하나의 이미지에만 머무르지 않는 그는 이번에도 예상을 기분 좋게 벗어나는 새로운 얼굴로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김혜윤은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살목지'(감독 이상민)에서 주인공 수인 역을 맡아 '동감'(2022)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했다. 그동안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에 도전하면서 필모그래피를 다채롭게 구축하고 있는 그는 처음 소화한 공포 장르에서도 믿고 보는 열연에 새로움까지 더하며 또 한 번 자신의 스펙트럼을 성공적으로 넓혔다.
작품은 찍은 적 없는 형체가 로드뷰 화면에 포착되고 검고 깊은 물 속에 있는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가운데 살목지에 들어서게 된 7명의 촬영팀이 맞닥뜨린 공포를 생생하게 그린다. 단편 영화 '함진아비' '돌림총' 등을 통해 공포 장르에서 자신만의 색을 다져온 이상민 감독의 첫 단독 장편 연출작이다.
로드뷰 업체 PD인 수인은 직접 본 것만 믿고 이성의 끈을 꽉 쥐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기이한 소문이 끊이질 않는 살목지의 로드뷰 화면에 촬영한 적 없는 정체불명의 형체가 포착되고 이에 주민들과 지자체의 항의가 빗발치자 재촬영을 하러 간다. 물론 여기에는 자신을 대신해 살목지로 향했다가 연락이 끊긴 선배 교식(김준한 분)을 찾고자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촬영팀 경태(김영성 분) 경준(오동민 분) 성빈(윤재찬 분) 세정(장다아 분)과 함께 살목지에 도착해 일을 하던 수인은 그곳에서 교식을 만난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미묘하게 달라진 그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수인은 이후 설명할 수 없는 공포와 계속 맞닥뜨리면서 심리 변화를 겪고 목숨 걸고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를 연기한 김혜윤은 웃음기 하나 없는 버석한 얼굴로 등장해 단숨에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동안 정확한 딕션과 안정적인 연기력을 바탕으로 로맨틱 코미디에서 통통 튀는 발랄한 매력을 뽐냈던 그가 전작들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선배를 향한 죄책감을 드러내지 않고 일상적인 감정선을 잘 유지하다가 살목지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들로 인해 이성적인 내면에 균열이 생기는 인물의 변화를 단계적으로 치밀하고 섬세하게 표현한다. 공포 연출에 과하게 의존하거나 주변 캐릭터들에 과장되게 감정을 표출하는 게 아닌, 미세하게 흔들리는 호흡과 눈빛이나 떨리는 손끝 등 디테일한 신체 표현으로 말이다.
케미 요정답게 이종원과도 좋은 합을 자랑한다. 전 연인인 수인과 기태로 분한 두 사람은 몇 없는 대사로만 이러한 관계성 속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고 살목지에서 함께 탈출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맹목적으로 전 연인을 구하려는 기태와 그에게 완전히 의지하지도 그렇다고 밀어내지도 않는 수인의 태도는 여지를 남기며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그리고 이 같은 감정선은 극의 긴장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공포 속 의외의 로맨스를 한 스푼 더하는 요소가 된다.
캐릭터성이 뚜렷한 인물을 만난 김준한 김영성 오동민 윤재찬 장다아가 마음껏 뛰어놀면서 신선한 앙상블을 완성한 데에도 중심을 단단히 잡으면서 활약할 수 있는 판을 제대로 깔아준 김혜윤의 존재감이 크게 작용한다.
이렇게 그는 절제된 표현 속에서도 극한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이성을 잃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모습부터 어쩔 수 없이 점점 무너지고 마는 내면의 혼란까지 섬세하게 그려내며 작품을 안정적으로 이끈다. 특히 공포를 심어주는 액션이 아닌 당하는 리액션이 주가 되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연기하며 보는 이들이 숨죽이고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몰입도를 선사한다.
김혜윤의 열연과 함께 신선한 카메라 기법과 물의 속성을 잘 살린 연출 등으로 체험형 공포를 내세운 '살목지'는 개봉 첫날 약 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로 기분 좋게 출발했다. 특히 2021년 개봉한 '랑종'(12만 9937명) 이후 호러 장르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한 만큼, 공포 장르 마니아층의 선택을 받고 손익분기점(80만 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 KBS2 'TV소설 삼생이'로 데뷔한 김혜윤은 2018년 JTBC 'SKY 캐슬'에서 강예서 역을 맡아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렸다. 연예계에 발을 들이고 관심받기까지 수많은 작품의 조단역으로 출연하며 우직한 경험을 쌓은 그는 마침내 빛을 본 후 주연 배우로서 입지를 탄탄하게 다졌다.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 '어사와 조이' '선재 업고 튀어'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등 판타지 요소가 있는 작품부터 사극까지 소화했고, 첫 주연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며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거머쥐었다.
이러한 다채롭고 대체 불가한 행보는 단순한 운이 아니라 말투와 분위기를 다르게 하려고 사소한 습관까지 새롭게 만들어내는 섬세함과 비슷한 결로 비춰지는 걸 경계하며 늘 색다른 선택을 해온 노력의 결과다. 더 나아가 꾸준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하나의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거듭된 변주를 이어온 그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껏 그래왔듯이 '살목지'로 또 한 번 성공적인 도전을 끝낸 그는 겹치지 않는 다양한 색을 지닌 차기작들을 여러 개 쌓아두고 있다. 은행을 턴다는 설정의 영화 '랜드'로 액션에 도전하고 '고딩형사'로 코미디를 소화한다. 또 많은 사랑에 힘입어 두 번째 이야기로 돌아오는 SBS 새 드라마 '굿파트너2'에 합류해 장나라의 새로운 파트너로 활약하게 된 만큼, 앞으로 어떤 새로운 얼굴을 꺼낼지 기대감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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