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침묵에 커지는 시청자 피로

[더팩트ㅣ최수빈 기자] 논란은 빠르게 인지한다. 문제가 된 장면은 다시보기에서 삭제하고 편집 여부도 내부적으로 검토한다. 그러나 정작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에는 끝내 답하지 않는다. 최근 MBC가 보여주는 방식은 유독 비슷하다. 문제를 인지하고도 설명은 생략한 채 콘텐츠 노출을 지속하는 지금의 방식이 과연 최선인지 의문이 남는다.
가장 먼저 논란의 중심에 선 건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였다. 지난달 방송된 638회에서는 웹툰 작가 겸 방송인 기안84가 방송인 강남과 함께 일본을 찾아 호러 만화 거장 이토 준지를 만나는 과정이 그려졌다.
문제는 이들이 도쿄 출판사 거리를 둘러보던 중 방문한 장소였다. 방송에 등장한 곳은 일본 만화계를 대표하는 출판사 중 하나인 소학관으로 과거 성범죄 사건 은폐 의혹이 제기된 곳이었다. 앞서 한 작가는 과거 미술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미성년 제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후 작가는 필명만 바꿔 다시 작품 활동에 나섰지만 소학관이 이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채 연재를 진행한 사실이 알려져 비판 여론이 확산했다. 당시 관계자는 "아동 성범죄 전력이 있는 작가가 가명을 사용해 활동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사과했지만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같은 이력이 있는 장소가 한국 지상파 예능을 통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소개됐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불편함이 커졌다. 단순 방문을 넘어 흥미로운 일본 만화 문화 공간처럼 소비됐기 때문이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제작진이 소학관의 대표작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함께 노출한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극장판 17기 포스터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해당 작품은 극 중 전범기 이미지가 등장해 국내에서는 극장 개봉이 무산된 바 있다. 현재까지도 국내 OTT에 정식 수입되지 않은 유일한 극장판이라는 점에서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졌다.

한 번의 실수라면 단순한 검수 부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민감한 요소가 연이어 노출되자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정말 몰랐던 것이 맞느냐"는 의문이 커졌다. 실수는 반복되는 순간 더 이상 가벼운 실수로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은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논란을 의식한 듯 OTT를 통해 공개된 VOD에서는 문제가 된 장면이 모두 편집됐다. 문제를 인지했다는 흔적은 남겼지만 왜 이런 장면이 전파를 탔는지에 대한 설명은 끝내 없었다. 이 지점이 오히려 시청자들의 답답함을 키웠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건 이후의 대응이다. 별다른 해명 없이 기안84와 이토 준지의 만남을 담은 예고 콘텐츠가 공개되며 홍보는 그대로 이어졌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해명이 먼저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 장면은 조용히 덜어내면서도 시청을 유도하는 홍보가 불편하게 다가온다는 지적이다.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비슷한 문제는 또 반복됐다. 이번에는 '라디오스타'다. 최근 가수 조갑경과 홍서범 부부의 아들이 불륜 및 양육비 미지급 논란으로 법적 분쟁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파장이 일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조갑경 홍서범 부부는 입장문을 통해 "성인인 아들의 사생활과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생각에 그간 이혼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부모로서 자식의 허물을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부족함이 컸다. 공인으로서 모범을 보이지 못한 점 진심으로 반성한다"고 사과한 바 있다.
하지만 논란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조갑경이 '라디오스타'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또다시 비판이 쏟아졌다. 시청자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편집 여부와 제작진의 판단 기준으로 향했다.
그럼에도 '라디오스타' 제작진 역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조갑경 출연 회차 홍보를 이어갔다. 논란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뤄둔 채 통상적인 홍보 사이클만 그대로 굴러가는 모습은 최근 MBC 예능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대응 방식과 닮아 있다.

이번에도 MBC의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편집 여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쉽게 나오지 않았고 그 사이 보도자료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조갑경의 이름이 포함됐다. 또한 예상대로 지난 1일 방송된 회차에서 조갑경의 분량은 크게 편집되지 않았다.
물론 토크쇼 특성상 통편집이 쉽지 않다는 현실론은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실제로 출연자 간 호흡과 토크의 유기성이 중요한 포맷인 만큼 섣부른 삭제가 완성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라디오스타'는 앞서 2019년 마약 투약 혐의를 받은 로버트 할리를 통편집한 전례가 있다. 단독샷은 물론 풀샷에서도 CG와 자막으로 철저히 가리며 사실상 흔적을 지운 바 있다.
이번 사안은 출연자 본인의 직접적인 문제가 아닌 가족 이슈라는 점에서 판단이 더욱 조심스러웠을 수 있다. 그렇기에 더 필요한 건 침묵이 아니라 설명이다. 중요한 건 완벽한 대응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작진이 무엇을 고민했고 어떤 기준으로 결론을 내렸는지 최소한의 책임을 다해 설명하는 태도다.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지점 역시 단순히 삭제 여부나 편집 유무가 아니다. 제작진이 무엇을 문제로 인식했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침묵은 결코 중립이 아니며 오히려 불필요한 추측과 불신을 키운다. 특히 방송사가 직접 홍보를 이어가면서 정작 논란에 대한 입장을 미루는 방식은 반감을 더욱 키울 뿐이다.
예능은 결국 시청자에게 웃음과 재미, 편안함을 주는 장르다. 논란이 생겼을 때 조용히 다시보기만 손보거나 편집 여부 질문에 시간을 끄는 식의 대응은 당장의 불을 끌 수는 있어도 신뢰를 회복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입장 없는 홍보가 반복될수록 회피한다는 이미지가 더 선명해진다.
MBC는 최근 비슷한 상황을 연이어 겪고 있다. 지금 이들이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 편집 기술이 아니라 소통 방식이다. 문제를 인지했다면 먼저 설명하고 판단을 내렸다면 그 기준을 밝혀야 한다. 입장은 비워두고 있는 현재의 방식. 그 회피가 과연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까.
'나 혼자 산다'는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 10분, '라디오스타'는 매주 수요일 오후 10시 30분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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