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 중심' 산업안전 체계 마련해야

[더팩트ㅣ대전=정예준 기자] 14명의 사망자를 낸 대전시 대덕구 문평동 자동차 부품 공장(안전공업) 화재가 또 하나의 '예견된 산업재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불과 2년 전 대형 인명 피해를 남겼던 아리셀 화재 참사 이후 산업안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유사한 구조의 참사가 다시 발생했기 때문이다.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번 대전 공장 화재 원인은 현재 조사 중이지만, 공장 내부 작업 환경과 구조적 문제, 행정 사각지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외형상 아리셀 참사와 직접적인 원인은 다를 수 있으나, 일각에서는 두 사건이 '산업현장의 구조적 문제'라는 측면에서 매우 닮아 있다고 분석한다.
위험성이 높은 작업 환경 속에서 생산이 이어졌고, 화재 발생 시 신속한 대피가 어려운 공장 내부 구조, 다수 노동자가 밀집한 작업 환경 등이 겹치면서 피해가 확대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 절삭유 환경이 키운 화재 확산
소방당국은 이번 화재에서 공장 내부 작업 환경이 피해 확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제품 공정에서 사용되는 절삭유가 연소 확대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됐고, 배관 내부에 쌓여 있던 슬러지 역시 화재 확산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됐다.
절삭유는 금속 가공 과정에서 널리 사용되는 물질로 절삭유의 기본적인 성분에 따라 발화점이 다르지만 대량으로 사용되거나 관리가 미흡할 경우 화재 위험이 커질 수 있다.
특히 이렇게 가연성 물질이 많은 작업 환경에서는 작은 화재가 대형 화재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한 금속가공 전문가는 "절삭유가 많이 사용될수록 작업자의 건강과 시설 안전을 위해 환기시설은 물론이고 작업 후 기름 제거 작업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전했다.
또한 안전공업 직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언제 화재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작업장 내에 '오일 미스트'가 상당했고 바닥의 기름때와 천장에 누적된 기름, 부족한 환기와 노후화된 집진 시설 등 작업 환경에 대한 다양한 문제점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사고 역시 절삭유가 많이 사용되는 작업 환경이 화재 확산을 키운 요인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산업현장의 위험물 관리 체계와 작업 환경 전반에 대한 점검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 무허가 증축이 만든 '부메랑'
특히 이번 사고에서는 무허가 증축 의혹이 제기된 공간에서 인명 피해가 집중된 점이 주목된다. 해당 공간은 직원 복지를 위해 조성된 복층형 휴게실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희생자가 집중된 공간이 무허가 증축된 장소라는 점에서 산업시설의 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직원 복지를 위해 마련된 시설이 아이러니하게도 안전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산업현장에서는 작업 공간 외에 휴게 공간이나 편의 시설이 증축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 과정에서 허가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안전관리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이러한 시설 변경을 행정기관이 사전에 파악하기 쉽지 않은 구조라는 점이다.
공장 증축이나 내부 구조 변경은 원칙적으로 허가나 신고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실제 산업단지 현장에서는 신고 없이 이뤄지는 불법 증축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 역시 신고나 민원이 없는 경우 모든 사업장을 상시 점검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결국 산업시설 관리가 일정 부분 사업장의 자율 관리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가 관리 사각지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 처벌 중심 산업안전 정책의 한계
이 같은 상황은 산업재해 대응 제도의 방향성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업안전 강화를 위해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기업 책임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사고 이후 처벌 중심이라는 한계도 동시에 지적된다.
실제로 아리셀 참사 사건 1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산업재해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발언을 남겼다.
당시 재판부는 "안전에는 비용을 아끼다가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막대한 자금력으로 유가족과 합의를 시도하고 유족이 생계유지를 위해 선택의 여지 없이 합의하게 되면 합의가 됐다는 이유로 선처를 받는 학습 효과로는 산재를 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당시 산업재해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돼 온 사회적 문제를 보여주고 지적한 사례로 평가된다.
사고 이후 책임을 묻는 것만으로는 산업현장의 위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다는 지적과 일맥상통한 발언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예방 중심의 정책이 설계돼야
일각에서는 반복되는 비슷한 유형의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서는 예방 중심의 정책 방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고위험 업종에 대한 정기 점검 강화와 공장 구조 안전 기준 개선, 산업단지 단위 통합 안전관리 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현장에서 위험을 가장 먼저 인지하는 노동자가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제도 역시 중요한 대안으로 제시된다. 사고 예방의 핵심은 결국 현장에 있다는 설명이다.
아리셀 참사 이후 산업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지만, 이번 대전 안전공업 화재는 여전히 현장의 변화가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복되는 산업재해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사고 원인 규명에 그치지 않고 산업구조 전반의 안전 시스템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참사가 또 하나의 통계로 남을지, 산업안전 정책의 변화를 이끄는 새로운 계기가 될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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