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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밀어 '우리'가 되었다... 8년의 앙금 녹인 '금빛 터치' [박순규의 창]
19일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한국 금메달 의미

대한민국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이 19일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 스케이팅 아레나 경기장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감격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밀라노=뉴시스
대한민국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이 19일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 스케이팅 아레나 경기장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감격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밀라노=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결승선보다 먼저 통과한 것은 ‘하나 된 마음’이었다. 차가운 밀라노의 빙판 위, 뜨거운 화해와 투혼이 빚어낸 한국 여자 선수들의 금빛 드라마가 펼쳐졌다.

19일 오전(한국 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선에 출전한 한국의 최민정(27·성남시청)-김길리(21·성남시청)-노도희(30·화성시청)-심석희(29·서울시청)는 4분 04초 414의 기록으로 역전에 성공하며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2018년 평창 대회 이후 8년 만의 정상 탈환이자, 이번 대회 쇼트트랙 종목에서 나온 한국의 첫 금메달이다.

하지만 이 금메달의 무게는 단순히 '1위'라는 성적표에 있지 않다. 이번 대회 내내 이어진 한국 쇼트트랙의 부진, 그리고 8년 전의 아픈 기억을 딛고 일어선 선수들의 '완벽한 화합'이 담겨 있기에 그 어떤 메달보다 값지다.

이번 올림픽은 한국 쇼트트랙에 있어 유난히 혹독했다. '효자 종목'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개인전에서 금메달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남자 1,500m 은메달(황대헌), 남녀 1,000m 동메달(임종언, 김길리)에 그치며 세계 최강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우려 섞인 시선이 쏟아졌다. 네덜란드를 필두로 한 유럽세의 견제는 거셌고, 선수들의 어깨는 무거웠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역시 여자 계주였다. 개인의 기량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오직 4명의 호흡이 완벽히 맞물려야만 가능한 계주 경기에서 대표팀은 위기 관리 능력의 정수를 보여줬다. 위기 속에서 빛난 한국의 '원 팀(One Team)' 저력이 돋보였다.

레이스 중반 3위까지 밀려나고 경쟁국 네덜란드가 넘어지는 혼전 속에서도 한국은 당황하지 않았다. 맏언니 노도희의 안정적인 연결, 에이스 최민정의 폭발적인 추격, 그리고 마지막 주자 김길리의 과감한 역전승까지. 이 드라마틱한 전개는 서로를 믿지 못하면 불가능한 레이스였다.

무엇보다 이번 금메달이 감동적인 이유는 팀의 중심인 심석희와 최민정의 '관계 회복'에 있다. 2018 평창 올림픽 당시 불거진 충돌 논란과 갈등은 한국 쇼트트랙의 오랜 상처였다. 팬들은 두 선수가 한 팀에서 다시 뛸 수 있을지, 호흡이 맞을지 우려했다.

그러나 2026년 밀라노에서 그들은 성숙한 프로였다. 최민정은 동료로서 심석희의 생일을 축하했고, 심석희는 빙판 위에서 온 힘을 다해 최민정을 밀어줬다. 경기 전술 중 심석희(4번 주자)가 최민정(1번 주자)을 밀어주는 교대 구간은 이번 레이스의 핵심이었다. 실제로 결선레이스에서 4바퀴를 남기고 심석희가 최민정을 힘차게 밀어주면서 한국은 3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 과거의 앙금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불가능했을 그 터치 한 번이, 닫혀있던 금메달의 문을 열어젖혔다.

최민정의 "나는 대표팀의 일원이고 선수로서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라는 말은 이들이 개인의 감정을 넘어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으로 뭉쳤음을 증명한다. 서로의 엉덩이를 밀어주는 그 찰나의 순간, 그들은 과거의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서로를 응원했을 것이다. 심석희는 개인전에 출전하지 않고 단체전에만 출전한 뒤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스포츠는 때로 결과보다 과정으로 기억된다. 이번 여자 계주 금메달은 단순한 승리의 기록을 넘어, '갈등의 극복'과 '연대'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던진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덮어주며, 하나의 목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등을 내어주는 모습. 네덜란드의 독주를 막아선 것은 압도적인 스피드가 아니라, 서로를 믿고 의지한 단단한 팀워크였다.

8년 만에 되찾은 여자 계주 최강의 자리. 그 화려한 복귀 뒤에는 서로의 손을 놓지 않은 선수들의 뜨거운 땀방울이 있었다. 밀라노의 빙판을 녹인 것은 그들의 뜨거운 화해와 하나 된 마음이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 선수들이 목에 건 금메달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난다. 쇼트트랙 시상대에서 처음 울린 애국가는 선수들이 빚어낸 화합의 과정이 있었기에 더 묵직하게 가슴을 울렸다.

대한민국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이 19일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 스케이팅 아레나 경기장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감격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밀라노=뉴시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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